조국통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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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조국통일방침
제4절 민족대단결5대방침
2. 3자련대의 결실을 안아온 강령적지침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민족의 통일기운은 날이 갈수록 더욱 높아가고있으며 전 민족이 단결하여 조국통일을 이룩하려는 우리 민족의 의지와 지향은 꺾을수도 없고 막을수도 없습니다.》  

우리 당은 반통일분렬주의세력을 철저히 고립제압하면서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온 겨레를 불러일으켜 조국통일의 새 장을 펼쳐나갔다.

① 우리 당은 민간급에서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우리 당은 이를 위한 당면조치의 하나로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와 《민족경제협력련합회》(민경련)를 내오도록 하였다.

민족화해협의회는 북과 남, 해외의 여러 정당 ,단체, 각계각층 인사들사이의 접촉, 대화와 협력을 주선하고 적극 추진하며 그 과정을 통하여 민족적화해와 단합, 북남관계개선과 통일에 적극 이바지하는것을 사명으로 하는 민간급통일운동단체이다. 그리고 민족경제협력련합회는 경제분야에서 민족경제의 부흥발전에 기여하려는 남조선의 기업가들을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묶어세우고 그들이 통일성업에 특색있는 기여를 하도록 하는 사업을 폭넓게 전개해나갈 사명을 지니고있었다.

 민족화해협의회와 민족경제협력련합회를 내올데 대한 조치는 민족대단결5대방침의 기본정신에 따라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여러 방면에서 활성화하기 위한 애국애족적이며 적극적인 조치였다.

주체87(1998)년 6월 8일에 민족화해협의회와 민족경제협력련합회가 조직됨으로써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단합을 가로막으려는 남조선당국의 《대화창구일원화》책동하에서도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민간급에서 화해와 단합을 이룩해나갈수 있는 보다 넓은 길이 열리게 되였다.

② 우리 당은 주체87(1998)년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을 성과적으로 개최하여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실현의 튼튼한 담보를 마련하였다.

우리 당은 주체87(1998)년 6월 10일 평양에서 공화국정당, 단체대표자회의를 열고 력사적인 4월남북련석회의 50돐이 되는 주체87(1998)년 8.15에 즈음하여 판문점에서 북과 남, 해외가 다같이 참가하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을 진행할것을 제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준비위원회》를 결성하고 남조선과 해외의 정당, 단체들과 각계 인사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채택하도록 하였다.

공화국정당, 단체대표자회의소식이 전해지자 남조선과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대축전소집제안을 열렬히 지지환영하면서 지역축전준비위원회들을 뭇고 그 준비사업에 떨쳐나섰다.

이렇게 되자 남조선당국은 범민련 남측본부의 행사준비사업을 파탄시키기 위하여 축전준비위원회결성식 당일에 수많은 폭압경찰을 내몰아 행사장을 봉쇄하는 폭거를 감행하였으며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을 《리적단체》로 몰아 탄압하였다.

 남조선당국은 한편으로 탄압의 도수를 높이면서 다른편으로는 축전에 어떤 《관심》이나 있는듯이 표방하며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을 배제하고 어중이떠중이단체들로 관제어용기구를 조작한 다음 《민간단체》의 허울을 씌워 축전행사에 밀어넣으려고 획책하였다. 이것은 신성한 통일행사에 대한 모독이고 우롱이며 민족의 통일념원에 찬물을 끼얹는 반통일적모략책동이였다.

우리 당은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에 대처하여 남조선당국자들의 축전파괴책동을 폭로단죄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남조선당국의 불순한 반통일모략책동에 대한 항의와 규탄의 목소리가 남조선과 해외에서 높이 울려나왔다.

그리하여 남조선당국자들의 축전파괴책동은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되였으며 축전준비사업은 빠른 속도로 진척되여 드디여 막을 올리게 되였다.

주체87(1998)년 8월 15일 북과 남, 해외의 대표들과 각계각층 군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판문점에서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개막식이 성대히 진행되였으며 이어 동포단합대회,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98범민족회의》, 제3차 범청학련총회와 《민족의 자주와 통일을 위한 해내외 동포청년학생 제3차 련석회의》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통일대축전장을 이채롭게 한것은 동포예술인들의 민족통일예술축전이였다. 우리 민족이 반세기가 지나도록 피타게 찾고 절규하는 소원은 오직 하나 통일이기에 북과 남, 해외동포들이 함께 부르는 조국통일의 절절한 노래소리는 7천만겨레의 민족단합의 노래, 투쟁의 노래가 되여 분계선너머 남녘땅 끝까지 메아리쳐갔다.

참으로 주체87(1998년)의 8.15통일대축전은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 화해와 단합, 통일의 새로운 장을 마련한 력사적사변이였다.

8.15통일대축전의 성과적진행은 우리 당의 민족대단결5대방침의 정당성과 그 위대한 생활력에 대한 일대 시위였으며 온 겨레를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더욱 굳게 묶어세워 통일운동에로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③ 우리 당은 주체88(1999)년을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해》로 정하고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를 빛나게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갔다.

조국통일을 최대의 애국으로 여기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8(1999)년 새해 첫날에 우리는 올해에 우리 당의 조국통일3대헌장과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로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을 불러일으키며 조국통일의 주체를 강화하고 남조선사회의 자주화와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남조선인민들이 한결같이 투쟁에 떨쳐나서도록 고무격려하고 그들과의 련대투쟁을 강화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에는 강성대국건설의 위대한 전환의 해의 요구에 맞게 통일운동에서도 새로운 열풍을 세차게 일으키시려는 숭고한 뜻이 어리여있었다. 당시 조선반도에는 우리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압살하기 위한 미제의 새 전쟁도발책동으로 하여 어느 시각에 전쟁이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긴박한 정세가 조성되고있었다.

우리 당은 주체88(1999)년 2월 3일 평양에서의 공화국정부, 정당, 단체련합회의를 통해 북과 남의 당국과 해내외의 정당, 단체들이 주체88(1999)년을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해》로 정하고 조국통일의3대원칙을 충실히 리행해나가며 오늘의 격페상태를 해소하고 조국통일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하여 하루빨리 당국회담을 포함한 북남사이의 폭넓은 대화를 마련할것을 제의하였다.

련합회의는 새로운 대화를 마련하기 위하여 그 선행실천사항으로서 공화국을 반대하는 외세와의 《공조》를 파기하고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하며 《보안법》을 페기하는것과 함께 남조선의 통일애국단체들과 인사들에게 통일운동과 활동의 자유를 보장할데 대한 문제를 남조선당국에 제기하였다.

해내외의 온 겨레는 물론 수많은 나라 정부, 정당, 단체들과 평화애호인민들이 우리의 련합회의제안을 열렬히 지지환영하면서 그것이 하루빨리 실현되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자들은 우리의 련합회의제안에 대해 말로는 《환영》한다고 하면서도 《진의가 명백치 않다.》느니, 《조건부 없는 대화》니 뭐니 하면서 이른바 《일괄타결안》이라는것을 내들고 그 누구의 《개혁을 통한 시장경제도입》을 떠들었다. 그런가 하면 북침을 목적으로 한 미제침략군과의 합동군사연습을 련속 벌려놓고 《보안법》의 일부 조항들에 대한 《개정》여론으로 그의 전면페기를 회피하면서 통일운동단체들과 애국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전례없이 강화해나섰다.

우리 당은 조성된 정세에 대처하여 2월 8일과 5월 12일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담화를 발표하여 우리의 북남대화제의는 외세와의 《공조》와 합동군사연습을 중지할데 대한 문제 등 선행조건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 한 틀거리속에 있는 제안이며 우리가 주장하는 선행실천사항들은 통일지향적인 북남대화를 위하여 필수불가결한것이라고 지적하고 선행실천사항리행문제를 놓고 저울질할것이 아니라 대화의 장애물들을 제거하는 용단을 내려야 할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우리  당은  남조선통치배들의  사대매국행위와  반통일적죄행을  만천하에  고발하여  분렬주의세력을  고립약화시키면서  겨레의  통일열기를  북돋아주기  위해  주체88(1999)년  4월  10일  평양에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전원회의를 소집하도록 하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불후의 고전적로작 《온 민족이 대단결하여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자》에서 밝혀주신 사상과 방침을 조항별로 구체화한 민족대단결과 조국통일을 위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구호를 채택하여 발표하도록 하였다.

채택된 조국통일구호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조국통일3대헌장을 하루빨리 실현하고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며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의 해》인 주체88(1999)년에 기어이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고 7천만겨레가 총궐기하여 2000년대의 가까운 년간에 련방통일국가를 일떠세우려는 온 민족의 절대불변의 신념과 의지가 뚜렷이 반영되여있었다.

  우리 당은 남조선《민주로총》 대표들의 평양방문을 실현시켜 북남로동자들의 조직적인 련대련합을 이룩할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4월 27일 남조선의 《민주로총》 대표들이 당국의 방해책동을 박차고 수천리 이국의 머나먼 길을 에돌아 평양에 도착하였다. 《민주로총》 대표는 비행장휴계실에서 발표한 도착성명에서 조국이 분렬되여 반세기만에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된 격정을 토로하고 남북로동계급의 첫 상봉의 씨앗을 잘 가꾸어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새 장을 열어나가자고 호소하였다.

《민주로총》 대표들의 평양체류기간 량측 대표들사이에는 《통일념원 북남로동자축구대회》문제를 토의하기 위한 실무회담이 진행되고 공동합의문이 채택되였다.

북남로동자축구대회를 골자로 하는 공동합의문의 채택은 북남로동자들의 자주적인 접촉과 래왕, 련대를 성사시켜 로동계급을 민족의 단합과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 내세워주려는 우리 당의 탁월한 민족대단결사상과 위대한 인덕정치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우리 당은 북과 남, 해외의 통일운동단체들사이에 접촉과 련대련합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리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6월 1일에는 중국의 룡정에서 문익환목사의 생일 81돐에 즈음하여 《문익환목사회고모임》이 진행되고 6월 26일에는 《김구선생회고모임》이 성과적으로 진행되게 되였다.

 ④ 우리 당은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를 계기로 3자련대를 실현하도록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벌써 이해 년초부터 주체88(1999)년 8.15통일대축전을 계기로 3자련대련합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올려세우실 구상을 펼치시고 그 준비사업을 각방으로 다그쳐나가도록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와 해외만 모여서 하는 범민족대회는 절반짜리대회이며 북과 남, 해외가 다 모여서 해야 옹근대회가 된다고 간곡하게 가르치군 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8.15에 즈음하여 진행하는 제10차 범민족대회가 명실공히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의 대회가 되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축전의 명칭부터 전례대로 《제10차 범민족대회》로만 하지 말고 3자련대실현의 요구에 맞게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략칭 범민족통일대축전)로 정해주시였다. 그리고 범민족통일대축전을 애국과 통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다 참가하는 거족적인 통일행사로 빛내이기 위하여 대회에 남조선의 통일운동단체들을 다 참가시키기 위한 사업을 짜고들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축전사상 처음으로 남조선의 통일운동단체들인 범민련 남측본부와 《전국련합》, 《한총련》 대표들이 다 오게 되고 《민주로총》 대표와 《민주로총》 로동자통일축구선수단도 참가하게 되였다. 축전에는 전례없이 많은 해외동포들이 참가하였다. 일본, 중국, 로씨야, 유럽, 미국, 카나다, 오스트랄리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에서 온 해외동포대표들과 체류중에 있던 동포들을 포함하여 1 000여명의 동포들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범민족통일대축전 개막을 눈앞에 둔 8월초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행사준비에 자그마한 빈틈이라도 있을세라 거듭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9차례에 걸친 종래의 범민족대회들은 남조선의 기본통일운동단체 대표들이 참가하지 못한것으로 하여 3자련대가 실현된 대회로 되지 못하였다. 물론 범민족대회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범청학련》회의에 《한총련》 대표들이 참가하군 하였지만 그것으로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가 실현되였다고 말할수 없었다.

 주체88(1999)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남측의 기본통일운동단체 대표들이 다 참가한 명실공히 범민족적인 대회로 되게 되였다.

범민족통일대축전의 력사적지위와 의의를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행사를 잘 조직하여야 하겠다고 거듭 강조하시면서 이무렵 판문점에 나가 소년단원들이 읊게 될 축하문을 몸소 료해하기도 하시고 8.15통일대축전행사정형을 건건이 크게 보도하여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의 위용을 내외에 널리 과시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기도 하시였다.

주체88(1999)년 8월 13일,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과 조선의 통일을 바라는 진보적인류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서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의 막이 오르게 되였다.

축전개막에 앞서 대표들은 영생의 모습으로 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찾아뵙고 삼가 경의를 표시하였으며 금수산기념궁전광장(당시)에서 전민족대단결결의대회를 가지고 이번 범민족통일대축전을 북, 남, 해외의 3자련대의 새로운 장으로 만들어 민족대단결5대방침의 정당성과 그 생활력을 남김없이 과시하며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끝까지 관철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길 충정의 결의를 다지였다.

 이어 평양의 모란봉기슭 김일성경기장에서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 개막행사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개막식장인 김일성경기장은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실현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겨나갈 애국애족의 일념을 안고 북과 남, 해외에서 모여온 10만여명의 각계각층 군중들과 대표들로 차고넘치였다. 개막식에는 북과 남, 해외의 70여개의 정당, 단체대표들과 외국의 명예손님들이 수많이 참가하였다.

 개막식에 이어 김일성경기장에서는 북남로동자련대련합 통일축구경기가 진행되였다.

8월 15일 력사의 땅 판문점에서는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3자련합대회가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대회에서는 북측과 남측, 해외측을 대표하여 연설들이 있었다.

연설자들은 민족분렬의 수난을 가시고 통일조국을 일떠세우는것은 우리 세대에 맡겨진 성스러운 민족적임무라고 하면서 이번 대회를 계기로 3자련대와 련합을 더욱 강화하고 통일의 새 시대를 향해 힘차게 전진해나가자고 호소하였다.

온 대회장에 통일의 뜨거운 열기가 넘치는 가운데 《소년단행진곡》의 주악에 맞추어 조선소년단축하단이 씩씩하게 입장하였다.

여기는 북녘땅, 저기는 남녘땅, 다시는 이런 아픈 말을 하지 말고 통일된 조국이라는 말만 하며 살고싶다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분렬된 우리 나라를 통일조국으로 만들어 물려달라고 하는 소년단축하단의 절절한 호소는 참가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리며 저 멀리 분계선너머로 메아리쳐갔다.

이어 판문점 통일각에서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99범민족회의가 진행되였다.

8월 13일에 개막된 범민족통일대축전은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착공식,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을 위한 판문점3자련합대회,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99범민족회의, 북, 남, 해외통일예술축전 및 체육행사, 제4차 범청학련총회를 비롯한 범청학련행사들, 《조국통일상》수여식, 북남로동자축구경기, 범청학련통일롱구경기, 북, 남, 해외대표들의 련대련합모임 등 다채롭고 특색있는 정치, 문화, 체육행사들로 16일까지 련일 성황을 이루었다.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는 이처럼 전례없이 크고 성대하게 진행되였으며 민족의 자주와 대단결사상에 맞는 독특한 형식과 특색있는 행사들로 이채를 띠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8(1999)년 8월 15일 일군들에게 8.15통일대축전행사들이 당의 의도에 맞게 원만히 잘 진행되였다고 하시면서 이번 축전에서 어버이수령님의 유훈대로 범민련운동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 해외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앉음으로써 우리 시대에 와서 3자련대가 빛나게 실현되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참으로 99통일대축전 10차 범민족대회는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민족대단결강령으로 높이 들고 3자련대가 빛나게 실현된 전민족적인 통일대축전으로, 겨레의 통일열기를 급격히 고조시키고 2000년대의 가까운 년간에 조국통일을 기어이 실현할 우리 인민의 통일의지를 온 세상에 과시한 력사적인 대정치문화체육축전으로 력사에 아로새겨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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