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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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조국통일방침
제3절 조국통일5개방침
2.통일운동을 주동적으로 전진시킨 고무적기치

우리 당은 조국통일5개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렸다.

 ① 우리 당은 통일을 한사코 방해하는 분렬주의자들의 책동을 분쇄하고 조국통일에 유리한 평화적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조선의 반통일분자들은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정세가 복잡하게 변화되자 거기에서 그 무슨 어부지리를 얻어볼 심산으로 반공화국소동에 열을 올리면서 《흡수통일》이요,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이요 하는 불순한 목적실현에 매달리고있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와 김정일동지께서는 더욱더 긴장해지는 북남관계를 해소하여 통일에 유리한 환경을 마련하시려는 애국애족의 립장으로부터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력사적인 북남고위급회담을 발기하시고 회담이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훌륭한 결실을 맺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그리하여 주체79(1990)년 9월 드디여 서울에서 제1차 북남고위급회담이 열리게 되였으며 그후 평양과 서울을 오가면서 회담이 계속되게 되였다.

 당시 우리 당은 회담에서는 북과 남사이의 정치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고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실현할데 대한 문제와 북남불가침에 관한 문제를 상정시키고 합의를 이루도록 하였다.

 이 제안들은 조국통일5개방침에 밝혀진 북과 남사이에 조성된 첨예한 정치군사적대결상태를 해소하고 대결과 긴장으로부터 화합과 평화에로의 전환의 길을 열어나갈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안이였다.

 불가침문제는 남조선당국자들자신도 오래전부터 주장한바 있었던것만큼 그것을 반대할 그 어떤 리유와 구실도 있을수 없는것이였다.

 그러나 내외여론의 압력에 못 이겨 할수 없이 회담장에 나온 남측은 회담 첫 시작부터 북남사이의 정치군사적대결상태의 해소와 같은 본질적인 문제토의를 회피하면서 《교류, 협력》문제와 같은 부차적인 문제를 들고나와 문제토의에 인위적인 난관을 조성하는 한편 분렬주의적인 《실체인정》이니,《현실인정》이니 하는것을 고집하면서 억지를 부리다나니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와 김정일동지께서는 《교류, 협력》문제만을 고집하면서 회담앞에 난관을 조성하고있는 남조선당국자들의 불성실한 자세와 립장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여 우리의 불가침에 관한 선언과 남측의 화해와 협력에 관한 초안을 하나의 문건으로 채택하도록하는 포괄적이며 합리적인 방안을 제기하도록 하시였다.

 우리 당의 현명한 조치에 따라 우리측 대표단이 새롭게 제기한 이 방안은 불가침선언의 채택을 회피하려던 분렬주의세력들을 완전히 수세에 몰아넣었다.

 원래 남조선당국이 북남고위급회담에 응해나선 진의도는 회담에서 지연전술을 쓰면서 그 공간을 리용하여 북에 《자유화》바람을 불어넣어 북의 사회주의를 허물어보려는데 있었다.

 그 어떤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우리 공화국의 필승불패의 위력에 넋을 잃고 질겁한 남조선당국자들은 저들의 음흉한 목적을 실현할수 없다는것이 명백해졌을뿐아니라 회담에서 온 민족앞에 자기들의 반통일적, 반민족적기도가 드러나게 되고 공화국의 자주적이며 통일지향적인 립장의 정당성이 날이 갈수록 확인되고 그 지지분위기가 높아져 수세에 빠지게 되자 《총퇴각》전술로 회담을 파탄시키려고 책동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와 김정일동지께서는 남조선당국자들의 기도를 간파하시고 그들의 대화지연, 파탄책동을 막고 회담을 계속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어떻게하나 불가침선언을 채택하여 평화통일의 근본전제를 마련하시려는것이였다.

 남조선당국자들은 불가침선언이 채택되면 미군이 남조선에 남아있을 구실이 없어지게 되므로 이를 한사코 반대하는 미국의 사촉밑에 《팀 스피리트 91》합동군사연습을 감행함으로써 모처럼 마련된 북남고위급회담을 끝끝내 중단시켰다.

 남조선당국자들의 반통일적, 반대화적책동은 온 겨레와 세계평화애호인민들의 격분과 우려를 자아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80(1991)년 5월과 6월 에꽈도르좌익민주당대표단과 일본 교도통신사 사장을 접견해주신 자리에서 북남고위급회담이 앞으로 다시 열리는가 못 열리는가 하는것은 남측의 태도여하에 달려있다, 남조선당국자들이 북남불가침선언을 채택하겠다고 하면 북남고위급회담은 다시 열리게 될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면 북과 남이 서로 마주앉을 필요가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북남사이의 회담을 파탄시킬 생각이 없다고, 회담을 계속하자는것이 우리의 립장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분렬주의자들의 책동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일시적난국을 타개하고 조국통일에 유리한 국제적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우리 공화국이 유엔에 가입하는 주동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80(1991)년 9월 유엔총회 제46차총회에서는 참가국들의 일치한 찬동으로 표결없이 우리 나라가 유엔에 가입하게 되였다.

 국제무대에서 우리 공화국의 대외적지위가 한층 더 높아지고 우리의 조국통일방안의 지지자, 동정자대렬이 더욱 늘어나게 됨으로써 미제와 남조선반통일세력의 분렬주의정체는 더는 가리울수 없게 되였다.

 궁지에 빠진 남조선반통일세력은 회담장에 다시 나오지 않을수 없게 되였으며 10개월간이나 중단되였던 북남고위급회담은 우리의 인내성있는 노력에 의하여 다시 열리게 되였다.

 마침내 주체80(1991)년 12월 제5차 회담에서 력사적인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고 뒤이어 핵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3차례의 북남대표접촉을 거쳐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채택되게 되였다.

 북남합의서에서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원칙을 재확인한다는것을 명백히 하고 북남화해, 북남불가침, 북남협력, 교류사항들을 규정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남합의서가 채택된것과 관련하여 주체81(1992)년 신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난해말에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된것은 조국통일3대원칙을 관철하기 위한 전민족적인 투쟁과정에 이룩된 커다란 승리이며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길에서 새로운 리정표를 마련한 력사적사변으로 됩니다. 7.4남북공동성명과 더불어 이번에 채택된 북남합의서는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하려는 우리 민족의 일치한 요구와 자주, 평화에로 나아가는 현시대의 추세를 옳게 반영한 가장 정당한 조국통일강령입니다.》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와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주체81(1992)년 2월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북남고위급회담을 통하여 그 발효가 온 세상에 공표되였다.

 이 소식은 온 겨레에게 통일의 전도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키며 커다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온 겨레는 북남합의서의 채택발효는 《민족공동의 성과》로, 《민족적리념의 력사적승리》로 된다고 하면서 그 조속한 실현을 한결같이 바라마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통일운동사에서 또하나의 중대결실을 이룩한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며 주체81(1992)년 2월 제6차 북남고위급회담에 참가하였던 쌍방대표단성원들을 접견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이 북남합의서와 공동선언을 채택하기 위해 많이 노력한데 대해 격려해주시고 중요한것은 그것을 리행하여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민족대단결을 실현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외세의 간섭이 없이 자주적으로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에 남측 수석대표는 《그렇습니다. 그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라고 찬동을 표시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시여 통일을 하자면 자주적립장에 서서 민족대단결을 이룩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문제는 제도와 신앙 등 이 모든것을 초월하여 민족대단결을 이룩하는것이라고, 우리가 7.4남북공동성명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이룩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번에 북남사이의 불가침선언이 하나 채택되였으므로 이제는 자주와 민족대단결이 남아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대단결을 이룩하자면 정견과 신앙을 상관하지 말고 다 단결해야 하며 조국통일을 하겠다는 사람에 대해서는 비록 죄를 지었다 해도 과거지사를 다 백지화하고 이제부터 단결하자는것이 우리의 립장이라고 하시였다.

 이어 남측 대표들과 기념사진을 찍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쌍방대표들과 《북과 남이 힘을 합쳐 나라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어나가자》라는 력사적인 담화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담화에서 우리 겨레가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향하여 내디딘 귀중한 첫 걸음은 멈추어서도 안되고 주춤해서도 안되며 반드시 래일의 통일에로 이어져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주적립장을 철저히 견지하며 군비경쟁을 중지하고 군축을 실현하며 핵문제를 해결하고 민족의 대단결을 이루어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제6차 북남고위급회담에서 발효된 합의문건들은 북과 남의 책임있는 당국이 민족앞에 다진 서약이라고 하시면서 우리 공화국정부는 이번에 력사적인 합의문건들을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길에서 이룩한 고귀한 결실로 여기고 그 리행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것이라고 언명하시고 쌍방대표단의 사업에서 더 훌륭한 성과를 거두리라는 기대를 표명하시였다.

 민족앞에 무거운 장막이 드리웠던 1990년대 초에 북남합의서가 채택발효되여 평화와 통일의 리정표가 세워지게 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어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민족자체의 힘으로 나라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이룩할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닌 민족이라는것을 내외에 뚜렷이 실증하였다.

 북남사이의 력사적인 합의서는 그  발기로부터  채택발효에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의 빛나는 결실이였다.

②  우리 당은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를 열며 해내외의 통일애국력량을 망라하는 련합체를 내오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시켜나갔다.

 1990년대에 이르러 조국통일을 위한 범민족적성격을 띤 대회를 소집하며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력량을 망라하는 련합체를 내오는것은 성숙된 요구로 제기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1차회의에서 하신 시정연설과 주체77(1988)년 신년사에서 내놓으신 북남련석회의를 소집할데 대한 제안에 따라 북남련석회의 북측준비위원회가 구성되고 남조선에서는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련합》(《전민련》)이 결성되였다. 1980년대 초부터 북과 해외동포그리스도교교인들간의 대화가 벌어져 해외에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련합》이 결성되게 되였으며 그 이후 여러 지역의 해외동포들의 민족통일촉진대회가 진행되고 북과 해외동포들간의 범동포대회가 마련되게 되였다.

 주체79(1990)년 5월 조국통일5개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해 8월에 하신 연설 《온 민족이 단결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기자》와 이듬해 8월에 하신 담화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에서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는데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중요한것은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실현을 위한 과업과 방도를 뚜렷이 밝혀주시였다.

  ― 우리 당은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북과 남사이에 체육, 문화분야에서 래왕과 단합을 실현하여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하였다.

  민족의 통일의지를 반영하여 주체79(1990)년 제11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북남선수들에 대한 공동응원문제가 실현된데 이어 해방직후에 있은 경평축구경기이래 근 반세기만인 이해 10월에 평양과 서울에서 북과 남의 축구선수들이 서로 래왕하면서 통일축구경기를 진행하였으며 통일지향을 담아 범민족음악회가 열리였다. 그리고 평양에서 북과 남, 해외의 예술인들의 참가밑에 나라가 분렬된 이후 처음으로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성대히 진행되고 12월에 서울에서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가 열리였다.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이러한 분위기속에서 주체80(1991)년에는 처음으로 북남유일팀을 구성하여 제4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차 세계청년축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하나가 된 조선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온 세상에 떨치였다.

 ― 우리 당은 북과 남, 해외를 망라하는 범민족적인 회합을 실현하도록 하였다.

 우리 당은 조국통일을 하루빨리 이룩하려는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지향이 높아지고 통일의 주체적력량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되고있는 정세의 흐름을 깊이 통찰하고 북과 남, 해외의 여러 통일운동단체 대표들과 각계각층의 애국인사들이 참가하는 범민족대회를 열도록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온 겨레의 커다란 관심속에 주체78(1989)년 7월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기간 평양에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해내외 동포들의 조국통일촉진대회가 소집되고 대회에서 조국해방 45돐을 맞는 주체79(1990)년 8월 15일 판문점에서 범민족대회를 개최하자는 호소문이 발표되였다.

 마침내 주체79(1990)년 8월 13일 조선의 기상,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는 조종의 산 백두산정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개막과 백두-한나대행진출정식이 성대히 거행되였다.

8월 15일, 우리 민족의 분렬비극의 상징이며 축도이기도 한 판문점에서는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1차 범민족대회가 민족공동의 력사적인 회합으로 대성황리에 열리였다.

 대회에서는 온 민족의 리익에 맞게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투쟁목표와 방도를 찾고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범민족대회결의문과 해내외 동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북남당국과 유엔사무총장, 미국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와 일련의 문건들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범민족대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된것을 누구보다 기뻐하신분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9(1990)년 8월 18일 범민족대회대표들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북과 남, 해외에서 온 대표들과 마주앉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범민족대회성과를 열렬히 축하하시고 조국통일의 희망을 안겨주는 1990년대의 첫해에 열린 이번 범민족대회는 1948년에 있은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와 더불어 조국통일을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사에서 특기할 력사적인 회합이였다고 긍지높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의 단합으로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기 위한 여러가지 문제들을 밝혀주시고 조국을 통일하려면 그가 북에 살건 남에 살건 해외에 살건 관계없이 온 겨레가 통일운동에 떨쳐나서야 하며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에 관계없이 각계각층의 모든 동포들이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하나로 굳게 뭉쳐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앞으로 민족대단결의 기치, 조국통일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들고 헌신적으로 투쟁함으로써 모두다 조선의 참된 애국자, 조국통일의 투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날 온 민족이 단결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길데 대하여 하신 담화는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세력을 하나로 묶어세우는 강령적지침으로 되였다.

  ― 우리 당은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을 하루빨리 결성하도록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의 인사들과 해외인사들이 서로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할 때에는 파쑈폭압의 탄압속에서 투쟁하는 남녘의 인사들을 존중해주시면서 서로 의견을 일치시키도록 이끌어주시였다.

 그리하여 주체79(1990)년 11월 범민족통일운동단체인 《범민련》이 결성되게 되였다.

 《범민련》은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전민족적애국세력의 련합조직으로, 애국적인 통일운동조직으로 세상에 탄생하여 북과 남, 해외에 상설적인 지역본부를 두고 광범한 정치세력들을 조직화하고 통일운동을 이끌어나갈수 있는 기구들을 갖춘 범민족통일운동단체로서의 사명을 수행해나갔다.

 주체81(1992)년 8월 1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에서 진행된 제3차 범민족대회에 참가한 해외동포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우리는 외세의존을 철저히 반대하고 민족자주의 립장에 서서 조국통일을 자체의 힘으로 실현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는 물론 해방후에 각계각층 인민들과 인사들을 애국애족의 길로 이끌어주신데 대하여 김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리고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조선동포들이 굳게 단결하기만 하면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방해책동을 짓부시고 조국의 통일을 이룩할수 있다고 확신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불면불휴의 로고와 현명한 령도로 《우리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자!》라는 구호아래 해마다 8월 15일을 계기로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세력은 평양과 판문점, 서울과 도꾜에 모여 북과 남, 해외가 모두 함께 혹은 지역별로 범민족대회를 열고 전 민족적범위에서 통일의 열기를 높여나갔다.

 ― 우리 당은 민족대단결의 기치밑에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사상과 정견이 다른 사람들도 민족단합의 길, 참다운 애국, 애족의 길로 이끌어주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없이 넓은 도량으로 주체80(1991)년 11월 말 미국에서 사는 《세계평화련합》 문선명총재를 직접 만나주시고 참다운 애국, 애족의 길로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듯 민족앞에 씻을수 없는 큰 죄를 지은 사람까지도 민족대단결의 기치아래 하나하나 묶어세우시였다.

 한생을 거의 미국땅에서 보낸 림창영재미동포도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품에서《조국통일상》수상자로서, 조국통일범민족련합 해외본부 의장으로서 통일애국의 길에 남은 생애를 바치게 되였다.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위대한 품에 안기면 누구를 물론하고 통일애국을 지향하게 되며 값높은 삶을 누리게 된다는것은 온 겨레의 심장속에 간직된 귀중한 진리였다. 해외에 사는 많은 인사들이 백두산절세위인들을 한번 만나뵙고는 자석에 끌리듯이 수령님과 장군님을 따랐으며 해마다 평양에 찾아왔다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조국을 방문할 때마다 친히 만나주시고 우리 민족앞에 나서고있는 최대의 과업은 조국통일을 실현하는것이다, 조선민족이라면 누구나 다 조국통일에 모든것을 복종시켜야 한다, 그 누구도 조국통일을 외면하고 자기의 리익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그들이 조국통일을 위하여 지금까지 많은 일을 하였는데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바란다고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 믿음의 대하에서 민족의 운명속에 개인의 운명도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수많은 인사들이 조국통일을 위한 전 민족대단결을 강화하는 길에서 헌신분투하게 되였다.

 이처럼 우리 당은 1990년대초에 조국통일5개방침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그처럼 복잡하게 얽혀가고있던 내외정세하에서도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은 힘찬 진군을 계속하게 되였으며 귀중한 성과들을 거두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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