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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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조국통일로선
제2절 전민족적통일운동을 힘있게 추동한 위대한 기치
3. 전민족적운동에로의 확대강화

1970년대이후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이 끊임없이 강화되여 통일운동이 전민족운동으로 끊임없이 확대발전된것은 우리 당의 조국통일로선의 위대한 생활력의 뚜렷한 과시이다.

 

① 우리 당은 변화되는 정세의 요구에 맞게 북남대화로 안팎의 분렬주의자들의 반통일책동을 분쇄하면서 통일운동을 확대발전시킬수 있는 전제를 마련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60년대말-1970년대초에 이르러 변화되는 국제국내정세추이를 통찰하시고 획기적인 북남대화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남조선의 민주공화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인사들과 아무때나 접촉할 용의가 있습니다.》     

북남대화를 주동적으로 령활하게 진행하도록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에 의해 주체60(1971)년 9월 20일부터 주체61(1972)년 8월 11일까지의 사이에 25차례에 걸치는 쌍방적십자단체 예비회담과 13차의 쌍방실무자회담이 진행되는 가운데 적십자회담과는 별도로 주체61(1972)년 5월초에는 첫 북남고위급정치회담이 평양에서 마련되고 력사적인 7.4북남공동성명의 채택이라는 조국통일사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거대한 정치적사변이 이룩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화있는 대결》, 《대화있는 경쟁》, 《대화있는 공존》을 내들고 좋게 발전하는 겨레의 통일운동에 도전해나선《유신》독재자가 이른바 《특별성명》이라는것을 들고나와 분렬영구화를 정책으로 선포하였을 때에는 조국통일5대방침으로 분렬주의자들의 정체를 순간에 발가놓으시였고 이어 나라의 통일문제를 당국자들간에만 론의할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대민족회의와 북남정치협상회의를 열것을 다시금 제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64(1975)년 10월 당창건 30돐기념대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와 주체67(1978)년 9월에 진행된 공화국창건 30돐기념 중앙경축대회에서 하신 력사적인 보고에서 《유엔군사령부》의 해체와 남조선강점 미군의 철거,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에로의 전환,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의 전국적인 민족통일전선의 형성, 북남련방제의 실시 등 우리가 견지하고있는 립장과 방안을 다시금 천명하시였다.

우리 당의 적극적인 노력에 의하여 1970년대에 7차례의 북남적십자회 본회담과 3차례의 북남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내오기 위한 북과 남의 련락대표들의 접촉과 제35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북남통일팀출전에 관한 4차례의 회담이 진행되였으며 북과 남의 총리접촉을 위한 실무자회담이 주체69(1980)년 2월 6일부터 판문점에서 9차례에 걸쳐 진행되였다.

이 과정에 우리 당의 조국통일로선의 정당성을 내외에 과시하고 통일운동을 전민족적범위에서 벌려나갈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마련되게 되였다.

② 우리 당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통하여 통일운동을 전민족적범위에로 확대발전시켰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69(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제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준비위원회와 같은 민족공동의 협의기구를 내오기 위한 예비회의를 가질것을 제의하는 편지를 채택하고 그것을 남조선과 해외의 각계각층 인사들에게 보내였다. 그리고 민족통일촉진대회와  북과 남, 해외 정치인들의 100인련합회의 등을 발기하고 실무적대책들을 제의하였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지지하는 기운이 높아가는 가운데 1981년 11월에 오스트리아의 윈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북과 해외동포 그리스도교신자들간의 제1차 대화가,  다음해 12월에는  핀란드의  헬싱키에서 제2차 대화가 진행되게 되였으며 1984년 12월에는  비상설협의체로서 《조국통일을 위한 민족련합》이 결성되게 되였다.

1984년 9월 남조선수재민들에게 보낸 우리 당의 동포애적조치를 계기로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분위기가 더욱 높아져 1984년에 북남사이에 경제회담, 적십자회담이 여러차례에 걸쳐 열리고 북남국회회담을 마련하기 위한 예비접촉이 진행되였다. 그리고 조국해방 40돐을 계기로 민족분렬이후 처음으로 북남사이에 예술단과 고향방문단의 호상방문이 실현되였다.

우리 당은 전민족적범위에서 조국통일에 대한 열망이 높아가는 환경속에서 주체76(1987)년 11월 북과 남사이의 민족적단합을 위한 5개 항목의 방안을 내놓았으며 주체78(1989)년 1월에는 북과 남의 각당, 각파, 각계각층의 의사를 대표할수 있는 지도급인사들로 북남정치협상회의를 가질것을 제의하였다.

이 모든 제안들은 내외의 광범한 인민들의 한결같은 지지와 찬동을 받았다.

이 시기 남조선에서는 우리 당의 진지한 평화통일노력에 보조를 맞추어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이 힘차게 벌어졌다.

남조선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1980년 광주인민봉기와 1987년 6월 인민항쟁, 1988년 6.10, 8.15북남학생회담성사를 위한 투쟁 그리고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참가를 위한 투쟁 등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렸다.

그리하여 남조선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은 소수의 운동이 아니라 다수의 운동으로 전환되고 일부 계층에 국한된 부분적인 운동이 아니라 각계각층을 망라한 대중적운동으로 확대되였으며 단순한 통일론의에 그치는것이 아니라 조국통일3대원칙에 기초하여 련방제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으로 발전하였다.

③  우리 당은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적단합을 이룩하여 조국통일위업을 성취하기 위한 투쟁을 보다 높은 단계에서 힘있게 벌렸다.

1990년 8월 15일 판문점에서는 해방후 45년만에 처음으로 해내외통일운동단체대표들과 각계각층 인사들의 참가밑에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1차 범민족대회가 성대히 열렸다. 이어 북과 남, 해외에서 동포들사이의 접촉과 교류, 통일축전들이 련이어 마련되였다.

1990년 9월 제11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한  북남선수들에  대한  공동응원이 실현되고 10월에는 평양과 서울에서 《통일축구경기》가 진행되였다. 그리고 민족분렬이래 처음으로 북남유일팀이 구성되여 제41차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제6차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민족의 슬기와 기개를 떨치였고 1990년 10월 평양에서는 북과 남, 해외의 예술인들의 범민족통일음악회가 성대히 열렸으며 12월에는 서울에서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1990년 11월에 베를린에서는 북과 남, 해외의 3자실무회담이 열리고 여기에서 전민족적인 통일애국세력의 련합체로서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이 결성된데 이어 1992년 8월  판문점에서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련합(범청학련)이 결성되였다.

범민련과 범청학련이 결성됨으로써 북과 남, 해외동포들의 3자련대, 련합을 실현하고 통일운동을 조직화하는데서 새로운 국면이 열리게 되였다.

1990년 9월부터 북과 남의 총리들을 단장으로 하는 북남고위급회담이 내외의 커다란 관심속에 평양과 서울에서 진행되였다.

우리의 진진하고도 성의있는 노력에 의하여 북남고위급회담에서는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채택되였다.  뒤이어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그 발효를 세상에 선포하였다.

북남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의 채택은 우리 당이 변함없이 견지하고있는 조국통일로선의 위대한 승리이다.

우리 당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국통일운동은 해외동포들속에서도 민족적애국운동으로 급속히 확대발전되여 이전 쏘련지역에서는 1989년 11월에 조직되였던 조선통일촉진위원회(아쏘크)가 1993년 9월 제2차 대회에서 국제고려인통일련합회(국제고통련)로 개편되였으며 이해 10월에는 재로조선공민중앙협회가 조직되였고 범민련재중조선인본부를 토대로 하여 1991년 3월에는 재중조선공민총련합회가 결성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82(1993)년 4월 6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회의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발표하시여 7천만겨레를 조국통일운동에 떨쳐나서도록 이끌어주시였으며 북남최고위급회담의 성과적보장을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와 온갖 심혈을 다 바치시다가 위대한 심장의 고동을 멈추시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고 슬픔에 잠긴 온 겨레를 일떠세워 위대한 수령님의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 불러일으키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통일위업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과 통일유훈을 집대성한 조국통일총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를 발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불멸의 총서에서  조국통일3대헌장을 정립하여주시고 그에 기초하여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유훈관철에서 나서는 원칙적문제와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당면과업들을 밝히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북남정당, 사회단체대표자련석회의 50돐에 즈음하여 민족대단결총서를 발표하시고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조국통일3대헌장과 민족대단결5대방침을 지도적지침으로 하여 전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한 여러가지 적극적인 조치들을 취하였다.

1998년 6월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와 민족경제협력련합회(민경련)가 조직되였으며 이해  8월 15일 판문점에서는 북과 남, 해외대표들의 참가밑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대축전》이 열리였고 이어 동포단합대회,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98범민족회의》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였다. 이듬해 8월에는 99통일대축전 10차범민족대회(범민족통일대축전)가 성대히 열려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가 실현되게 되여 통일운동은 명실공히 전민족적운동으로 벌어지게 되였다.

④ 우리 당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높이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펼쳤다.

2000년 6월의 평양상봉과 6.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발표는 조국통일운동에서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았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북남관계는 새로운 궤도에서 발전하게 되였고 민족대단합의 분위기와 겨레의 통일열망은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졌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북남관계를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 북남수뇌상봉을 또다시 마련하시는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탁월한 정치실력과 령활한 지략에 의해 주체96(2007)년 10월 4일 력사적인 《북남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채택되였다.

우리 당은 북남관계를 완전파국에로 몰아넣은 리명박역적패당의 반공화국대결책동을 짓부시고 조국통일운동을 줄기차게 벌렸다.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북과 남, 해외의 온 민족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반통일세력의 온갖 악랄한 책동을 과감히 짓부시며 이 땅에 기어이 통일된 강성국가를 일떠세우기 위한 거족적인 투쟁에 힘차게 떨쳐나서게 되였다.

이처럼 우리 당의 조국통일로선은 새 세기에 6.15자주통일시대를 펼치고 그 전진을 힘있게 추동한 위대한 기치로 되고있다.

조국통일로선, 하나의 조선로선을 한치의 드팀도없이 관철하는 바로 여기에 민족의 숙원이며 지상의 과제인 조국통일위업의 승리가 있다는것은 통일을 갈망하는 우리 겨레모두의 한결같은 확신으로, 신념으로 되였다.

조국통일운동에서 이룩된 이 모든 성과들은 전적으로 우리 당이 조국통일로선, 하나의 조선로선을 일관하게 견지하고 그 관철을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려왔기때문이다. 동시에 이 모든 성과들은 우리 당의 조국통일로선, 하나의 조선로선의 위대한 생활력의 뚜렷한 과시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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