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정책
목록으로
제2장 조국통일강령
제2절 새 세기 조국통일대강
1. 6.15북남공동선언
2) 6.15자주통일시대를 펼친 통일대강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북남공동선언은 민족대단결과 자주통일의 새시대를 열어놓았습니다.》

6.15북남공동선언은 우리 민족끼리를 핵으로 하는 북남관계발전의 리정표이며 조국통일의 대강이다.

우리 겨레는 우리민족끼리기치밑에 6.15공동선언을 리행하기 위한 투쟁을 통하여 반세기가 훨씬 넘게 지속되여온 반목과 대결의 력사를 화해와 단합, 민족공조의 력사로 확고히 전환시키여 민족대단결과 자주통일의 새로운 장을 펼쳐놓았다.

① 6.15북남공동선언은 삼천리에 자주통일의 열풍을 몰아왔다.

온 겨레는 6. 15공동선언이 발표되자마자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민족공동의 통일애국리념으로, 민족운명개척의 기치로 받아들이고 전폭적으로 지지환영하였으며 그 구현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으로 조국통일운동을 북과 남, 해외를 포괄하는 전민족적인 반미자주통일운동으로 확대발전시켰다.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 결정적담보인 통일의 주체적력량을 튼튼히 마련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서는 북과 남, 해외가 서로 련대련합하여 공동행동을 벌려나가는것이 중요하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온 민족의 대단결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련대련합하여 공동행동을 벌리는 과정에 이루어지고 공고화됩니다.》

6.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새 세기에 들어와 북과 남, 해외의 공동행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였다.

  - 민족통일대회들과 민족통일대축전들은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우리 민족끼리 손을 잡고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려는 7천만겨레의 확고한 의지를 힘있게 과시한 북과 남, 해외의 3자련대의 대정치문화축전으로 펼쳐졌다.

6.15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하기 위한 투쟁과정에 민족통일대회와 민족통일대축전은 시대적요구에 맞게 확대발전됨으로써 조국통일의 주체적력량을 더욱 튼튼히 다지는 전민족적인 통일운동으로 확고히 전환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우리 민족은 통일행사를 판문점에서 기본으로 진행하던 지난 시기와는 달리 평양과 서울, 금강산과 인천 등 북과 남의 지역들을 오고가며 6.15북남공동선언발표와 8.15를 기념하는 민족통일대축전과 민족통일대회를 해마다 대성황리에 진행하였다.

축전들과 대회들에서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 대표들은 민족의 통일의지를 반영하여 민족단합대회, 연구토론회, 정치대토론회, 계층별 상봉모임, 체육 및 유희오락경기, 합동예술공연, 금강산등산 등 여러가지 다채롭고 이채로운 정치문화행사들을 진행하였다.

주체90(2001)년 6월 15일부터 6월 16일까지 민족의 명산, 세계의 명산 금강산에서 열린 《6.15공동선언발표 1돐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북과 남, 해외의 광범한 각계층의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열기 위한 굳은 의지를 내외에 힘있게 과시한 민족적대회합이였다.

동시에 이 민족적대회합은 6.15북남공동선언의 리행을 방해하는 미제와 반통일세력들에게는 커다란 타격으로 되였다.

6.15공동선언발표 1돐을 기념하여 진행된 민족통일대토론회는 그후 민족통일대축전으로 발전하여 온 겨레의 기대와 관심속에 해마다 성대히 거행되였다.

민족통일대축전을 계기로 진행한 다채로운 유희오락 및 민족체육경기들은 북과 남, 해외대표들로 하여금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이 땅, 이 하늘아래서 서로 돕고 이끌며 민족공동의 문화와 력사를 창조해온 우리 겨레의 우수한 전통을 그대로 이어 민족대단결의 위력으로 분렬의 아픈 상처를 하루빨리 가셔내려는 일념을 마음속깊이 간직하게 하였다.

그리고 북과 남, 해외예술인들의 합동예술공연과 금강산의 명승들중의 하나인 구룡연에 대한 공동등산은 우리 민족끼리의 대명제아래 민족의 대단결을 기어이 성취할 겨레의 뜨거운 통일열망을 금강산 1만2천봉우리에 력력히 새겨놓았다.

6.15자주통일시대에 펼쳐진 민족통일대회들과 민족통일대축전들은 북과 남, 해외가 련대련합하여 공동행동을 힘있게 벌려나갈 때 6.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해나갈수 있다는것을 실천으로 확증한 뜻깊은 대정치축전이였다.

실로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사에 빛나는 장을 아로새긴 6.15공동선언발표기념 민족통일대축전들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서로 손을 맞잡고 뜻과 마음을 하나로 합쳐가는 민족의 새로운 모습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그리고 어떤 광풍이 몰아쳐온대도 추호의 흔들림없이 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내외의 반통일세력들의 책동을 단호히 짓부시며 반미자주통일의 대문을 활짝 열어나가려는 7천만겨레의 통일의지를 더욱 확고하게 하였다.

-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북과 남, 해외의 부문별, 계층별 통일운동도 활발히 벌어졌다.

2001년 5월과 2004년 5월, 2007년 5월 금강산과 평양, 남조선의 창원에서 진행된 로동자들의 통일대회를 비롯하여 북남로동자들의 대토론회, 상봉모임, 통일수련회가 진행된것만 해도 수십차에 달한다. 또한 2001년 7월과 2004년 6월의 북남농민통일대회, 2002년 10월과 2005년 5월의 북, 남, 해외 청년학생통일대회와 북남대학생상봉모임, 2002년 10월의 북남녀성통일대회 등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학자, 언론인, 문학인, 종교인들의 계층별 통일대회들과 상봉모임, 토론회도 광범히 벌어졌다.

이 모든 통일행사들에서는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실천하기 위한 선언문, 호소문, 성명 등 공동문건들을 채택함으로써 겨레의 통일의지를 만방에 과시하였다.

특히 2005년 3월 북과 남, 해외의 정당, 단체, 인사들을 폭넓게 망라한 전민족적통일운동기구인 《6. 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6. 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된것은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6. 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겨레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결합시킬수 있는 민족대단결의 모체, 강력한 조직적추진체를 가지게 되였으며 북과 남, 해외의 조직적련대하에 반미자주통일의 새 력사를 개척해나갈수 있게 되였다.

② 6. 15공동선언은 삼천리에 반미자주화운동의 열풍을 몰아왔다.

6.15공동선언발표후 조선반도에서 일어난 커다란 또 하나의 변화는 반미자주화기운이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지고 남조선강점 미군을 전쟁의 화근으로, 조국통일의 주되는 방해자로 인정하고 그 철수를 요구하는 투쟁이 힘있게 벌어진것이다.

- 공화국의 전체 인민들은 6.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원쑤들이 칼을 빼들면 장검을 휘두르고 원쑤들이 총을 내대면 대포를 내댄다는 배짱과 필승의 신념으로 반제군사전선을 튼튼히 다졌으며 미국의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을 단호히 저지파탄시켜나갔다.

령토의 크기에 있어서나 인구수에 있어서 대비도 안되는 공화국과 미국과의 치렬한 대결은 남조선인민들에게 커다란 긍지와 자부심을 안겨주었다. 그들은 한피줄을 나눈 북녘의 동포들은 그처럼 어려운 속에서도 자기의 의지를 조금도 굽히지 않고 제 할소리, 제 할바를 다하는데 대하여 경탄을 금치 못해하면서 자기들도 용기를 가지고 나서면 능히 미국의 지배하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고 반미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서게 되였다.

- 6.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기 위한 겨레의 통일열망이 날을 따라 높아가고있는 벅찬 현실은 남조선에서 반미반전투쟁이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힘차게 벌어지게 하였다.

6.15북남공동선언발표후 남조선에서 빠른 속도로 확대되였던 반미투쟁은 소수의 투쟁이 아니라 다수의 투쟁으로, 일부 특정한 계층에 국한된 투쟁이 아니라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광범한 대중적투쟁으로, 일부 지역에 국한된 투쟁이 아니라 남조선전역을 포괄한 큰 규모의 투쟁으로 강화발전되였다.

날을 따라 높아가는 남녘겨레의 이와 같은 반미반전투쟁은 그 이전시기에 비해 보다 높은 단계에서 벌어졌다.

그것은:

∘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은 우선 살인마 미군철수, 미제의 식민지지배와 간섭책동반대 등의 높은 투쟁목표를 제기하고 보다 대중화, 적극화해나간것이다.

지난 시기 남조선에서의 반미투쟁은 주로 미제침략군의 남조선인민들에 대한 민족적모욕과 만행을 반대하는데 국한되여있었다.

그러나 6.15후 남조선인민들은 《미군철수》, 《미국의 지배와 예속반대》, 《전쟁책동중지》, 《군사기지철페》, 《불평등협정철페》 등의 높은 투쟁구호와 목표들을 제기하고 견결한 투쟁에 나섰다.

2002년 6월 미제침략군에 의한 두 녀중학생의 살해사건을 계기로 남조선전역에서 벌어진 초불시위투쟁에서만 보아도 잘 알수 있다,

 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두 녀중학생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광화문앞에서 벌어진 초불시위는 온 남녘땅에 반미초불의 바다가 펼쳐지게 한 대중적반미시위의 서곡으로 되였다.

2002년 6월부터 끊임없이 계속되여온 이 투쟁에는 그해 8월까지의 사이에만도 연 120만명이 참가하였고 기만적인 재판놀음에서 두 녀중학생을 살해한 남조선강점 미2사단 44공병대소속 장갑차운전병 마크 워커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노라는 살인범들에게 무죄판결이 결정된 그해 11월 20일부터 27일까지 1주일사이에는 무려 1 000여개 단체의 연 110만여명에 달하는 남녘의 각계각층의 인민들이 참가하였다.

그야말로 온 남녘땅은 초불천지, 초불바다였다.

이 과정을 통하여 남조선에서의 반미투쟁은 이전 시기에 비하여 높은 투쟁구호를 제기하고있을뿐아니라 점차 대중화되여가고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지난 시기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은 《한총련》을 비롯한 일부 진보적인 단체나 계층들에게만 한정되여왔으며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 극복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6.15시대에 들어와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은 이러한 제한성을 극복하고 로동자, 농민, 지식인, 경제인, 청년학생들은 물론 반미운동에 무관심하던 일반주민들과 예술인, 체육인들, 정치에 낯을 돌리지 않고있던 환경단체, 종교단체들, 지어 《법》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들과 일부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보다 대중화된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남녘겨레의 이와 같은 반미, 반전의 초불은 2004년 2월 13일 《국회》에서 굴욕적인 《이라크추가파병안》이 통과되자 더욱 세차게 타올랐다.

또한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을 철회할것을 요구하는 반미단식투쟁이 한양대학교, 전남대학교, 덕성녀자대학교 등 《한총련》산하의 거의 모든 대학들에서 동시에 전개되였다.

이와 관련하여 남조선의 한 통일문제연구단체는 미군철수와 관련한 여론조사결과를 전하면서 《이남민중의 절대다수인 82.7%가 미군의 조속한 철수를 요구하고있다.》고 밝혔다.

∘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은 또한 조선민족 대 미국의 대결구도를 실천으로 형성하기 위한 투쟁과 결부되여 힘차게 전개되게 된것이다.

《한총련》과 범민련 남측본부, 범청학련 남측본부, 《6.15공동선언실천련대》,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불가침운동본부》 등 수십개의 시민사회단체들은 민족공조를 실현하여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공화국의 제안이 나오자마자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호응해나섰다.

이러한 사실들은 남조선인민들이 북녘동포들을 운명공동체로 생각하면서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압살책동을 결코 공화국에만 국한한것이 아니라 온 민족에 대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북녘동포들과 운명을 같이할 의지를 안고 투쟁하고있다는것을 보여주었다.

∘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은 또한 불과 몇개 지역의 테두리에서 맴돌던 지난 시기와는 달리 남조선 전지역에 급속히 확대되였다.

남조선각지에서는 반미투쟁단체들이 수많이 생겨났다.

《6.15남북공동선언실현을 위한 부산시민련대준비위원회》(2001년 4월 10일), 《반미녀성회》(2002년 4월 29일) 등을 비롯하여 남조선의 전지역에 반미투쟁단체들이 속속 결성되였다.

《반미, 반전, 북미불가침조약체결촉구, 녀중생을 살해한 미군철수를 위한 청년학생단식롱성단》, 범청학련 남측본부, 《서울동부민중련대준비위원회》, 《민주사회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한국기독교 교회위원회》, 《미군철수국민운동본부》 등을 비롯한 남조선의 수많은 학생, 시민단체들은 성명과 호소문을 발표하여 미국의 강도적인 대조선전쟁책동을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분쇄하고 민족의 활로를 개척해나가기 위한 투쟁을 힘차게 벌려나갔다.

∘ 남조선인민들의 반미반전투쟁은 또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결부되면서 매우 다양한 형태로 벌어진것이다.

이 시기 남조선에서는 반미투쟁이 집회, 시위, 기자회견과 같은 종전의 형식과 함께 보다 대중적인 형식이 결합되여 벌어졌다. 남조선인민들은 대규모의 초불시위와 함께 가족동반시위, 련인들의 반미시위산보, 1인시위, 싸이버운동, 부쉬인형 감옥에 넣기, 대형미국기발찢기, 반미가요보급, 반미주제만화전시회, 시랑송모임, 집단단식기도회, 백악관항의방문, 《3 000배운동》(3 000번 엎드려 미국을 단죄하는 기도를 올리는것) 등 다양하고 기발한 형태의 투쟁을 벌리였다. 각지 거리들에서는 반미주제의 만화전시회, 거리음악회 등이 자주 열려 길가던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으며 호전광 부쉬를 야유하고 조소하는 시와 노래들이 많이 창작, 보급되고 인터네트홈페지들에 련재되여 인기를 끌었다.

제반 사실들은 6.15시대에 남조선에서 반미가 막을수 없는 시대적흐름으로 확고히 자리잡았으며 인민들의 반미반전투쟁이 지난 시기와는 구별되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더욱 대중적으로 확대발전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6.15북남공동선언은 북과 남, 해외의 통일애국력량의 련대련합을 보다 높은 단계에서 실현하고 남조선인민들의 반미자주의식, 민족공조의식을 북돋아줌으로써 온 겨레의 반미, 반전, 조국통일투쟁을 더욱 힘있게 떠밀어준 위대한 추동력이였다.

 ③ 6.15북남공동선언은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새 시대를 펼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북과 남의 대화는 민족공동의 리익을 앞세우고 북남사이의 불신과 대결상태를 해소하며 모든것을 조국통일에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진행하여야 합니다.》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일일천추로 념원하는 민족의 드높은 통일열망에 맞게 북과 남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해결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 과정에 북과 남사이의 당국간 대화와 협상이 활발하게 진행되였고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자신이 주인이 되여 확고히 풀어나갈수 있는 튼튼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 북과 남사이의 당국간 대화가 꾸준히 진행되였다.

6.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때로부터 8년간 북남상급회담과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그리고 북남군사당국자회담을 비롯하여 수많은 회담들이 진행하였다.

6.15공동선언발표이후 그 어느때보다도 높아진 민족의 통일기운에 맞게 주체89(2000)년 7월 30일 서울에서 제1차 북남상급회담이 진행된데 이어 주체96(2007)년 6월까지 21차례 진행되였고 40여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및 각 부문별 분과회의와 실무접촉을 비롯하여 10여차의 회담과 접촉이 진행되였다.

이러한 회담들에서는 6. 15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서 나서는 제반 문제들, 다시말하여 북남관계를 적대적인 대결관계로부터 우리 민족끼리의 관계로 전환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이 수많이 론의되고 합의를 이루어냈다.

1971년부터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지 전까지 지난 29년간 346회의 회담에서 북과 남은 겨우 35건의 합의를 이루어냈지만 6.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부터 2004년까지의 4년동안에만 하여도 북과 남은 118회에 걸쳐 회담을 진행하고 96건이나 되는 합의를 이루어냈다.

그리하여 북과 남은 개성공업지구를 건설하고 림진강수해방지문제, 해운협력문제, 경제협력의 제도적담보를 마련하기 위한 문제, 금강산관광문제, 동해 및 서해선철도, 도로련결문제를 비롯한 많은 경제협력문제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협의하고 일련의 전진을 가져왔다. 뿐만아니라 북과 남은 북남사이의 투자보장, 2중과세방지, 상사분쟁해결절차, 청산결제를 기본내용으로 하는 합의서발효통지문을 정식 교환한것을 비롯하여 경제협력과정을 순조롭게 하기 위한 일련의 문제들에 대하여 합의를 보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북남사이의 이러한 긍정적인 분위기는 군사령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2000년 9월 공화국인민무력부장과 남조선의 국방부 장관사이의 첫 군사회담에서는 북남사이의 끊어진 철길을 이으며 도로를 열어놓기 위한 사업에서 서로 긴밀히 협력할데 대하여 합의를 보았으며 2004년 5월부터 2007년 7월까지의 6차례에 걸치는 북남장령급군사회담에서는 서해에서의 우발적충돌을 방지할데 대한 문제, 서해해상에서 공동어로수역을 설정하는 문제, 상대방에 대한 비난방송을 중지할데 대한 문제,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보장조치문제, 다른 나라들의 불법어로행위를 막는데서 공동으로 대처할데 대한 문제 등을 가지고 심중한 론의를 벌렸으며 그 리행에서 일정한 전진을 이룩하였다. 또한 2007년 11월 공화국인민무력부장과 남조선국방부 장관과의 두번째로 되는 회담에서는 군사적적대관계를 끝장내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전쟁을 반대하고 불가침의무를 확고히 준수하기 위한 군사적조치들을 취해나갈데 대한 문제, 서해해상에서 충돌을 방지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실제적인 대책을 세우며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나가기 위하여 호상 협력할데 대한 문제 등 일련의 문제들에 대한 합의를 이룩하였다.

- 6.15자주통일시대의 대화와 협상은 각계각층의 광범한 인민들이 적극 참가하는 전민족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가일층 발전되였다.

6.15자주통일시대에 들어와 북과 남사이의 대화는 바로 지난날 소수 당국자들사이에만 진행되여오던 구태의연한 낡은 틀에서 벗어나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예술인, 지식인, 종교인을 비롯한 각계각층과 각당, 각파가 모두 참가하는 우리 민족끼리의 대화로, 우리 민족모두의 의사를 한데 모을수 있는 전민족적인 대화로 확고히 전환되였다.

북과 남은 6.15공동선언발표를 기념하는 민족통일대토론회와 민족통일대축전, 평화와 통일을 위한 3.1민족대회, 8.15민족통일대회 등 통일대축전들을 진행하였으며 북남로동자 5.1절통일대회, 북남농민통일대회, 북, 남, 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 북남교육자통일대회, 개천절기념 민족공동행사 등 수많은 민간급대화를 줄기차게 진행하였다.

여기서 대표적인 실례로 되는것은 주체91(2002)년 10월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서 진행된 《6.15공동선언실천과 평화를 위한 북남녀성통일대회》였다.

이처럼 6.15자주통일시대에 들어와 북남대화는 폭넓은 전민족적인 대화와 협상으로 가일층 발전하였다.

 -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에서 6.15북남공동선언이 안아온 또 하나의 자랑찬 성과는 북과 남사이에 래왕과 접촉이 활발히 진행된것이다.

6.15북남공동선언은 북과 남사이에 자유로운 래왕과 접촉을 실현할수 있는 넓은 길을 열어놓았다.

지난 시기의 래왕과 접촉은 어디까지나 소수 특정한 계급계층에 국한되여있었고 극히 드물게 진행되군 하였다.

그러나 6.15북남공동선언의 리행을 위하여 북과 남사이에는 당국자들만이 아니라 로동자, 농민, 지식인, 예술인, 종교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이 서로 오고가며 자유롭게 접촉함으로써 민족내부에 존재하는 오해와 불신을 가시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6.15북남공동선언이 열어놓은 북과 남의 래왕과 접촉은 지난 시기와는 다른 일련의 특징을 가지고 벌어졌다.

그것은:

∘ 우선 북은 남으로, 남은 북으로 서로 찾아오고 찾아가며 자유롭게 이루어진것이다.

∘ 또한 6.15시대의 래왕과 접촉은 적은 인원으로 제한되여있던 지난 시기와는 달리 대규모의 인원이 한꺼번에 오고가며 이루어졌다는데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 6.15북남공동선언은 북과 남의 다양한 체육, 문화교류의 장을 펼쳐놓았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자면 북과 남이 대화와 협상, 접촉과 래왕을 계속 활성화해나가는것과 함께 다방면적이고 다양한 체육, 문화교류사업도 다같이 밀고나가야 한다.

6.15자주통일시대에 북과 남은 평양과 서울, 부산, 대구, 제주도 등을 오가며 다양한 체육, 문화교류를 진행함으로써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한 사업에서 실로 놀라운 성과를 거둘수 있었다.

2002년 9월 29일부터 10월 14일까지 부산에서 진행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는 북과 남사이의 체육 및 문화교류가 민족의 단합을 실현하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가를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부산에서 타오른 성화는 온 남녘땅에 분렬의 어둠을 몰아내고 통일의 려명을 불러온 애국의 불씨, 민족단합의 열화였다.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가 진행되는 전기간 북의 선수단과 응원단은 부산을 비롯한 남녘땅 전역에 자주통일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주었다.

그후 2003년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를 계기로 《보수의 땅》이라고 불리워오던 대구를 비롯한 온 남녘땅에 또다시 통일의 열풍을 불러일으켰으며 그해 10월에 열린 제주도민족통일평화체육문화축전에서도 세차게 타번지였다. 2006년 12월 까타르의 도하에서 진행된 제15차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장에 북과 남의 선수들이 통일기를 앞세우고 함께 입장한것은 체육사업에서 북과 남의 민족적화해와 협력의 뚜렷한 발현이였다.

그뿐아니라 공화국의 국립교향악단과 남조선의 《KBS》교향악단과 《MBC》공연단의 서울과 평양에서의 공연, 북남단청자료전시 및 학술토론회, 일제의 조선인강제련행의 범죄성에 대한 북남공동학술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국호영문표기를 바로잡기 위한 북남토론회, 북남방송인토론회, 국내외동포들의 평양의학과학토론회,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공동학술토론회, 《우끼시마마루》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평양토론회 등 수많은 문화, 학술교류들을 통하여 민족의 지혜와 힘을 합쳐 반만년 단일민족의 찬란한 문화와 력사를 빛내이고 겨레의 존엄을 빛내이기 위한 련대련합을 보다 강화해나가게 되였다.

북과 남사이의 다양한 체육, 문화, 학술교류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기운을 한층 높이게 함으로써 6.15자주통일시대를 우리 민족분렬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민족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장으로 아로새기였다.

이처럼 6.15북남공동선언은 반미자주통일과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펼친 조국통일의 대강이다.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내리적재
보안문자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