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 애들에게 무엇을 주었더라?》​

 

조국해방전쟁시기 후방을 복구정비하고 인민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한 방대한 사업을 조직령도하시는 나날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가장 크게 관심하신것은 원쑤들에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 대한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전재고아들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일시적후퇴시기에 전재고아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적들에게 부모를 빼앗긴 전재고아들은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나라의 귀중한 보배들입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재고아들을 국가적으로 키우기 위한 대책을 세우시였다.

 

※ 항일혁명전쟁에서 희생된 혁명전사들의 유자녀들때문에 늘 마음을 써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 혁명자유가족학원을 세우시여 그들에 대한 시름을 얼마간 놓으실만 하게 되자 또다시 전쟁에서 원쑤들에게 부모를 잃은 아이들로 하여 마음쓰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록 나라의 사정이 어렵지만 될수록 자체의 힘으로 전재고아들을 키워야 한다고, 그러자면 국가에서 초등학원과 애육원을 늘이는 동시에 어머니들의 조직인 녀맹에서도 전재고아를 양육하는 운동을 벌려야 한다고 하시였다.

 

※ 주체39(1950)년 12월 하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순천군(당시)의 한 피살자유가족의 집에 들리시여 그 집 살림살이에 대해 알아보실 때였다. 세포위원장을 하던 남편을 원쑤놈들에게 빼앗기고 나어린 아들딸을 데리고 살고있던 그 집 녀인은 위대한 수령님께 다른 일은 근심할것 없으나 남편없이 어린 자식들을 키울 일이 걱정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심려어린 안색으로 아래목에서 자고있는 아이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시였다. 희미한 등잔불에 비친 어린것들의 얼굴에서 온 나라의 유자녀들과 고아들을 보시는것 같아 어버이수령님의 심중은 무거우시였다. 잠에서 깨여난 아이들을 품에 안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관이 가지고 다니던 비상용과자와 빵을 쥐여주시면서 이 아이들을 아버지있는 아이들 부럽지 않게 잘 키우자고 하시였다.  

그집 식구들과 헤여지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달리는 차안에서도 오래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였다. 이윽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누구에게라없이 《우리가 그 애들에게 무엇을 주었더라?》라고 하시였다. 전쟁을 겪은 나라들에서 고아문제는 전시뿐아니라 전후에까지도 하나의 사회적문제로 남아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불행과 고통을 주고있었기에 사람들은 이것을 피할수 없는것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재고아문제를 풀수 없는 문제로 보지 않으시였다.

 

후대들을 언제나 극진히 사랑하고 아끼시는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아무리 어려운 전시조건일지라도 단 한명의 고아도 한지에서 헤매이거나 헐벗고 굶주리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유자녀들과 고아들을 돌보는것을 조국과 인민을 위한 성스러운 싸움에서 목숨바친 혁명전사들에 대한 혁명가들의 의리로 여기시였으며 나라의 미래를 키우며 혁명의 양양한 전도를 마련하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과업으로 보시고 어떠한 어려운 조건에서도 유자녀들과 고아들을 훌륭히 키워야 한다고 인정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평양에 나오시자 곧 내각의 책임일군들에게 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을 조사장악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으며 주체40(1951)년 1월 21일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소집하시고 모든 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을 나라에서 맡아 키울 대책을 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속에 김정숙녀자기술학원(당시)이 창설되고 나라의 곳곳에 애국렬사유자녀들과 전재고아들을 국가부담으로 키우기 위한 유자녀학원과 유자녀보육원, 초등학원과 애육원들이 세워졌다.

 

 

그리하여 온 나라의 유자녀들과 고아들, 적후에서 헤매던 전재고아들이 전쟁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아무런 근심걱정을 모르고 행복하게 자라게 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유자녀들과 고아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키우겠는가를 늘 걱정하시며 그들의 생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각에서 제출한 학원원아들의 부식물공급정량표를 보게 되시였다. 담당한 일군들로서는 성의껏 작성하느라고 한 정량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량표를 세심히 따져보시다가 일군들에게 원아들은 당과 국가밖에 믿을곳이 없는 아이들이니 나라의 사정이 아무리 곤난하더라도 이 애들의 생활을 더 잘 돌보아주자고 하시면서 친히 정량표에 팥, 사과, 우유, 사탕, 두부를 더 적어넣으시였다. 한알의 총탄, 한g의 쌀이라도 더 많이 전선에 보내기 위하여 온 나라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모자라는것을 참아가던 간고한 나날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렇듯 부모잃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아끼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전선과 후방의 모든 일을 보살피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자주 학원에 나가시여 원아들의 생활을 따뜻이 보살펴주시였다.

 

※ 어버이수령님께서 강동에 있는 초등학원을 찾으시였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너무나 기뻐 어쩔줄 몰라하는 이곳 원아들을 한품에 안으시고 이름은 무엇이고 나이는 몇살인가,식사는 어떻게 하고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교직원들과 함께 원아들의 침실을 돌아보시다가 방이 모자라 침실을 낮에는 교실로 쓰고있다는것을 아시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심중하신 안색으로 일군들에게 그전에 우리가 산에서 싸울 때에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칸을 따로 지어주었는데 침실을 교실로 쓰게 해서야 되겠는가고 하시면서 군인들을 보낼터이니 교실과 목욕탕을 잘 짓고 운동장도 넓혀주라고 간곡하게 이르시였다. 그리고 원아들의 식당을 돌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식물공급정형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오리와 염소를 보내주겠으니 원아들에게 더 많은 고기와 젖을 먹이도록 하라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고는 일군들에게 학원의 교육사업방향에 대하여 교시하시면서 원아들이 자기의 부모를 학살한 원쑤가 어떤 놈인가를 똑똑히 알게 하며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고 몸을 튼튼히 단련하도록 하라고 가르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밤늦도록 원아들과 함께 계시면서 그들의 소박한 예술공연도 보아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원아들의 공연을 보는것이 좋은 극장에서 전문예술인들의 공연을 보는것보다 더 기쁘다고 하시면서 공연종목이 바뀔 때마다 박수도 쳐주시고 잘한다고 칭찬도 해주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유자녀들과 고아들에게 돌려주신 사랑과 은정은 참으로 끝이 없으시였다.

 

※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부모없는 아이들에 대한 국가적인 교육대책을 세우시는 한편 일군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이 고아들을 집에 데려다 육친의 심정으로 따뜻이 키울데 대하여 가르치시고 자신께서도 한 아이를 최고사령부로 데려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부터 친부모도 미치지 못할 크나큰 사랑을 기울이시며 그 아이를 정성껏 키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한 아이를 통해 튼튼하고 명랑하게 자라나는 온 나라의 유자녀들과 고아들의 얼굴을 보시고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목숨도 서슴없이 바친 혁명전사들의 모습을 되새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루는 정치위원회를 지도하시다가 휴식시간에 정치위원들과 함께 그 애가 놀고있는 방으로 건너가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시자 그 애는 선뜻 일어나서 씩씩하게 노래를 부른 다음 수령님의 품으로 달려와 안기였다. 방안의 일군들은 웃기도 하고 손벽을 치기도 하면서 재롱스럽게 노는 아이와 어울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애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며 여기에 아이가 있으니 웃음이 있고 명랑한 노래소리를 듣게 된다고 하시면서 어려운 전쟁을 하면서 고생스럽더라도 우리는 이 애들을 잘 길러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피흘리며 싸우는 전우들에 대한 혁명적의리로 보나 또 장차 조국을 떠메고나갈 후대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사업입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보살피심에 의하여 우리 나라에서는 전쟁의 엄혹한 환경에서도 집없고 먹을것도 없어서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이 없었으며 부모잃은 아이들은 세상에 부럼없이 혁명의 후비대로 씩씩하게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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