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편에 중독된 농민형제를 만나보시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올기강전투승리후 올기강류역에 페문촌들이 많이 생겨 조선인민혁명군이 마음놓고 백두산동북부일대에 혁명기지를 꾸리기 위한 정치사업을 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시여 6월 중순 부대를 중국 화룡현 옥돌골로 이끄시고 이 일대를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옥돌골주민들의 구성상태가 좋으며 또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는 점을 고려하시여 이 마을을 먼저 혁명화하는데 착수하시였다.

 

옥돌골은 상촌, 중촌, 하촌 등 3개의 큰 부락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주변일대에는 조선사람이 많이 살고있는 10여개의 산간마을이 있었다. 1930년대 전반기 반유격구였던 이곳 인민들속에는 일제의 탄압책동으로 조직선을 잃고 지하에 있는 사람들, 혁명의 동정자들이 많았다. 옥돌골은 또한 삼장과 농사동을 거쳐 국내와 련계를 가지기에도 유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를 이끄시고 옥돌골어구에 이르시자 온 마을사람들이 떨쳐나와 열광적으로 환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행군대렬을 겹겹이 둘러싼 마을인민들의 뜨거운 환호에 답례하시면서 맨발로 달려나온 어린이들의 손목을 잡으시고 마을로 들어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부대지휘관들과 대원들은 마을사람들에게 두만강연안유격구가 해산된 이후 조선인민혁명군이 광활한 지역에 진출하여 일제침략군을 통쾌하게 족친 자랑스러운 전투소식도 들려주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의 내용도 알기 쉽게 해설하면서 그들의 가슴마다에 혁명위업의 정당성과 필승의 신념을 깊이 심어주었다. 지휘관들과 로대원들은 주로 나이많은 사람들을 대상하여 해설담화를 하였고 젊은 대원들과 녀대원들은 각기 마을청년들과 녀성들을 상대로 하여 혁명가요도 배워주고 교양사업을 벌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옥돌골에서 특색있는 정치사업의 하나로서 군민이 한자리에 모여 운동회를 진행하도록 하시였다.

 

원래 옥돌골에서의 운동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전에 계획하시였거나 준비하신것은 아니였다. 그 당시는 적들의 폭압이 심하고 정세가 삼엄해서 명절놀이 같은것은 감히 생각지 못하고있었다.

 

무산지구진공작전이 끝난 다음 위대한 수령님께서 부대를 이끄시고 화룡현으로 가시였을 때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약담배에 중독된 젊은 농민형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화룡땅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약담배에 중독된 젊은 농민형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농민형제에게 어떻게 되여 약담배를 피우게 되였는가고 물으시였다. 농민형제는 별로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아편도 안쓰면 고달픈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는가고 하면서 왜놈들이 명절날에 여럿이 모여앉아 노는것조차 불법으로 몰아 금지시키는 판이니 술도 마음대로 마실수 없어 약담배로 넘어갔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리고 그전에 고향에서 살적에는 명절날에 씨름도 하고 그네도 뛰고 쑥떡도 해먹으면서 재미나게 놀았지만 망국노가 되니 그런 명절놀이를 생각도 할수 없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들의 푸념을 들으시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슴이 아프시였다. 원래 어린시절부터 아편쟁이들을 곱지 않게 보신 수령님이시였지만 삶의 보람을 잃은 이 젊은 농민형제에 대해서는 동정을 금할수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의 존망을 다투는 이 위급한 시각에 약담배를 피우며 세월을 헛되게 보낸다는것은 조선청년으로서 씻을수 없는 죄를 짓는것으로 된다, 보라, 이 어린 전령병들과 녀대원들까지도 나라의 운명을 구원하려고 총을 메고 나섰는데 부끄럽지 않은가, 아편을 떼라고 그들을 타이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농민형제는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아무런 의욕도 없이 되는대로 살아가는것이 부끄럽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편에 중독된 농민형제를 만나보시고나서 인민들이 희망을 가지고 기를 펴고 살아갈수 있게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정치활동을 더 잘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시였으며 그후 옥돌골일대의 인민들을 만나시는 과정에 운동회를 비롯한 다채로운 행사를 조직하시게 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옥돌골 30리골안에 사는 사람들을 다 운동회에 참가시키고 휘풍동을 비롯한 이웃마을들에서도 올만 한 사람들은 모두 모이게 하라고 지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네경기와 씨름경기, 군민합동오락회와 예술공연을 벌리는것과 함께 축구경기도 조직해주시였다. 두만강연안의 마을들은 해방의 날이라도 맞은듯이 흥성거리였다. 청장년들은 이번에는 마음놓고 놀아보자고 하면서 그네를 매고 씨름터를 만들었다. 옥돌골의 넓은 등판에서 온 동리가 다 모인 가운데 진행된 혁명군과 마을청년들사이의 축구경기는 정말 볼만 하였다. 축구경기는 승부없이 끝났으나 그 경기의 정치적영향은 대단히 컸다. 그네경기와 씨름경기도 대성황이였고 군민합동오락회와 연예공연도 재청, 삼청으로 계속 이어져 예정시간을 훨씬 초과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운동회를 진행하는 동시에 대중정치사업과 함께 혁명조직을 복구하여주시고 투쟁과업도 밝혀주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여러가지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모인 사람들에게 혁명적출판물들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구두선전도 하면서 인민들을 교양하고 각성시키였다.

한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을에 혁명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을 적극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중정치사업과정에 료해장악한 청장년들을 따로 부르시여 비밀리에 모임을 가지시고 혁명조직을 복구하여주시였으며 그들에게 새로운 투쟁과업을 주시였다.

마을사람들은 다채로운 행사를 성대히 조직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뜨거운 감사를 표시하였다.

그날 옥돌골에서는 수십명의 청년들이 입대를 탄원해나섰다.

옥돌골에서의 행사와 그를 통한 조선인민혁명군의 정치사업은 이곳 마을사람들을 크게 고무해주었을뿐아니라 그 주변 마을사람들을 혁명화하는데서도 커다란 작용을 하였다.

적들이 화룡일대에 숱한 《토벌》력량을 집중시키고있는 때에 그 한복판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여유작작하게 여러가지 놀이를 하면서 축구경기까지 벌린것은 몇번의 전투나 몇백마디의 연설로써도 얻을수 없는 커다란 효과를 가져왔다.

옥돌골에서의 행사는 또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올기강전투를 비롯하여 두만강연안의 여러 전투들에서 거둔 빛나는 승리를 경축하는 일종의 축하행사이기도 하였다.

옥돌골에서 몸소 정치사업의 모범을 보여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화룡현 류동마을을 혁명화하기 위한 대중정치사업을 크게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옥돌골과 류동마을에서 벌리신 대중정치사업은 백두산동북부일대에서 혁명조직을 시급히 복구확대하며 혁명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닦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군중정치사업의 새로운 모범을 보여주신 다음 올기강상류의 수림속에 사령부를 정하시고 각 련대들과 정치공작소조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지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로 하여금 주체28(1939)년 여름과 가을에 걸쳐 올기강을 중심으로 한 백두산동북부일대에서 맹렬한 군사활동을 벌려 이 일대의 적을 완전히 제압하게 하시는 한편 안도, 화룡, 연길을 비롯한 광활한 지역에 새로운 밀영들을 건설하고 그 주변 인민들을 의식화, 조직화하여 당 및 조국광복회 조직들을 급속히 복구확대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옥돌골, 류동, 휘풍동, 3도구를 비롯한 두만강연안의 넓은 지역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지하전선이 펼쳐졌으며 일제가 《치안확보구역》으로 자랑하던 백두산동북부일대는 조선혁명의 또 하나의 믿음직한 혁명기지로 전변되게 되였다.

 

※ 일화; ❖민형제의 뉘우침​    ❖ 돌골에서의 축구경기​

   학습자료; 회고록《세기와 더불어》 제7권 제20장 혁명의 새로운 고조를 향하여. 5. 옥돌골에서의 단오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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