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문촌》마을들이 생긴 유래​

 

주체28(1939)년 5월 무산지구진공작전을 승리적으로 결속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대정자회의 방침에 따라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백두산동북부로 넘어가시였다.

그것은 백두산동북부일대를 혁명의 전략적기지로 꾸리고 그에 의거하여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나가시기 위해서였다.

주체28(1939)년 5월 24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무산군 삼수평 대안인 안도현 큰골에서 조선인민혁명군 군정간부회의를 여시고 백두산동북부에서 군사정치활동을 강화하여 이 일대에 또 하나의 강력한 혁명의 보루를 축성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의에서 하신 연설 《백두산동북부에 의거하여 군사정치활동을 힘있게 전개할데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가 백두산동북부에 의거하여 군사정치활동을 전개하는것은 백두산서남부일대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에 토대하여 백두산동북부일대에 또하나의 강력한 혁명의 보루를 구축함으로써 두만강연안 북부조선일대는 물론, 전국적범위에서 조국광복전선에 더 많은 군중을 결속하여 혁명투쟁의 불길이 더욱 세차게 타오르게 하자는데 그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무산지구진공작전에서 이룩한 성과를 공고발전시키면서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끌어나가자면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백두산동북부에로 투쟁무대를 확대하고 군사정치활동을 강력히 전개하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였다. 특히 이 지대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의거하여 활동할수 있는 근거지, 거점들을 튼튼히 꾸리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백두산동북부는 자연지리적으로 보나 주민구성으로 보나 조선혁명을 계속 앙양에로 이끄는데서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있었다. 더우기 장백지역과 압록강연안 등 백두산서남부의 넓은 판도에서 활발히 전개된 조선인민혁명군의 군사정치활동과 더욱 앙양되는 인민들의 반일기세에 질겁한 일제가 《정예》사단들과 위만군부대들, 민간무력까지 백두산서남부일대에 투입하고있던 조건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주동적으로 백두산동북부일대로 투쟁무대를 확대하여 군사정치활동을 힘있게 벌려야 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놈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하며 인민혁명군의 전투력을 보존확대하면서 혁명조직들의 피해를 방지하고 우리의 전반적혁명력량을 각방으로 확대강화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새로운 투쟁방침을 성과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군사정치활동의 내용과 방식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백두산동북부일대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의거하여 활동할수 있는 근거지, 거점들을 튼튼히 꾸리는것이 중요하다고 하시면서 새로 꾸리는 근거지는 고정된 밀영형태의 근거지가 아니라 정황의 변화에 따라 기동적으로 이동할수 있는 림시밀영의 형태로 건설하되 국내를 넘나들기 유리한 곳에 그리고 백두산지구에 있는 근거지와 련결되게 꾸려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리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이 백두산동북부의 근거지에 의거하여 련대급 규모로 나뉘여져 해당 지역에서 집중과 분산, 이동전술을 능숙하게 적용하면서 도처에서 적을 제압소멸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다음으로 백두산동북부와 두만강연안의 북부조선지대에 조국광복회조직을 비롯한 혁명조직들을 확대하고 광범한 군중을 결속하기 위한 조직정치사업을 강력히 추진시켜 그들을 반일투쟁에 적극 동원하여야 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큰골회의후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두만강기슭을 따라 령활하게 기동하시면서 지체없이 새로운 방침을 관철하기 위한 투쟁을 이끌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이 일대에 근거지를 꾸리기 위한 적극적인 군사활동을 벌리시였다.

근거지를 확보하자면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군사작전으로 적을 제압하고 해당 지역안의 인민들속에서 정치사업과 조직건설활동을 자유롭게 벌릴수 있는 유리한 환경을 마련해야 하였다.

 

당시 무산지구에서 된타격을 받은 일제는 다시 력량을 수습해가지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찾아 백두산동북부에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조선쪽에서는 《시라미즈토벌대》, 《후지이토벌대》, 《네기시토벌대》 등 여러개의 《토벌대》와 함경북도경찰대가 두만강을 건너 밀려들었으며 화룡현 백일평일대에서는 《도시우미부대》와 《조요부대》 등 일만혼성《토벌대》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작전을 벌리였다.

 

조성된 정황에 대처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두개 방향으로 나누어 7련대는 안도현 올기강 서쪽지대에서 활동하게 하시고 자신께서는 경위중대와 8련대, 독립대대를 친솔하시고 두만강기슭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화룡현 휘풍동방향으로 향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휘풍동계선에 이르시자 휘풍동과 그 이웃의 집단부락에 대한 습격전투(휘풍동전투​)를 조직하시고 대중정치사업을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작전계획에 따라 7련대도 동경평, 상대동, 대동곡, 원풍동 등의 여러 집단부락들을 습격하고 사령부로 돌아왔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백두산동북부로 이동하여 두만강연안에 있는 10여개의 집단부락들을 련이어 습격하여 수백명의 적을 소멸하는 전과를 올리게 되자 일제는 인민혁명군의 활동을 저지시켜보려고 필사적으로 발악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올기강치기의 함지박골 수림속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지휘관들을 부르시여 이미 큰골회의에서 제시된 방침에 기초하여 적을 제압하기 위한 구체적인 투쟁과업을 내놓으시였다.

회의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나를 쳐서 열, 백놈의 적을 공포에 떨게 할수 있는 그런 대상을 고르시기 위하여 이 지방 지리에 밝은 대원들로 여러곳에 정찰을 보내시였다.

정찰자료에 의하면 백일평에는 이해 여름 《토벌》에 동원되였던 놈들가운데서도 악질적인 300여명의 정안군놈들이 기여들어와있었다.

 

《토벌대》대장이란 놈은 중국 화북전선에서 특출한 군공을 세워 천황의 표창까지 받은 일본군 장교로서 무공덕에 일본본토로 표창휴가를 가던 길이였는데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안도와 화룡땅에 나타나 집단부락들을 쳐갈기며 돌아간다는 소문을 듣고 그따위 게릴라부대 하나를 당해내지 못해 계속 패전한다는것은 황군의 수치이자 일본국민의 수치다, 내가 김일성부대를 전멸시켜 이 수치를 씻겠다고 호언장담하면서 자청하여 《토벌》에 나섰다. 이자는 가슴팍에 《아수라》(불교에서 싸움귀신이라는 뜻으로 통함)라는것까지 입묵해가지고 다니면서 무적용장의 행세를 하는 악질적인 놈이였다. 하기에 일제놈들은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에서 이놈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있었다.

 

정찰조원들은 《아수라》에 대한 소식과 함께 화룡현에 있는 일본인경찰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게 보낼 명절선물을 준비하고있다는 괴이한 정보까지 수집해가지고왔다.

한쪽에서는 천황의 표창까지 받고 고향으로 휴가를 가던 싸움귀신이 인민혁명군을 《토벌》하겠다고 자청해서 백일평에 왔다는데 다른쪽에서는 경찰들이 혁명군에 보낼 명절선물이라는것을 준비한다니 이 정보가 틀림없는것이라면 적들이 마련하고있다는 선물놀음은 분명 동서고금에 없는 희극적인 만화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찰자료들을 종합분석하시면서 적들이 감히 명절선물을 준비하는것과 같은 경거망동을 하는것은 혁명군의 불을 설맞은탓이라는 판단을 내리시고 백일평의 적들을 올기강쪽으로 유인하여 일격에 섬멸할 전술을 짜시였다. 이것은 일제놈들이 큰 기대를 걸고있는 가장 악질적인 정안군놈들을 먼저 요정냄으로써 다른 《토벌대》놈들을 제압하시려는 의도에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력부대를 친솔하시고 6월 9일 밤 함지박골을 떠나 큰 릉선을 타고 올기강동쪽비탈에 이르시였다.

이곳 지형을 료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백일평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갈밭을 전투장소로 선택하시고 매복진을 치게 하시였다. 갈밭 한가운데로는 올기강이 흐르고 강 한쪽기슭을 따라 자동차길이 나있었는데 강과 길의 좌우쪽은 다 수림지대여서 매복에 유리하였다.

 

적들이 올기강기슭에 나타난것은 6월 10일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는 늦은 아침이였다. 중무장을 한 수백명의 적들이 여러정의 기관총을 앞세우고 기세좋게 행군해오고있었다. 적의 전대오가 매복권에 들어섰을 때 긴칼을 찬 일본장교가 물도랑옆에 와서 걸음을 멈추더니 수상한 흔적이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아수라》로 자처하는 《토벌대》대장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아수라》가 물도랑옆에서 일어서는 순간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한적한 올기강기슭에 멸적의 총소리가 울려퍼지고 적들의 비명소리가 골안을 메웠다. 첫 타격에 적의 태반이 소멸되였으며 나머지놈들은 손을 들고 투항하였다.

전투는 10분도 되나마나한 사이에 조선인민혁명군의 승리로 끝났다. 전투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200여명의 적을 살상포로하고 기관총 4정을 비롯하여 수많은 무기와 군수물자를 로획하였다. 《아수라》는 칼집에서 군도를 절반도 뽑지 못한채 물도랑옆에 쓰러져있었다.

이 전투가 백일평전투라고도 불리우는 유명한 올기강전투​이다.

 

 

두만강연안유격구가 해산된 후 일제침략자들이 《이제는 치안이 확보되였다.》고 장담하던 화룡현일대가 조선인민혁명군의 활동무대로 변하고 기승을 부리던 백일평의 정안군놈들이 순식간에 소멸당하자 겁을 먹은 적들은 그후부터 감히 그 골안에 얼씬거리지 못하였다.

그때부터 이 고장 사람들은 적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문이 닫긴 촌이라는 뜻에서 올기강류역의 마을들을 《페문촌》이라고 불렀다.

올기강전투의 승리는 무산지구에서의 참패를 만회해보려던 일제침략군의 《토벌》기도를 그 첫걸음부터 꺾어버리고 인민들의 기세를 북돋아주었다. 올기강류역에 페문촌들이 많이 생기다나니 조선인민혁명군이 마음놓고 백두산동북부일대에 혁명기지를 꾸리기 위한 정치사업을 할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 마련되게 되였다.

 

※ 일화;민이 자랑하는 인민혁명군​   ❖ 기강에서 녹아난 《아수라》​

   학습자료; 회고록《세기와 더불어》 제7권 제20장 혁명의 새로운 고조를 향하여. 5. 옥돌골에서의 단오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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