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원정과 자주의 기치​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7(1938)년에 들어와 조선혁명에서 자주의 기치를 더 높이 들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이미 1936년 봄에 이어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 여름에도 동북항일련군부대들에 원정에 참가할데 대한 지시를 떨구었던 국제당에 있던 좌경모험주의자들은 1938년 봄에 들어와 열하원정에 참가할데 대한 지령을 또다시 내려보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제당의 이 요구를 처음부터 무모한것이라고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열하에로의 원정계획은 유격전의 요구에 비추어보아도 그렇고 초보적인 군사상식에도 어긋나는 무모한 원정계획으로서 동북의 현실과 중국혁명의 요구, 그 계획의 군사적가능성여부를 정확히 타산하지 못하였으며 이 계획에는 중국혁명의 현 실태에 대한 정확한 통찰이 부족할뿐아니라 조선혁명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주관주의적으로 작성된 좌경모험주의적계획이라는것을 꿰뚫어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천리혜안의 비범한 군사적예지와 조선과 중국혁명의 현 실태에 대한 과학적통찰력으로 열하원정계획의 일면성과 해독성에 대하여 꿰뚫어보시였지만 국제공산당이 존재하여 활동하고있던 그때로서는 그를 신중하게 대하지 않을수 없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열하원정계획이 중국 동북지방의 혁명운동발전에 리롭지 못할뿐아니라 조선혁명의 견지에서 볼 때에도 매우 일면적이고 해독적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집행에서는 신중성을 견지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제공산주의운동의 발전과 각국 공산주의자들의 행동통일을 위하여 활동하는 국제공산당을 언제나 존중하여오시였다. 그러나 국제당의 지시라고 하더라도 자주성의 원칙에서 자기 나라 혁명의 요구와 구체적인 실정에 맞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립장에 서시였다.

 

혁명앞에 장벽이 가로놓이고 복잡한 정세가 조성될 때일수록 주체적립장을 더 확고히 견지하고 자주적으로 활동하는것을 일관한 원칙으로 내세우며 국제당과의 관계에서나 주변의 큰 나라들과의 관계에서나 항상 자주성과 국제주의를 옳게 결합시켜나가야 한다는것이 위대한 수령님의 변함없는 립장이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취하신 견결한 자주적립장과 전술적방안은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하여금 국제당의 지시에 맹종맹동하여 심대한 손실을 입은 다른 항일무장부대들과는 달리 자기의 력량을 계속 보존확대하면서 조선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군사정치활동을 맹렬히 벌려나갈수 있게 한 매우 정당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혁명의 리익과 국제적리익, 자주성과 국제주의를 옳게 결합시키는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혁명의 리익과 국제적리익, 자주성과 국제주의를 옳게 결합시키는 원칙을 일관하게 견지하시면서 주체27(1938)년 봄 국제당이 열하원정을 또다시 강요하였을 때에도 조선인민혁명군의 진출방향을 중국 장백, 림강의 압록강연안 국경일대로 정하시고 춘기공세를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춘기공세의 목적은 중국에 대한 침략전쟁을 확대하면서 조선과 만주에서 파쑈적폭압을 강화하고있는 일제의 배후를 끊임없이 교란하여 적들에게 커다란 군사정치적타격을 주고 압록강연안 국경일대의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복구정비하며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과 국내를 비롯한 각 지방에 파견된 소부대, 소조, 정치공작원들과 인민들의 혁명적기세를 더욱 높여주어 항일무장투쟁의 승리적인 발전을 촉진하며 나아가서 중국인민들의 반일항전을 적극 고무하는데 있었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거느리시고 압록강연안 국경지대에로 진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중국 장백현 가재수전투​12도구전투​, 림강현 6도구전투​쌍산자전투, 오가영전투​, 가가영전투 , 신태자전투​ 등을 련이어 조직지휘하시여 일제에게 커다란 군사정치적타격을 가하시는 한편 각지에 소부대들과 정치공작원들을 파견하시여 군사정치활동을 적극 벌리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춘기공세에서 이룩된 성과에 토대하여 이해 여름 류하, 통화일대에서 야산에 의거하여 평야지대에 집결된 적들을 유인기습하는 기동작전과 일제의 대륙침략전쟁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한 배후타격전을 맹렬히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는 통화-림강사이의 8도강부근 도로공사장을 습격하여 삽시간에 수라장으로 만들어놓고 경비병력을 소멸한것을 비롯하여 림강현 8도강(8도강전투), 외차구(외차구전투), 내차구일대에서 적을 족친데 이어 무송현 서강전투를 벌려 적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편 조선인민혁명군의 일부 부대들로 하여금 몽강현을 에돌아 금천, 류하현을 거쳐 통화계선으로 부분적인 군사적이동을 하게 하시여 열하로 진격하다가 적의 포위에 들어 위기에 처한 중국인항일련군부대를 도와주게 하시였다.

 

그것은 항일련군 1군부대들을 포위하고있는 적의 력량을 분산시킴으로써 그들에게 적의 포위를 돌파할 가능성을 주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취하신 군사적이동은 국제당이 지시한 원정계획을 어떻게 집행하는가 하는 문제에 앞서 동북항일련군부대들을 구출함으로써 동북항일력량을 보존하고 여러해동안의 공동투쟁을 통하여 맺어진 조중 두 나라 혁명가들과 인민들사이의 전투적우의를 두터이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주체27(1938)년 봄과 여름에 걸쳐 조직진행된 조선인민혁명군의 령활한 전술적이동과 작전적공세는 일제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고 적들로 하여금 인민혁명군의 활동을 종잡을수 없게 만들어놓음으로써 조선혁명의 새로운 앙양을 일으켜나가는데 유리한 국면을 마련할수 있게 하였다. 동시에 열하원정에 참가하여 난관을 겪고있던 동북항일련군부대들의 어려운 처지를 개선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파괴된 국내혁명조직들을 복구정비하며 전국적판도에서 항일무장투쟁과 전민항쟁준비사업을 급속히 확대강화하기 위한 사업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년 11월 하순 조선인민혁명군 당위원회 비상회의를 여시고 《혜산사건》으로 하여 위기에 직면한 혁명조직을 보호하고 파괴된 조직을 복구하며 당조직건설과 조국광복회조직건설을 더욱 활발히 전개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시였다. 그리고 이듬해 5월에는 적들의 삼엄한 경비진을 뚫고 백두산밀영에 나오시여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국내의 대진평지구에 파견하시면서 일제의 검거선풍을 피해 은신해있으면서 어떻게 사태를 수습할지 몰라 망설이고있던 박달을 비롯한 국내혁명가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파괴된 혁명조직을 시급히 복구정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와 앞으로의 행동방향을 알려주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정치공작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하여 국내와 만주의 여러 지역에서 일제의 야수적탄압이 계속되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당 및 조국광복회조직들이 급속히 복구정비되고 확대되여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북부조선일대에서 무장투쟁을 급속히 확대발전시키기 위하여 주체27(1938)년 4월 국내에 북선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대장으로는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제7련대 중대장인 최일현을, 정치위원으로는 국내당공작위원회 위원이며 조선민족해방동맹 책임자인 박달을 임명하시였다. 그리고 5월에 진행된 백두산밀영회의에서 그 조직준비사업을 적극 추진시킬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성원들과 조선민족해방동맹에서는 북선반일인민유격대를 조직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적극 다그쳐나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7(1938)년 8월에는 몸소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일부 성원들을 친솔하시고 신흥지구를 비롯한 북부조선일대와 중부조선의 양덕지구에까지 진출하시여 그곳에서 활동하고있던 소부대, 소조들과 정치공작원들의 사업을 지도하시면서 국내에서 혁명투쟁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대책을 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일제의 파쑈통치가 극도에 달하고 혁명앞에 엄혹한 시련이 가로놓인 때에 또다시 조국땅에 나오시여 우리 혁명을 새로운 앙양에로 이끄신것은 항일무장투쟁사에서 커다란 의의를 가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7(1938)년에 국내의 간백산일대에 전민항쟁준비를 위한 핵심육성기지를 꾸리도록 하시고 이해 9월에는 몸소 간백산밀영에 나오시여 강습소건설과 운영에서 나서는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여기에서 전인민적무장봉기를 일으키는데 필요한 군사정치적지식과 능력을 갖춘 핵심들을 수많이 키워내여 전국각지에 파견하는 사업도 적극 밀고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중일전쟁발발후 전민항쟁준비사업이 더욱 힘있게 추진됨으로써 국내 곳곳에 여러가지 명칭의 전민항쟁조직들이 나오게 되였으며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과 지식인 등 각계각층 인민들속에서 반일반전기운이 날을 따라 급격히 높아갔다.

이렇듯 그 어떤 정세속에서도 조선혁명의 자주적대를 굳건히 고수하시고 전진도상에 부닥치는 모든 문제를 주체적립장과 혁명적원칙성으로부터 출발하여 풀어나가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에 일제의 대륙침략책동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강요된 국제당의 좌경모험주의적인 열하원정로선의 후과로 전반적인 항일혁명운동에서 혼란이 조성되고있던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 혁명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계속 앙양을 일으켜나갈수 있었다.

 

   ※ 일화; 로장이 흘린 눈물​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7권 제19장 시련의 언덕을 넘어. 5. 열하원정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