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당파견원의 기쁨​

 

 

국제공산당파견원을 접견하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5(1936)년 2월 제2차 북만원정을 끝마치시고 겹쌓인 로독을 푸실사이도 없이 녕안현 남호두에로의 행군길에 오르시였다.

 

남호두는 만주대륙의 명승지 경박호의 남쪽호반에 있는 마을이다. 남호두란 호수의 남쪽머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남호두에서 요영구회의​후 모스크바에 파견된 위증민​을 기다리기로 하시였다. 

위증민이 국제당에 제소하기로 되여있는 기본문제는 현상적으로는 동만에서 수천명의 조선혁명가들을 제거하였던 《민생단》문제였으나 내용적으로는 조선혁명의 주체성에 관한 문제였다. 다시말하면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의 구호를 들고 싸우는것이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 합법적인가 비합법적인가, 국제당의 1국1당제원칙에 모순되는가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것이였다.

 

이 문제는 국제공산당이 존재하고 1국1당제원칙이 불가역적인것으로 되여있던 당시로서는 어느 견해가 옳고 어느 견해가 그르다고 가볍게 판정할수 없는 복잡하고 심각한 난문제였고 조선혁명가들의 생사를 판가름하는 중대한 운명문제이기도 하였다. 1국1당제원칙을 휘두르며 조선사람이 조선혁명의 구호를 드는데 대하여 공산주의자답지 않은 이단행위이며 비당적분파행위라고 걸고드는 사람들의 주장은 아주 어마어마한것이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제당에 제기한 문제점들이 혁명적원칙과 혁명의 리익에 전적으로 부합되는 정당한것이며 따라서 국제당도 이에 응당 긍정적으로 대답해줄것이라는것을 확신하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북만원정의 나날 우리 혁명의 내외정세발전의 추이를 주의깊이 살피시면서 조선혁명을 전국적판도에서 일대 앙양에로 이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1930년대 전반기 안팎의 원쑤들과의 간고하고도 치렬한 투쟁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주도적력량으로 하는 주체적혁명력량이 크게 장성하였고 혁명대오의 통일단결이 강화되였으며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도 튼튼히 꾸려졌다. 특히 배타주의와 종파사대주의를 반대하는 첨예한 투쟁을 통하여 조선혁명의 자주성이 한층 더 강화되였다. 파란과 역경을 헤쳐온 항일혁명은 새로운 전환기를 향하여 힘차게 줄달음치고있었다.

 

이 시기 국제무대에서는 침략과 전쟁의 위험한 세력으로 등장한 파시즘세력과 반파시즘력량간에 첨예한 투쟁이 벌어지고있었다. 동방에서는 일본이 군국화, 파쑈화를 시시각각으로 가속화하면서 해외침략책동을 더욱 로골적으로 감행하였다. 일제는 식민지조선을 대륙침략의 《공고한 후방》으로,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하여 전대미문의 정치적폭압과 경제적략탈을 악랄하게 감행하였으며 《황국신민화》정책을 강압적으로 실시하면서 모든 조선적인것을 말살하고 모든 형태의 반일운동과 반일적요소들까지 전멸시키기 위하여 발광하였다. 민족멸살의 대풍랑속에서 량심의 마지막쪼각마저 잃어버린 어제날의 《애국지사》들은 목숨이라도 살려보자고 일제가 떠드는 《동조동근》과 《내선일체》를 그대로 부르짖으며 반역의 길로 나갔다.

 

조성된 정세는 조선인민혁명군이 하루빨리 백두산으로 나가서 무장투쟁을 국내깊이에로 확대발전시킬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생사기로에 놓인 조국의 운명, 민족의 운명이 제기하고있는 당면한 력사적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전략적로선을 제시하시기 위하여 백두산으로 나가기 전에 먼저 조선인민혁명군 군정일군회의를 소집할것을 결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제당파견원을 만나시고 조선혁명의 자주적로선을 확고히 천명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회의장소로 될 남호두 소자지하의 귀틀집에서 보고서초고를 거의 끝내가던 2월 중순 국제당에 파견되였던 위증민이 도착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그로부터 국제당이 수령님께서 제소하시였던 모든 문제들이 전적으로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린데 대하여 전달받으시였다.

 

위증민은 위대한 수령님의 손을 뜨겁게 잡고 모든 일이 조선혁명가들의 소망대로 되였다고 하면서 국제당이 반《민생단》투쟁문제를 비롯하여 동만당의 일부 활동에서 엄중한 좌경적실책이 있었다는것을 지적하였으며 이에 대해서는 국제당의 책임일군들로부터 거기에 가있는 중국공산당대표부 일군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같은 견해를 표시하였다고 전달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중요한것은 조선혁명가들이 조선혁명을 직접 책임지고 수행하는것이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수 없는 신성한 권리라는것을 국제당이 인정하고 그것을 지지한것이며 국제당이 앞으로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중국혁명을 하고 조선혁명가들은 조선혁명을 하도록 책임을 서로 분담할데 대하여 명백한 결론을 주었다고 통보하였다.

 

국제당은 조선혁명가들에게 단순한 정신적지지, 로선상의 지지만 아니라 앞으로 조선혁명을 힘차게 떠밀어나가는데서 도움이 될수 있는 몇가지 대책적인 안까지 주어 행동상 지지도 보내왔다.

 

그중의 하나가 지금까지 련합하여 공동투쟁을 전개해왔던 항일유격부대들을 조선인부대와 중국인부대로 갈라 재편성하도록 할데 대한것이였다. 이 문제는 사실상 조선혁명에 대한 조선혁명가들의 책임과 권리에 대한 문제에서 중핵을 이루는것으로서 조선혁명의 주체성, 독자성을 견지해나가는데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국제당의 이러한 지시를 신중히 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1930년대 중기부터 중국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항일련합군을 편성하고 반만항일의 기치밑에 공동투쟁을 조직전개하심으로써 항일무장투쟁을 성과적으로 발전시키시였다.

 

당시 만주의 유격부대들의 형편을 보면 어느 부대에서나 지휘성원들의 다수가 조선사람들이였고 각 부대의 핵심력량도 역시 조선인대원들이였다. 동북항일련군 제2군의 경우에는 90%의 인원이 조선사람들이였다. 그러므로 조선인부대와 중국인부대를 따로 갈라 꾸리게 되면 당장은 항일련군부대들을 유지해나가기 어려울수 있었다.

 

그런데 국제당의 지시대로 새로운 정세하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조선혁명에 주력한다고 하여 중국인민의 항일무장부대들과의 공동투쟁을 약화시킬수 없었다. 그것은 여러해동안 한전호에서 공동의 적을 반대하여 련합항일을 해온 형제적의리, 전우의 의리를 저버리는것이였으며 파시스트들의 련합된 력량에 맞서 단결하여 싸워야 할 시대적추세에도 부합되지 않는것이였다. 더우기 조선혁명가들이 조선과 중국 동북지방을 무대로 하여 무장투쟁을 벌리고있는 형편에서 조선사람들이 따로 갈라져나와 부대를 조직하게 되면 중국인민들의 지지와 도움도 약화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제당의 의사대로 부대를 민족별로 가르기 위한 대안을 세워보는것이 어떻겠는가고 거듭 제의하는 위증민에게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자기 나라 혁명에 대하여 말하는것은 결코 어떤 협애한 민족적리익만을 추구해서가 절대로 아니다, 우리는 혁명의 민족적리익은 언제나 국제적리익과 결합되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또 민족적리익과 배치되는 그 어떤 국제적리익도 있을수 없다고 본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항일무장부대를 민족별로 가르는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존중해서 제기한것이라고 볼수 있는데 우리는 결코 문제를 형식적으로 고찰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우리는 중국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싸우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조선인민혁명군으로 활동하고있다, 그런 조건하에서는 형식적인 분리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였다. 위증민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그렇게 되면 국제당의 지시를 집행하지 않는것으로 되지 않는가고 우려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그에게 우리가 조선국내와 중국 동북의 조선인부락에 가서는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하고 중국인부락에 가서는 항일련군(항일련합군​)이라고 부르면 련군체계를 유지하면서도 국제당의 지시를 집행하는것으로 된다고 하시였다.

위증민은 웃음을 지으며 위대한 김일성동지와 함께 싸우는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조선동지들과 더 밀접히 단합해서 조선혁명을 도와드리고싶다고 진정에 넘쳐 말씀올리였다.

 

   ※ 일화; 령님부대의 《정치위원》​

   ※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4권 제11장 혁명의 분수령 1. 북만의 전우들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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