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의 시원 마련

 

 

주체형의 첫 당조직을 무으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주체19 (1930). 7.3]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새형의 당을 창건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내리시고 그 방도를 전면적으로 모색하기 시작하신것은 조선공산당이 국제당에서 제명되였다는 소식을 들으신 다음부터였다.

 

조선로동운동과 민족해방운동발전의 필연적귀결로 창건된 조선공산당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상층인물들의 파쟁으로 하여 1928년에 조직된 력량으로서의 자기의 존재를 끝마치였다. 국제공산당에서는 1928년 여름에 있은 제6차대회에서 조선공산당의 승인을 취소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사실에 있어서 조선공산당이 국제당대렬에서 제명되였음을 의미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파쟁의 후과로 조선공산당이 국제공산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게 된데 대하여 가슴아프게 여기시고 순결하고 참신한 새형의 당을 창건하는데 힘쓰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새형의 당을 창건하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도를 찾는데 사색과 정열을 바쳐가시였다.

 

새형의 당을 창건하는 과정은 말그대로 여러가지 장애와 난관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이였다.

 

가장 큰 난관은 공산주의대렬안에 종파주의가 의연히 남아있는것이였다. 종파주의가 청산되지 못하였기때문에 초기공산주의자들은 당재건운동도 통일적으로 하지 못하고 여러갈래로 분렬된 상태에서 하였다. 조선공산당이 국제당에서 제명처분을 받은 후 초기공산주의자들은 국내외에서 당을 재건하기 위한 운동을 벌렸다. 그러나 일제의 무차별적인 탄압과 방해책동으로 어느 파벌도 재건에 성공할수 없었다. 화요파와 엠엘파가 재건운동을 포기하고 중국 동북지방에 조직되여있는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해체한다고 선언한 후 서상파가 국내에서 재건바람을 일으켰지만 그것마저 로출되여 많은 당원들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였다.

당을 창건하는데서 다른 하나의 난관은 국제공산당이 제정한 1국1당제원칙에 의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중국 동북지방에서 독자적인 당을 창건하는것이 불가능한 일로 된것이였다. 국제당은 제6차대회에서 채택한 규약의 총칙에서 국제공산당에 소속되는 개개의 당은 해당 나라의 공산당(국제공산당지부)이라는 명칭을 가지며 매개 나라에서는 하나의 공산당만이 국제당의 지부로서 존재할수 있다는 1국1당제의 원칙을 규정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국1당제원칙에 대한 리해를 심화시키고 당건설방침을 하루빨리 확정하기 위하여 주체19(1930)년 6월 하순 동지들과 함께 1국1당제원칙에 대한 론의를 거듭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국1당제원칙의 요구를 한 나라에서 둘 또는 그 이상의 공산당이 국제당에 가입할수 없고 오직 하나의 공산당만이 가입할수 있다는것, 한나라에는 한개이상의 공산당중앙이 존재할수 없고 하나의 공산당중앙만이 존재할수 있다는것으로 해석하시였다. 이 원칙의 본질은 한나라에 같은 리해관계와 목적을 가진 당중앙이 하나이상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이였다. 이 요구는 결코 조선혁명가들에게서 당재건의 가능성을 박탈하는것으로 되지 않으며 중국에서 활동하는 조선혁명가들이 당중앙을 따로 내와가지고 중국당과 병존하지 않는다면 국제당의 1국1당제원칙에도 모순될것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제당의 지시에도 부합되고 조선혁명도 강력히 추진시킬수 있는 그런 길을 모색하시던 끝에 바로 선행한 공산주의운동의 교훈으로부터 출발하여 조급하게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가 아니라 당창건의 조직사상적기초를 착실하게 다지고 그 토대우에서 명실공히 우리 혁명의 참모부적역할을 수행할수 있는 당을 창건할수 있는 방도를 찾아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종파와 인연이 없는 새세대 공산주의자들을 골간으로 기층당조직을 먼저 내오고 그것을 확대강화하는 방법으로 당을 창건하는것이 가장 적합하고 현실적인 창당방법이라고 간주하시였으며 이와 같은 방법으로 당을 창건하면 국제당에서도 환영할것이라고 확신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러한 사상을 정립하신데 기초하여 주체형의 첫 당조직ㅡ건설동지사를 결성하시였다. 《백전백승 조선로동당》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카륜회의를 끝마치신 다음날인 주체19(1930)년 7월 3일 진명학교 교실에서 주체형의 첫 당조직을 결성하는 회의를 소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지도간부들인 차광수, 김혁, 최창걸, 계영춘, 김원우, 최효일을 비롯한 새세대 혁명가들로 첫 당조직을 결성하시였다. 회의에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김형권동지를 비롯하여 김리갑, 박근원, 리제우 등도 첫 당조직성원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첫 당조직의 결성을 선포하시고 《당조직결성에 즈음하여》라는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선행운동이 남긴 쓰라린 교훈에 비추어 아무런 준비없이 당중앙을 내오려고 조급하게 서두를것이 아니라 당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가르치시고 결성된 첫 당조직의 지위와 사명을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오늘 결성한 혁명적당조직은 장차 창건될 우리 당의 시원으로 되며 우리 당창건을 위한 당의 기층조직들을 조직확대함에 있어서 모체적의의를 가지는 조직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적당조직을 결성함으로써 우리 새세대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의 진정한 전위조직을 가지고 그 통일적인 지도밑에 당창건준비사업과 반일민족해방투쟁을 더욱 힘있게 전개해나갈수 있게 되였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당조직성원들앞에 나서는 과업과 그 실현방도에 대하여 밝히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세대 혁명가들은 당창건의 조직사상적기초를 축성하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전개해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당조직성원들은 당창건방침에 철저히 의거하여 넓은 지역에 기층당조직을 급속히 확대강화하고 그에 대한 통일적인 지도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시켜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당조직성원들은 대오의 조직사상적통일과 동지적단합을 이룩하는데 주력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하나의 사상의지로 뭉치자!》는 구호를 높이 들고 혁명대오의 확고한 통일단결을 실현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이와 함께 당조직성원들이 자기의 숭고한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서는 혁명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축성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일제를 반대하는 세력이라면 직업과 재산, 지식과 신앙의 여하를 불문하고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혁명의 편에 전취하는 원칙에서 각계각층의 광범한 군중을 교양하고 각성시켜 혁명조직에 결속하는데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적당조직앞에 나서는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는데서 중요한것은 자주적립장을 확고히 견지하는것과 함께 당조직건설사업을 일제를 반대하는 혁명투쟁과 밀접히 결부하여 진행하는 원칙을 견지하는것이라고 가르치시였다.

 

회의에서는 당강령과 규약을 따로 채택하지 않았다. 《ㅌ. ㄷ》의 강령과 규약에 조선혁명가들의 최종목적과 당면투쟁과업이 명백히 밝혀져있었고 카륜회의에서 채택된 혁명로선과 전략적방침들에 혁명가들이 가야 할 길과 행동규범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여있었기때문이였다.

첫 당조직에 가입한 새세대 혁명가들은 모두가 일어나서 격정에 넘치는 열변을 토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의 첫 걸음을 떼시였고 생사운명을 같이할 동지들을 찾아내고 묶어세워 조선혁명을 전진시키고 완성해나가시려는 원대한 포부와 혁명적의지를 반영하여 그후 첫 당조직의 명칭을 건설동지사라고 하시였다.

 

최일천(최형우)이 해방직후 남조선에서 써서 출판한 도서 《해외조선혁명운동소사》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첫 당조직인 건설동지사를 결성하신 사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씌여져있다. 《…회덕에는 닉명단체 〈건설동지사〉가 생기였다. 김일성 대한 기대와 이 단체들의 운동은 컸다. 열의인 정의인인 김일성 대한 민중의 지지도 컸다. 아니 지지라기보다 19세 소년혁명가 김일성 완전히 민중의 친애하는 아들로서의 동생으로서의 사랑을 받았고 또 김일성 그들 민중에게 대하여 진심으로 봉사할것을 심약하였다.》

 

첫 당조직-건설동지사는 우리 당의 태아였고 씨앗이였으며 당의 기층조직들을 내오고 확대하는데서 모체적의의를 가지는 조직이였다. 건설동지사는 영생불멸의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하는 주체형의 혁명적당조직이였으며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이 확고하고 광범한 대중속에 깊이 뿌리박은 조직이였다. 그리하여 건설동지사는 우리 당의 시원으로 되는 영광스러운 당조직으로 되였다.

 

건설동지사가 결성된 때로부터 전반적조선혁명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령도하시는 혁명적당조직의 통일적지도밑에 전진하는 새로운 길에 확고히 들어서게 되였다. 건설동지사의 결성에 의하여 새세대 혁명가들은 력사상 처음으로 자기의 참다운 당조직을 가지게 되였으며 주체형의 혁명적당의 조직건설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갈수 있는 모체를 마련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19(1930)년 7월 10일 건설동지사의 사상적대변자의 역할을 할수 있는 출판물로서 《볼쉐비크》를 창간하시였다.

 

《볼쉐비크》는 처음 얼마동안 월간잡지 형식으로 나가고 그후 발전하는 혁명정세와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주간신문으로 발간되였다. 《볼쉐비크》는 원쑤들의 삼엄한 감시속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혁명로선과 방침을 널리 해설선전함으로써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대중적지반을 꾸리는데서 큰 역할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처럼 과감한 실천투쟁속에서 새형의 당 우리 당의 시원을 마련하시였다.

 

           ※ 일화:《례총을 쏘고싶소!》

           ※ 학습자료; 회고록《세기와 더불어》 제2권 제4장 4.《첫 당조직ㅡ건설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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