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투쟁, 무르익히신 주체적인 로선과 전략전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청년학생들과 함께 주체18(1929)년 가을부터 길림감옥에서 옥중고초를 겪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온갖 고초를 꿋꿋이 이겨내시였으며 옥중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으시고 혁명활동을 벌려나가시였다.

 

길림감옥은 간수가 가운데 앉아있으면서 사방을 감시할수 있게 동서남북으로 복도를 내고 그 복도의 량옆에 감방들이 붙어있는 십자형건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던 감방은 북쪽복도의 오른쪽으로부터 두번째 칸이였다. 북향이여서 일년내내 해볕이 들지 않아 곰팡이냄새가 지독하게 나고 겨울이면 벽에 성에가 하얗게 돋아 녹을줄 몰랐다.

 

위대한 수령김일성동지께 있어서 옥중투쟁은 큰 시련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그이께서는 불굴의 의지와 혁명승리에 대한 드팀없는 신념으로 온갖 고초를 꿋꿋이 이겨내시였으며 옥중에서도 순간도 투쟁을 멈추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옥중에서도 투쟁을 멈추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혁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감옥은 하나의 투쟁무대라고 할수 있다. 감옥을 단순히 죄인들을 가두어두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피동에 빠져 아무것도 할수 없다. 그러나 감옥을 세계의 한 부분이라고 여기게 되면 그 비좁은 공간속에서도 혁명을 위해 유익한 일을 할수 있는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외부와의 련계를 취하여 파괴된 조직들을 한시바삐 수습하고 움직이게 하시는 한편 군벌당국과 싸워 출옥날자를 앞당기기로 결심하시고 옥중투쟁을 힘있게 벌리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간수들을 교양하여 혁명의 동정자로 만드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사업의 첫 대상으로 비교적 온순하고 민족성이 있는 리가성을 가진 간수를 정하시고 그와 가까이 대하시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교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밖에 있는 조직성원들을 통하여 리간수의 출신이 비천하며 그가 밥을 벌어먹기 위해 간수가 된 사람이라는것을 료해하시였으며 그가 동생의 약혼식을 앞두고 례장감을 장만하지 못하여 안타까와한다는 사실을 아시고는 조직을 발동하여 그의 애로를 풀어주게 하시였다. 며칠후 위대한 수령님을 찾아온 리간수는 례장감을 장만해주어 고맙다고 하면서 수령님께 감옥당국이 당신을 공산주의자라고 하는데 그것이 정말인가고 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실이라고 대답해주시자 그는 모를 일이라고 하면서 공산주의자들은 모두 《비적》이라고 하는데 아무려면 당신같은 선량한 사람들이 남의것을 빼앗겠는가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공산주의자들은 진정한 애국자들이며 혁명가들이라는데 대해 차근차근 깨우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은 후부터 리간수는 근무교대를 하고 돌아갈 때면 수령님을 찾아와 다른 감방에 무슨 련락을 할것이 없는지 알아보고 부탁을 꼭꼭 들어주었으며 감옥밖의 조직에 통신도 전달해주면서 수령님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방조해드리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리간수밖에도 적지 않은 간수들을 교양하시여 혁명의 동정자로, 옥중투쟁의 방조자로 만드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옥중투쟁기간 수감된 청년학생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하고 단련시키기 위하여 힘쓰시였으며 그들의 생활을 살뜰히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감옥살이를 처음 해보는 청년학생들에게 혁명하는 사람들이 이만한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포자기해서야 어떻게 포악한 일제와 싸워 이길수 있겠는가고 타일러주시고 곤난을 이겨내도록 용기를 북돋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정신적, 육체적고통을 이겨나가시면서도 혁명가의 귀중한 정신적량식으로 되는 학습을 한시도 멈추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깥조직성원들이 들여보내는 《제국주의론》, 《식민지민족문제》 등의 정치리론서적들과 혁명적인 소설들을 읽으시였다. 또한 조직에서 보내온 《동아일보》, 《조선일보》, 《길림일보》를 비롯한 신문들도 정상적으로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학습뿐아니라 수감된 청년학생들의 학습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세심히 이끌어주시였다.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교하지방에서 체포되여 그곳 경찰서에 갇혀있다가 이송되여온 려신청년회 조직부장에게 《사회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얼마나 학습하였는가고 물으시며 아는대로 이야기해보라고 하시였다. 그는 교하에서 사업할 때 이 책을 볼데 대하여 이미 수령님으로부터 과업을 받았으나 체포된 후에는 학습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있었던것만큼 머리에 떠오르는 몇가지 내용만을 두서없이 말씀드릴수밖에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이 책의 중심내용을 조리있게 해설하여주시여 그가 한달가까운 사이에 그 내용을 통달하게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른 청년들도 학습을 열심히 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일부 청년들속에서는 얼마동안은 책을 열성적으로 보았으나 감옥생활에 지쳐서 점점 학습을 소홀히 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감옥생활이 어려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혁명을 하여 나라를 찾겠다고 나선 사람이 이만한 시련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학습을 안해서야 되겠는가, 혁명가는 언제 어디서나 혁명을 해야 하며 혁명을 하자면 학습은 단 하루도 미룰수 없는것이다, 맥을 놓지 말고 학습을 하자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청년들은 학습에 열성을 내게 되였으며 그로 하여 감옥안의 우울한 분위기는 가셔지고 학습은 옥중생활에서 어길수 없는 일과로 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동지들과 수감자들을 대하는데서 언제나 인자하고 사려깊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바깥에 있는 조직성원들이 정성껏 마련해 들여보내는 물건들을 받으실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돌아가게 하려고 마음쓰시였으며 수감자들이 겪는 고통을 자신의 아픔처럼 보살피시였다.

 

같은 감방에 있던 한 청년이 석방되여 나갈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석방을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손을 굳게 잡으시고 고무해주시다가 그의 람루한 누데기옷차림새를 보시고는 안색을 흐리시며 자신께서 입고계시던 옷을 벗으시여 그에게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선생님!…그것만은…》 하고는 더 말을 못하며 울먹이는 그에게 자신의 옷을 손수 입혀주시고 출옥후 일제침략자들과 착취계급을 반대하여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고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러한 고결한 풍모를 보면서 청년학생들과 수감자들, 지어 간수들까지도 수령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금치 못하였으며 수령님을 《위험인물》로 경계하던 간수들도 함부로 무례한 행동을 하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차디찬 감방안에서도 뜨거운 정열로 가슴을 불태우시며 조선혁명의 앞길에 대한 고심어린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시였으며 이미전부터 구상해오신 조선혁명의 주체적로선과 전략전술을 무르익혀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지난 기간 우리 인민이 운동도 많이 하고 피도 많이 흘리였는데 왜 투쟁은 승리하지 못하고 매번 주저앉기만 하였는가, 그 본질적약점과 제한성이 무엇인가를 분석해보시였다.

 

력사적으로 우리 나라 반일운동대렬안에는 파벌이 형성되여 민족해방투쟁에 커다란 해독을 끼쳤다. 반일항쟁의 첫 봉화를 들고 8도강산을 주름잡던 의병의 대오는 상하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분렬되여있었으며 독립군의 실태도 다를바 없었다. 독립군은 조직자체에서부터 분산성과 산만성을 드러냈으며 독립운동단체들의 3부의 통합으로 국민부가 나온 다음에도 권력싸움은 그치지 않았고 큰 나라들을 쳐다보면서 쓸데없는 말싸움만 하였다.

인민들과 리탈되여 상층의 몇몇 사람들끼리만 모여앉아 말공부와 권력다툼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대중을 혁명투쟁에로 불러일으키지 않은 본질적약점은 공산주의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속에서도 나타났다. 초기공산주의운동자들은 인민들속에 들어가 그들을 교양하고 결속하며 투쟁에 동원할 대신 인민들과 동떨어져 말공부나 하고 《령도권》쟁탈을 위한 권력싸움만 하였다. 그들은 또한 사대주의에 사로잡혀 자체로 당을 꾸리고 혁명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저마다 자기파를 《정통파》라고 하면서 감자도장까지 만들어가지고 국제당의 승인을 받으러 돌아다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선행한 우리 나라 민족주의운동과 초기공산주의운동의 이러한 실태를 분석하여보시고 혁명을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되겠다는것을 심각히 느끼게 되시였다. 이로부터 자기 나라 혁명은 자신이 책임지고 자기 인민의 힘에 의거하여 수행하여야 승리할수 있으며 혁명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으로 조선혁명을 어떻게 이끌고나갈것인가 하는데 대해서도 사색과 탐구를 거듭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침략자들을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하자면 어떤 형식과 방법으로 싸워야 하며 반일력량을 어떻게 하나로 결속하여야 하겠는가, 혁명의 령도기관으로서의 당을 어떻게 창건하여야 하겠는가 그리고 감옥에서 나가면 무슨 사업부터 착수해야 하겠는가 등 문제들에 대하여 순간도 사색을 멈추지 않으시였다. 그리하여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과 사회계급적관계로부터 출발하여 조선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하시고 무장한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을 해방하자면 무장을 들고 싸워야 하며 로동자, 농민, 민족자본가, 종교인을 비롯한 모든 반일애국력량을 반일의 기치하에 묶어세워 투쟁에 불러일으키고 파쟁이 없는 새로운 혁명적당을 창건하여야 한다는것을 투쟁방침으로 확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혁명을 수행해나가는데서 견지하여야 할 립장과 관점이 명백해지고 로선과 방침도 뚜렷하게 안겨오게 되자 하루빨리 출옥날자를 앞당기기 위한 투쟁을 적극 벌려나가시였다.

 

반동군벌당국은 청년학생들에게 중형을 들씌울만한 아무런 증거도 쥐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심의를 질질 끌면서 그들을 무작정 감옥에 가두어두려고 꾀하고있었다. 놈들의 흉계를 간파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체없이 출옥투쟁을 조직전개하시였다.

 

주체19(1930)년 초봄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간수를 통하여 매 감방의 동지들에게 군벌당국의 음흉한 기도를 알려주시고 그들이 전체 수감자들을 투쟁에로 조직동원하도록 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놈들이 무작정 우리들을 이 감옥안에 잡아두려고 하는데 어찌 가만히 앉아있을수 있겠는가, 놈들의 술책을 반대하여 투쟁해야 한다, 증거가 있으면 속히 판결하라고 들이대야 한다, 만약 항의해서도 안되면 외부조직과의 련계밑에 사회적여론을 불러일으켜 놈들에게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항의문을 작성하시여 감방들에 돌리시였으며 전체 수감자들의 이름으로 감옥당국에 들이대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항의문을 당장 취소하지 않으면 모두 《소요죄》에 걸어 중형을 들씌우겠다고 한 놈들의 위협공갈에 맞서 수감자들을 일제히 단식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한편 외부조직들에 지시를 주시여 길림감옥수감자들의 단식투쟁에 대한 사회적여론을 환기시키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옥중투쟁을 하실 때 손정도목사의 방조를 많이 받으시였다.

 

길림에 온 후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을 적극 지지해준 손정도목사는 일곱달동안 꾸준히 옥바라지를 해왔으며 수령님을 위해 옥리들에게 돈도 많이 찔러주었다. 길림독군서에서 우두머리노릇을 한 장작상에게 뢰물을 먹이면서 위대한 수령님을 석방시키기 위한 청원운동을 이끌고나간 주동인물도 바로 손목사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능숙한 지휘밑에 하나로 굳게 단결된 청년학생들과 전체 수감자들의 완강한 투쟁과 날로 커가는 사회적여론앞에 반동군벌당국은 드디여 굴복하였으며 투쟁은 빛나는 승리를 이룩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19(1930)년 5월초 동지들과 함께 길림감옥을 나서시였다.

 

        ※ 일화: 새 사람이 된 《깡툴》감옥당국을 굴복시킨 단식투쟁

        ※ 학습자료;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1권 제3장 10.《철창속에서》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