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대지에 빛나는 해빛같은 미소

7월의 강산에 그리움의 대하 세차게 굽이친다.

아, 어버이수령님!

푸른 하늘의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면 인민을 잘 먹이고 남부럽지 않게 내세우는것을 평생념원으로 안으시고 이슬에 옷자락 마를새없이 농장들을 찾고찾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이 가슴뭉클 어려오고 알곡생산을 늘여 우리 나라를 살기 좋은 사회주의락원으로 꾸려야 한다고 당부하시던 그날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들려오는듯싶다.

이 땅우에 오곡백과 주렁질 사회주의락원을 하루빨리 일떠세울 일념을 안으시고 불면불휴의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며 인민을 위해 겪으시는 고생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으시던 어버이수령님의 그 모습을 우리 어찌 천년이 간들, 만년이 간들 잊을수 있으랴.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라의 농업발전에서 이룩하신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은 조국청사에 길이 빛날것입니다.》

어버이수령님의 모든 사색과 실천의 중심에는 항상 인민들의 먹는 문제, 농사문제가 놓여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를 위한 일이라면 그 어떤 험한 길도 마다하지 않으시였다. 그 나날에는 한개 농장을 한해동안에 3차례, 4차례씩 찾으신 사실도 있고 친히 조합원이 되시여 협동조합(당시)살림살이를 보살펴주신 이야기도 있다. 명절날, 휴식일은 물론 탄생일에도 농사문제로 마음쓰신 감동어린 이야기들은 또 그 얼마인가.

어느해 4월 14일, 현지지도의 길에서 가물피해를 입고있는 밭곡식들에 대한 관수대책을 세워주시고 밤이 깊어서야 숙소로 돌아오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자주 창문을 여시고 밤하늘을 바라보군 하시였다.

밤하늘에 금시 쏟아질것 같이 먹장구름이 끼였으나 비는 좀처럼 내리지 않았다. 그런데 4월 15일 아침 드디여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뜨락에 나서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손을 펴드시고 비량을 가늠해보시였다. 그러시고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일군이 급히 달려와 덧옷을 드렸지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비를 즐겁게 맞으시며 기쁨을 금치 못하시였다.

(농사때문에 얼마나 걱정이 많으시였으면…)

이런 생각으로 가슴이 뜨거워난 일군이 수령님, 오늘 아침마저 이러시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목메인 소리로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이 생일 생일 하는데 비가 오니 생일보다 더 기쁘다고 하시면서 더없이 만족해하시였다.

우리 수령님은 이런분이시였다.

오직 인민밖에 모르신분, 인민들의 먹는 문제로 늘 마음쓰신 어버이수령님이시여서 몸소 농업전선의 사령관이 되시였다.

주체62(1973)년 1월이였다. 새해벽두부터 며칠동안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의 여러 협동농장을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틀간에 걸쳐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를 소집하시고 농사에 전당적, 전국가적인 힘을 총집중할데 대한 작전을 펼치시면서 자신을 농업전선의 사령관으로 선포하시였다.

이렇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나라의 농사를 직접 맡아안으시였다.

현지지도의 길을 가시다가도 길옆의 푸르싱싱한 벼모판을 보시고는 너무 기쁘시여 바쁘신 걸음을 지체하시고 가물에 시든 농작물을 보시면 가슴이 답답하시여 식사도 미루시며 마음쓰신 어버이수령님.

어느해 여름에 있은 일이다. 강서구역 청산리에 어버이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일하는 한 일군이 찾아왔다. 점심시간에 나타난 그 일군의 이야기는 참으로 뜻밖이였다.

좀전에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청산벌을 지나시다가 논판의 여기저기가 누렇게 된것을 보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흐리신 안색으로 혹시 병해충의 피해나 입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몹시 걱정하시며 청산리에 가서 그 정형을 알아보고 오라고 하시였다.

그것을 알아야 밥맛도 날것 같다고 하시며 우리 수령님께서 아직까지 점심도 드시지 못하고계신다는 일군의 목소리는 젖어있었다.

농장일군들은 깜짝 놀라 논벌로 달려나갔다. 곧 원인이 밝혀졌다. 누런색을 띠고 시들어가고있던것은 벼포기가 아니라 살초제가 은을 내서 죽어가는 잡초들이였다. 농장에서는 누렇게 된 잡초 몇포기를 뽑아 어버이수령님께 보내드리게 되였다.

일군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제야 화학화가 은을 냈다고 못내 기뻐하시며 점심식사를 드시였다.

진정 우리 수령님께 있어서 풍년든 농장벌은 이 세상을 통채로 얻은것보다 더 큰 기쁨이였고 농사문제는 가장 큰 중대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늘 가지고다니시던 수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언제인가 외국방문의 길에 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렬차의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무연한 벌판을 바라보시다가 일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의식주문제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것은 먹는 문제요. 글자순서로 보면 입는것이 첫째이고 먹는것이 둘째이며 쓰고사는것이 셋째이지만 나는 먹는것을 첫째로, 입는것을 둘째로, 쓰고사는것을 셋째로 보오.

그러시고는 다시금 차창에 시선을 주시며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에서 해마다 사망률은 줄어들고 대신 출생률이 늘어나고있다고 하시면서 수첩을 펼쳐드시고 무엇인가 계산해보시였다. 그 수첩에 우리 나라의 부침땅면적과 인구 한사람당 차례지는 면적이 적혀있었다.

이윽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침땅면적이 제한되여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결정적으로 농사를 잘 지어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우리 수령님께서는 80고령의 년로하신 몸에도 농사문제를 두고 마음쓰시였다.

자신께서 직접 농사를 틀어쥐고 지도하겠다고 하시는 어버이수령님께 일군들은 절절히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 이제는 년세가 많으신데 어떻게 또다시 농사일을 직접 지도하시겠습니까.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방향만 주시면 저희들이 다 하겠습니다.

그러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동무들은 쩍하면 나보고 편안히 앉아있으라고 하는데 그렇게 할수 없다고, 이제부터 농사일을 단단히 짜고들어야 하겠다고 하시며 일군들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으시였다.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해의 7월 7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한 일군을 부르시여 지도에 표시된 어느 한 저수지를 가리키시며 떠날 준비를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 전날 어버이수령님께 호수가에 나가시여 낚시질이라도 하시면서 겹쌓인 과로를 푸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종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있던 일군의 얼굴은 금시 밝아졌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낚시질을 가자는것은 아니라고, 일기예보에서 많은 비가 내리겠다고 하는데 비가 많이 오면 농작물이 물에 잠기게 되고 인민들이 큰물피해를 입을수 있으므로 현지에 나가서 수위와 제방상태를 알아보고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고 하시였다.

일군의 입에서는 저도모르게 한숨이 새여나왔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러는 일군에게 우리 후에 좋은 날을 택해서 낚시질을 가자고 하시였다.

하지만 그 약속은 끝내 이루어질수 없었으니 우리 수령님과 같으신 그렇듯 위대한 인민의 어버이가 세상 그 어디에 있었던가.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오래동안 사업해온 한 일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잦을새 없듯이 온 나라 대가정의 어버이이신 우리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정말 걱정이 많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소원중에서도 제일 큰 소원은 바로 이 나라 천만자식들을 잘 먹이는것이였다.》

수수천년 천대와 멸시를 숙명처럼 간주하며 살아야 했던 인민, 그 인민을 잘살게 하시려 끝없는 현지지도의 길, 포전길을 걸으신 우리 수령님은 진정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그래서 우리 농업근로자들의 심장속에 절절한 그리움과 뜨거움의 열기는 더더욱 세차게 분출하는것이리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오늘도 포전길에 계시며 사회주의대지에 해빛같은 미소를 뿌려주신다. 온 나라 농업근로자들의 마음속에 영생하시며 농업생산에서 통장훈을 불러오라고, 사회주의강국건설의 승리를 알곡증산으로 앞당겨오라고 당부하신다.

주체108(2019)년 7월 3일 로동신문

백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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