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수령님의 크나큰 은덕 만대에 길이 빛나리

꿈결에도 그리운 영원한 우리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심이 천만의 가슴에 더더욱 뜨겁게 격랑치는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 인류공동의 경사의 날 태양절.

민족대통운의 날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다함없는 경모의 노래, 아름다운 추억의 노래가 강산을 더욱 뜨겁게 진감하는 속에 불타는 충정의 마음들이 유서깊은 만경대로, 금수산태양궁전으로 끝없이 달리고있다.

인민, 이 신성한 이름앞에 위대한 한생의 하루하루를 가장 뜻깊고 빛나게 바치시여 그 폭과 깊이에 있어서 류례없는 성스러운 사랑의 한평생을 광휘롭게 수놓으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인민에 대한 책임감, 혁명에 대한 책임감, 조국에 대한 책임감으로 자신을 채찍질하시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랑의 자욱 헌헌히 이어가시면서 이 조선, 이 인민이 후손만대로 누려갈 복을 안겨주신 영원한 인민의 어버이!

참으로 우리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숭고한 덕성을 지니시고 인민을 위해 불멸할 업적을 이룩해놓으신 인민의 영원한 어버이이시다.

장장 수십성상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겨사는 행복을 세상에 소리높이 자랑해온 우리 인민이 그 은혜로운 태양의 력사를 어이 순간인들 잊을수 있으랴, 불멸할 그 은덕을 어이 천년만년 전하지 않을수 있으랴.

 

* *

 

지나온 력사에는 애국자도 많았고 력사에 흔적을 남긴 위인도 많았다.

하지만 진실로 인민을 위대한 존재로 존대하고 존엄높은 영광에로 이끄신 위인, 인민을 위하여 영원불멸할 업적을 쌓으시여 인민의 어버이로 영생하시는 그런 인민적수령은 동서고금에 일찌기 없었다.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신 우리 수령님처럼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해 할수 있는 모든것을 다한 인민의 수령은 아직 력사가 알지 못하고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오늘 이 땅우에 일떠선 불패의 사회주의강국과 승승장구하는 주체혁명위업은 수령님께서 인민이라는 대지우에 씨앗을 뿌리고 한평생 가꾸어 마련하신 고귀한 결실이다.》

우리가 여기에 쓰는 이야기도 그러한 헤아릴길 없는 사료들가운데 그 일부로 된다.

어버이수령님께 있어서 인민보다 더 귀중한 존재는 없었으며 인민의 리익을 위하는 일보다 더 신성한 위업은 없으시였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9월 어느날이였다.

조국땅 북변을 찾으시여 여러 공장을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기쁨으로 설레이는 장내를 둘러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여러곳을 돌아보시던중 제일 인상깊었던 어느 한 공장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시였다. 그 공장으로 말하면 어버이수령님께서 여러해전에 돌아보신 공장이였다. 공장을 찾으신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요란한 소리를 내는 프레스를 보시며 기계소리가 너무 요란하여 귀청이 다 못쓰게 될 지경이라고, 로동자들을 계속 이런데서 일을 시키다가는 귀를 다 못쓰게 만들겠다고 하시면서 기계를 소리가 나지 않게 개조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하여 공장에서는 기술적인 탐구를 거듭한 결과 문제의 프레스를 소리가 안나게 만들었을뿐아니라 모든 직장들에서 생산공정을 전부 자동화하여 생산량을 몇곱절 더 높였던것이다. 이러한 성공의 기쁨을 안고 어버이수령님을 다시 일터에 모시게 된 로동계급과 기술자들의 환희는 끝이 없었다.

내리찍을 때마다 땅을 쾅쾅 울리며 로동자들의 청각을 크게 자극하던 프레스가 거의나 소리를 내지 않고 잽싸게 일하고있었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기대공에게 다시한번 스위치를 넣어보라고 이르시였다. 프레스는 다시금 높은 속도로 제품을 찍어내기 시작하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너무 기쁘시여 기대의 발판계단우에 성큼 올라서시여 이런 기계를 더 많이 만들어 로동자들이 소음이 없는 일터에서 편히 일하게 하라고 우렁우렁한 어조로 당부하시였다.

모두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친어버이사랑이 그들의 가슴속에 넘치게 흘러들었다.

이윽고 공장을 다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일군들을 몸가까이 부르시고 로동자들을 그처럼 애먹이던 프레스의 소음을 없애게 한 동무를 영웅으로 추천하자고 하시며 그를 거듭거듭 치하해주시였다.

며칠후 여러 혁신자들을 표창하는 모임에 직접 참가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의 가슴에 은정넘친 사랑을 아름껏 안겨주시였다. 표창식은 오후 5시에 끝났다. 이미전에 진행한 회의가 끝났을 때는 점심시간이 훨씬 넘은 오후 3시였으나 수령님께서 기어이 표창식까지 보고 가겠다고 하시여 점심식사도 건느게 되시였던것이다.

후날 이 가슴뜨거운 사연을 전해들은 그 공장 로동계급은 끓어오르는 격정속에 자기들이 안겨사는 어버이품이 얼마나 은혜로운 사랑의 품인가 하는데 대하여 뜨겁게 절감하였다. …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내를 향하여 로동자들이 아무런 소음도 없는데서 일할수 있도록 기계를 완전히 개조하였다고, 자신께서는 이것이 제일 기쁘다고 하시며 해빛같은 미소를 함뿍 머금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기쁨은 바로 이런것이였다.

그 행복에 넘치는 미소에서 일군들은 인민을 위하시는 한없이 뜨거운 사랑의 바다, 쉼없이 출렁이는 인정의 바다를 눈이 부시도록 보았다.

력사의 땅 창성과 더불어 전해지는 도토리묵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얼마나 만사람의 심금을 울려주고있는것인가.

원래 창성은 무섭게 가난한 고장이였다. 높고낮은 산줄기에 둘러싸여있는 창성에는 농사를 지을수 있는 면적이 겨우 5%밖에 안되였는데 그나마 모두 비탈밭과 돌밭뿐이였다. 바위틈에 감자농사를 짓는것이 고작이였다.

굵은 삼으로 짠 토스레옷, 굴속같은 방안의 고콜불 …

가난이 가져다주는 고생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고생은 배고픈 고생이였다. 그래서 창성사람들은 모자라는 식량을 도토리묵으로 보탬하였다.

어느해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곳을 찾으시였을 때에는 도토리를 널어놓고 말리우지 않는 집이 거의나 없었다. 눈아프게 안겨오는 그 광경을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곧 군의 식량사정을 알아보시였다. 해마다 1 000여t의 식량이 모자랐다. 하루에 한끼분의 식량이 없는셈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부관에게 도토리로 어떻게 식량보탬을 하는지 알아보았는가고 물으시였다. 이미전에 부관에게 창성인민들이 도토리로 음식을 어떻게 해먹는지 알아보라고 과업을 주시였던것이다.

부관은 가을철이 되면 온 집안식구들이 동원되여 도토리를 따서 말리워두었다가 그것으로 묵을 만들어 식량보탬을 한다고 말씀올리였다.

그의 대답을 묵묵히 듣고계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먼산을 바라보시며 잠시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이윽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큰숨을 모두어쉬시며 그에게 도토리묵을 한그릇 얻어오라고 저으기 갈리신 어조로 이르시고는 마당을 천천히 거니시였다.

하건만 그는 주저주저하며 자리를 뜰념을 못하였다. 그 험한 음식을 어떻게 올린단 말인가.

그러는 그의 속내를 읽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서빨리 얻어오라고 재촉하시는듯 그에게 눈짓을 하시였다. 하는수없이 그는 도토리묵을 한그릇 얻어가지고와서 떨리는 손으로 그이께 올리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곧 도토리묵을 맛보시였다. 씁쓸하고 뿌드드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또 한숟가락을 뜨시여 맛보시였다.

일군들모두는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그날의 도토리묵맛을 심중에 새겨두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궁벽한 산골군인 창성군인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해 끊임없는 심혈과 로고를 바치시였다.

새벽이슬에 옷깃을 적시며 창성의 산발들을 타시고 강냉이이삭도 발가보시였으며 늙은이들과 허물없이 무릎을 마주하시고 농사일을 의논해주시기를 그 얼마였던가.

하나를 주면 열, 백을 더 주고싶어하시는 어버이의 정과 열로 논을 풀수 있는 방도도 가르쳐주시고 양수설비까지 해결해주시며 산언덕에서도 평지에서와 같이 벼농사를 지을수 있도록 모든 조건을 보장해주시여 창성인민들의 밥상을 풍성하고 기름지게 해주신 우리 수령님이시다.

그로부터 수십년세월이 흐른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때의 일을 뜨겁게 추억하시였다.

창성군사람들은 식량이 모자라 도토리묵을 해먹으면서 살았다. 창성군과 벽동군일대를 현지지도하면서 보니 집집마다 도토리를 따다가 말리우고있었다. 그래서 알아보니 이곳 인민들이 도토리를 말리워두었다가 그것으로 묵을 만들어 식량보탬을 한다고 하였다. 부관에게 도토리묵을 한그릇 얻어오라고 하여 먹어보았는데 뿌드드하고 맛이 없었다. …

우리 인민들에게 한알의 닭알이라도 더 먹이시기 위하여 어버이수령님께서 나라의 크고작은 도시와 마을들, 산간벽지를 찾으시여 친어버이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베풀어주신 일은 그 얼마이며 그처럼 바쁘신 나날에도 몸소 닭공장의 터전을 잡아주시고 더 많은 닭알을 생산하도록 하기 위하여 기울이신 로고에 대한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만사람의 가슴에 소중히 새겨져있는가.

눈부신 비약의 일로를 걸어온 가금업의 급속한 발전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 인민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인민들을 더 잘 먹이시려고 그처럼 깊이 심려하신 사연들을 다시금 가슴뜨겁게 되새기게 된다.

본시 닭알이나 닭고기는 농촌에서 생산되여 도시로 들어오게 되여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농촌은 농촌대로 군중적인 운동으로 닭을 치고 도시는 도시대로 공업화된 현대적인 닭공장들에서 닭알과 닭고기를 생산하고있다. 실로 가슴뜨거운 사랑이 낳은 현실이다.

여기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해 8월말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농업부문 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다가 우리 나라의 닭공장건설력사에 대하여 감회깊이 들려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벌써 오래전부터 인민들에게 닭알을 먹이시려고 여러모로 생각을 거듭하시며 그 방도를 모색하시였다.

그무렵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나라 공산당대회에 참가하시기 위하여 우리 나라 당 및 정부대표단을 인솔하시고 그 나라를 방문하게 되시였다.

회의가 계속되던 어느날이였다. 그날은 일요일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회의주최측에서 조직한 참관에는 가지 않으시고 이미 계획하였던대로 한 닭공장을 찾으시였다. 뜻밖에도 어버이수령님을 모신 그 공장 지배인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공장의 생산공정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설명해드리였다.

공장을 돌아보시면서 우리도 닭을 공업적방법으로 길러 인민들에게 알과 고기를 많이 먹여야 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히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닭공장건설문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시였다.

그후 조국에 돌아오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길로 닭공장건설에 착공하도록 하시였다. 하지만 닭알생산경험이 부족하여 생산이 잘되지 않았다. 원인을 따져보니 태양등이 없어 그런다는것이였다. 인차 조직사업을 하여 태양등을 설치하였지만 닭알생산은 여전히 부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친히 가금업을 연구하기 시작하시였다. 그와 관련한 책이라면 시간을 쪼개가며 다 탐독하시였다.

어느날 평양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어느 한 나라에서 출판한 기술도서를 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닭에게 미량원소가 들어있는 첨가제를 먹이면 해빛을 쪼이지 못하여도 알을 잘 낳는다고 씌여진 대목을 발견하시였다. 그렇게도 고심하며 찾으시던 자료를 손에 쥐신 어버이수령님의 기쁨은 한량없이 크시였다. 그이께서는 즉시 평양으로 향하시였다.

평양에 도착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가금업부문 일군들과 학자들을 닭공장에 모이도록 하시고 몸소 현지에 나가시여 그들과 의논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누구에게라 없이 미량원소에 대하여 물으시자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그럴것이 그때까지만 하여도 나라에 가금업박사가 한사람도 없었기때문이였다. 조상대대로 가정에서 닭을 몇마리씩 기르는데 불과하였지 공업적방법이란 생각조차 못하던 때, 이제 겨우 가금업과 관련한 책의 첫페지를 펼쳐보기 시작한 사람들뿐이였던것이다.

대답을 할수 없는 그들의 모습에서 지나온 우리 인민들의 생활이 헤아려져 가슴아픔을 금치 못하시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공부를 하라고, 나라의 가금공업을 떠메고나가자면 많이 알아야 한다고 간곡히 타이르시였다.

그때의 일을 추억깊이 더듬으시는 자리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미량첨가제를 사다 다른 먹이와 섞어먹이니 닭이 알을 잘 낳기 시작하였다고 하시면서 나는 그때 내가 우리 인민을 위하여 참으로 좋은 일을 하였다고 생각하였다고, 그다음부터 이르는 곳마다에 닭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하였으며 원종장도 건설하기로 하였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평양시에 닭원종장을 건설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고 몸소 현지에 나가시여 원종장건설자리까지 잡아주신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만경대, 서포, 하당…

이르는 곳마다 수많은 가금공장들을 일떠세워주시려 우리 수령님께서 걷고걸으신 길 천리던가 만리던가.

생산한 닭알을 하나라도 깨치지 않고 인민들에게 고스란히 가닿게 하시려고 닭알꽂개며 상자 하나에 이르기까지 더 잘 만들데 대하여 세심히 가르쳐주시고 그 바쁘신 속에서도 친히 닭알나르는 전문운반차를 돌아보시고 진동이 없게 용수철을 더 무르게 해야겠다고 가르쳐주신 수령님의 사려깊은 어버이사랑 우리 어찌 말과 글로 다 전할수 있으랴.

인민의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은 이처럼 어버이수령님께 있어서 사색과 활동의 전 령역이였다. 간고한 시련도, 어떤 환경도 어버이수령님의 이 사색과 활동을 순간도 멈춰세울수 없었다.

어느해인가 어버이수령님께서 외국방문의 길에서 그 나라의 령공을 지나실 때의 일이다. 비행기의 시창으로 이국의 산천이 끝없이 흘러갔다. 비행기가 한 지방의 상공을 지날 때였다. 불현듯 무수한 물웅뎅이가 보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자리를 같이한 그 나라의 총리에게 저것이 다 무엇을 하는 물웅뎅이인가고 물으시였다. 총리는 그것이 집집마다에 있는 양어장이라는것과 이 지방이 자기 나라에서 물고기와 쌀이 많이 나는 고장으로 불리운다는데 대하여 말씀드리였다. 그의 대답을 듣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사색은 어느덧 이국의 상공과 지경을 넘어 조국땅, 사랑하는 인민들에게로 달리고있었다.

이국의 령공을 지나시는 길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조국의 곳곳에 양어장을 만들어 바다먼 산촌의 인민들에게도 사철 물고기가 풍족하게 차례지게 하시려는 구상을 무르익혀가시였다.

우리 나라의 어디서나 볼수 있는 양어장들은 이렇듯 만사람의 가슴과 가슴을 달구어주는 이날의 뜨거운 사연과 잇닿아있는것이다.

인류와 더불어 시작된 사랑의 력사,

과연 어느 시대, 어느때에 이런 가슴뜨거운 력사가 기록된적 있었던가.

우리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의 높이, 인민에 대한 헌신성의 열렬함을 과연 그 무엇에 비길수 있을것인가.

진정 우리 수령님의 한생은 인류정치사가 알지 못하는 류례없는 사랑의 한생이였다.

이런 위대한 인민의 어버이이시기에 우리 수령님께서 일군들에게서 바라신것도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였다.

어느해 뜻깊은 4월 명절날이였다. 일군들이 올리는 축원의 인사를 받으시는 자리에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당부하시였다.

당과 혁명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자는 뜨거운 부탁의 교시를.

겪어오신 긴긴 세월을 회고하시면 잊지 못할 일인들 얼마나 많으시고 감회인들 또한 얼마나 깊으시였을것인가.

하지만 그 많은 사연과 감회를 한마디에 함축하여 하신 그 짤막한 당부, 그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일군들에게 하시는 부탁이자 자신앞에 내세우신 필생의 요구였으며 생활의 억척같은 신조이기도 한것 아니였던가.

인민에 대한 이런 열화같은 사랑을 지니신 어버이수령님이시기에 수령님의 한생의 력사앞에서 우리 인민은 세월이 갈수록 감격에 목메이는것이며 온 세상 사람들이 또한 찬탄의 목소리, 경탄의 목소리를 끝없이 높이는것 아니던가.

눈비는 내리고내려 땅에 잦아들기마련이다.

하건만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과 인민을 위해서 맞고맞으신 그 많은 눈비, 남기신 고귀한 사랑의 이야기들은 수령님의 사랑의 력사를 천만금보다 더 귀중히 여기는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서 절대로 잦지도 잊혀지지도 않는다.

날이 갈수록 더 강렬한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심장을 불태우시며 수령님의 하늘같은 은공을 길이 빛내여주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 계시기때문이다.

인민을 위해 온넋을 다 바치신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자나깨나 그리시며 수령님께서 걸으신 인민사랑의 길우에 인민을 위한 자신의 발자욱을 합치시는 경애하는 원수님!

어버이수령님께서 위대한 심장을 불태우시며 아끼고 사랑하시였으며 위대한 헌신으로 위해주신 우리 인민, 그 인민을 세상에서 제일 존엄높고 행복한 인민으로 떠받들어주시려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가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의 은혜로운 사랑의 장정속에 한평생 인민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치신 우리 수령님의 사랑의 력사는 끝없이 흐를것이다.

주체108(2019)년 4월 5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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