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협조의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시여

날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세계 진보적인민들은 20세기의 걸출한 위인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안고 그이를 열렬히 칭송하고있다. 우리 수령님은 넓은 도량과 뜨거운 인간애를 천품으로 지니신 대성인이시고 만민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는 20세기의 가장 걸출한 수령이시며 절세의 위인이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숭고한 국제주의적의무를 지니시고 자주성을 지향하는 나라들에 진심어린 방조와 지원을 주시였다.

주체60(1971)년 8월 아프리카의 어느 한 나라 정부대표단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다.

대표단이 우리 나라에 온데는 사연이 있었다. 이전에 우리 나라에 한달동안이나 머물러있다가 돌아간 지방장관들이 일을 잘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들은 자기 지방에서 수공업자들을 규합하여 지방산업공장들을 꾸리고 경제발전에 힘을 넣고있었다.

당시 이 나라의 최고혁명리사회 위원장은 그들의 사업에 대해 더없이 만족해하며 이번에는 보다 높은 급인 정부대표단을 보내여 농업문제를 풀어보려고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정부대표단의 방문목적에 대하여 알아보시고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친히 그들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님들의 안부를 물으시고나서 전번에 우리 나라를 방문한 귀국의 지방장관들을 만나보았다고, 그들이 돌아가서 일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교시하시였다. 그들이 일을 잘하고있다는 대표단단장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를 방문하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도 매우 기쁜 일이라고, 새로 독립한 나라들이 경험을 서로 교환하는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시였다.

이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표단단장에게 농사형편에 대해 알아보시면서 한해에 몇벌농사를 짓는가고 물으시였다.

단장의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관개공사나 잘하면 당신들은 쌀부자가 될것이라고, 우리의 관개기술자들이 소말리아에 갔다와서 하는 말이 관개공사를 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겠다고 하였다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나라 정부의 관심사로 되는 농업분야에서의 관개문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면서 전후 우리 나라에서 진행한 관개공사의 경험을 들려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은 대표단단장은 신심에 넘쳐 자기들도 그런 식으로 군중을 동원하면 로력문제를 풀수 있을것 같다고 말씀올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이 있어 하는 대표단단장에게 관개공사에 드는 설비라든가 기술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무상으로 도와주겠다고, 조선에서 실어가기 곤난한 설비들은 사서라도 해주려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약속하신대로 관개전문가들과 관개용설비들을 보내주시였다.

그 나라에서는 우리 나라 관개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관개공사를 진행하였다. 결과 1976년에는 관개면적이 1 000정보에 이르렀다. 1977년부터 2단계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여 그 면적은 더욱 늘어났다.

세계 진보적인류에 대한 참다운 사랑과 믿음으로 일관된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국제적협조에 대한 이야기를 꼽자면 끝이 없다.

주체52(1963)년 우리 나라에는 도자기기술을 배우러 말리의 실습생들이 와있었다. 말리대통령이 우리 나라를 방문하였던 대표단의 사업정형을 보고받고 여러명의 실습생들을 보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말리가 새 사회건설에서 곤난을 겪고있다는것을 헤아리시고 친히 도자기실습생들을 받도록 하시였을뿐아니라 당창건기념일인 그해 10월 10일에는 여러가지 행사들이 겹치는 속에서도 그들을 따로 만나주시였다.

당, 국가대표단도 아니고 정부, 사회계인사도 아닌 평범한 실습생들을 친히 만나주시니 그들의 감격은 이루 헤아릴수 없이 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우리 나라의 가을날씨가 춥지 않은가, 앓는 사람은 없는가, 겨울나이차비는 해가지고 왔는가고 일일이 알아보시였다.

이윽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에는 크고작은 도자기공장이 많다, 말리의 도자기공업을 위해서라면 그 어데이건 실습대상지로 제공하겠다고 하시였다. 계속하시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실습기간도 당신들의 요구대로 정하도록 해야 하겠다고, 6개월내에 당신네 실습생들이 도자기기술을 다 배운다면 더욱 좋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기한에 구애될것이 아니라 온 목적이 기술을 배우러 왔으니만큼 익숙될 때까지 실습하는것이 좋겠다고, 우리는 그렇게 하는것을 환영한다고, 위생자기랑 실습하려면 시간이 좀더 걸릴것이라고 다심한 어버이의 정을 담아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새겨안는 실습생들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랐다.

당시 말리인민들은 도자기그릇이 없어 바가지나 나무잎에 음식을 담아먹고있었다. 때문에 말리에 있어서 도자기공업의 창설은 인민의 세기적숙원을 풀어주는 중대한 사업으로 되고있었다.

그런데 그 중대사를 조선이 부대조건없이 무상으로 도와주는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더없이 고마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신들의 요구대로 일용자기와 위생자기를 생산하는 기술도 배워주고 생산조직을 비롯한 도자기공장관리운영방법도 배워줄수 있다고, 우리는 귀국에서 온 실습생들을 우리 사람들처럼 인정하고 그들에게 모든 기술을 충분히 배워주겠다고 하시면서 친히 그들을 문밖에까지 바래워주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자기공장건설까지 다 맡아해주었으면 하는 말리정부의 청도 기꺼이 수락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건설기술자들을 파견해주시고 수많은 건설용자재와 생산설비들을 보내주시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말리에는 현대적인 도자기공장이 일떠섰다.

정녕 새 사회건설에 떨쳐나선 진보적나라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따뜻한 보살피심과 헌신적인 지원은 진실한 인간애, 동지적우의에 기초한것이였다.

주체108(2019)년 4월 2일 로동신문

김승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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