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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해동성국으로서 강력한 조선민족의 정통국가입니다​

2018-01-13   리영남

제시된 문제에 대한 답변은 정확합니다. 학습을 비교적 깊이있게 하였다고 봅니다.

발해의 력사를 학습하면서 깊이 새겨야 할 문제는 다름아니라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해동성국으로서 강력한 조선민족의 정통국가라는것입니다.

이 기회에 이에 대해 다시한번 해설해드리겠습니다.

발해국을 세운 대조영자체가 고구려의 옛 장수였고 발해건국에서 결정적역할을 한것이 바로 고구려유민들이였습니다.

발해는 그 이름에서부터 고조선, 고구려의 전통을 당당히 계승하였습니다.

발해라는 나라이름에는 《밝은 해가 비치는 나라》, 《밝은 태양이 솟는 나라》라는 의미가 담겨져있습니다.

발해의 령역 역시 조선민족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고조선, 고구려의 령역과 거의 일치하였습니다.

 

 

8세기 발해의 령역은 남쪽으로 오늘의 대동강과 원산을 련결하는 계선을 경계로 하여 후기신라와 접하였고 동북쪽은 오호쯔크해, 동쪽은 조선동해, 서쪽은 료하서쪽계선, 서북쪽은 눈강류역, 북쪽은 제야강일대를 포괄하고있었습니다.

발해의 기본주민은 압도적다수가 고구려사람들이였고 그 지배층도 고구려사람들이였습니다.

그것은 발해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고구려라고 하였고 일본에서는 발해에 보내는 사신을 고려사(고구려에 보내는 사신)라고 표현한데서 알수 있습니다.

발해는 고구려의 오랜 전통과 문화도 그대로 계승하고 더욱 발전시켰습니다.

발해사람들은 선조인 고구려사람들의 상무기풍을 이어받아 격구(말을 타고 달리며 공을 치는 놀이), 말타기, 활쏘기 등을 즐겨하였으며 사냥경기도 자주 조직하였습니다.

력사자료에 의하면 발해의 이웃나라 사람들은 《발해사람 셋이 모이면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는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발해는 건축과 생활풍습에서도 고구려의것을 그대로 계승하였습니다.

 

 

왕궁을 비롯한 건축물이나 무덤을 만들어도 고구려시기의 형식을 그대로 살리여 만들었습니다. 특히 발해의 수도 상경룡천부의 건설형식을 비롯하여 문화분야에서 이룩한 모든 성과들은 고구려문화의 풍부한 경험과 우수한 특성을 더욱 발전시킨것입니다.

제반 사실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조선민족의 정통국가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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