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보천보전투는 항일무장투쟁사에서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전투입니다.

2017-12-06   김증손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 2권에 수록된 항일혁명투사 오백룡동지의 회상실기를 통해 보천보전투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되였으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회상실기를 보고 보천보전투가 어떻게 되여 벌어지게 되였고 또 이 전투가 항일무장투쟁사에서 어떤 전략적의의를 가지는 전투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싶다는 의문이 제기된것으로 리해되는데 이에 대해 해답을 주려고합니다.

보천보전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주체26(1937)년 6월 4일에 량강도 보천군 보천읍(당시 함경남도 혜산군 보천면 보천읍)에서 진행한 습격전투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천보전투를 조직지휘하것은 넓은 의미에서 보면 민족재생의 전기를 마련하려는데 있었고 좁은 의미에서 보면 항일혁명투쟁에서의 결정적인 단계, 질적비약을 이룩하자는데 있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당시의 정세를 놓고볼 때 일제가 대륙침략준비에 혈안이 되여 우리 겨레에 대한 전대미문의 파쑈적폭압만행에 미쳐날뛴데로부터 전체 조선인민에게 조선민족은 살아있으며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심을 주자는 현실적요구로부터 진행되게 된것입니다.

보천보전투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26(1937)년 3월에 조직진행하신 력사적인 서강회의방침에 따라 진행된 대부대에 의한 국내진공작전수행과정에 단행된 전투입니다.

그때 국내진공작전방침에 따라 두만강연안일대에 진출한 조선인민혁명군 한 부대가 이해 5월 중순 무산지구에서 과감한 전투를 벌리다가 적의 포위속에 들 위험에 처하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산방면과 림강, 장백일대의 국경대안으로 진출한 부대들의 활동정형과 적의 움직임을 통찰하시고 주력부대의 국내진공날자를 앞당겨 보천보를 공격할것을 결심하게 되였습니다.

이에 따라 6월 4일에 보천보전투가 진행되였습니다.

전투진행과정에 대해서는 회상기에 구체적으로 서술되였기때문에 여기서 더 전개하지 않겠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령활한 지휘밑에 진행된 보천보전투는 커다란 력사적의의를 가진 전투였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습니다.

《그 의의는 일본놈을 몇명 죽인데 있는것이 아니라 조선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으며 일본제국주의와 싸우면 승리할수 있다는 신념을 북돋아주는 혁명의 서광을 비쳐준데 있습니다. 보천보전투는 조선사람은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한다, <내선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일본놈과 조선사람은 <동조동근>이 아니다, 조선사람은 일본놈과 함께 중국을 침략하지 않는다, 조선사람은 모국어를 버리지 않을것이며 자기의 성을 일본놈성으로 바꾸지 않을것이다, 조선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있다, 일본놈과 싸우면 승리할수 있다는것을 전세계에 선포하였습니다. 이것이 보천보전투의 전략적의의입니다. 여기에 보천보전투의 력사적의의가 있는것입니다.》

보천보전투의 승리는 전체 조선인민에게 조국해방에 대한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었고 그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고무했습니다. 이미 널리 알려진것처럼 서울에 있던 려운형선생은 보천보전투소식에 접하고 너무나 격정에 넘쳐 차를 타고 보천보에로 달려갔던것입니다. 특히 보천보전투소식은 민족주의운동자들의 심중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했습니다.

보천보전투의 빛나는 승리는 분렬과 파쟁으로 몰락전야에 있던 림정계 민족주의인사들에게 일치단결하여 항일해방전에 힘차게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일대 경종으로 되였습니다.

당시 중국신문들을 통해 보천보전투소식에 접한 항주와 남경 등지의 림정계 민족주의인사들은 얼마후 국내의 《동아일보》, 《조선일보》를 입수하여 보천보전투의 상세한 소식을 알고 통쾌감과 민족적자부심으로 흥분을 삭이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에 대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다음과 같이 쓰시였습니다.

《안우생의 말에 의하면 김구도 보천보전투에서 이만저만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안우생은 오래동안 상해림시정부를 따라다니면서 김구의 서기로 있었다.

어느날 김구는 신문을 뒤적이다가 보천보전투소식을 읽게 되였는데 어찌나 흥분했던지 창문을 열어제끼고 배달민족은 살아있다고 몇번이나 고함을 질렀다는것이다.

김구는 그때 안우생에게 지금은 시국이 험한 때이다, 중일전쟁이 림박하니 운동을 한다던 사람들은 뒤골목으로 다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판국에 김일성이 군사를 거느리고 조선에까지 쳐들어가서 왜놈들을 정면으로 후려친것은 얼마나 장쾌한 일인가, 제는 우리 림시정부가 김일성장군을 후원해야겠다, 수일내에 백두산쪽으로 사람을 보내자고 하였다고 한다.

이것은 비단 김구 한사람만의 심중이 아니였습니다. 림정계 주요인물들의 한결같은 격찬이였습니다.

보천보전투의 승리는 독립과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세계혁명적인민들의 반제반파쑈투쟁에 커다란 고무적영향을 주었습니다. 당시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북부조선에 유격대진출》, 《조선국경에서 유격대활동》 등의 표제를 달고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공작전의 승리를 광범히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보천보전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활한 작전에 의해 승리한 전투로서 항일무장투쟁사에 빛나게 장식되여있습니다.

보안문자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