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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성들의 참군은 조선녀성들의 엄혹한 생활이 마련해준 필연적인 귀결이였다.

2017-10-20   김경희

중국 베이징시 조양구 북원에 사는 홍매동포학생으로부터 조선인민혁명군의 녀성참군에 대해 알려줄것을 요청하였는데 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녀성들이 손에 총을 잡고 나서게 된것과 관련하여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어찌하여 푸성귀나 가꾸며 팔자를 한탄하던 녀성들이 수백년동안 자기들을 비끄러매고있던 봉건의 질곡을 대담하게 타파하고 용약 무력항전에 참가하는 경지에까지 도달하였는가? 그것은 손에 총을 잡고 나서는 길외에는 달리는 살수 없는 조선녀성들의 엄혹한 생활이 마련해준 필연적인 귀결이였다고 회고하시였습니다.

세상에 다 알려진것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15성상에 걸치는 피어린 항일무장투쟁에는 녀성들이 적지않게 참가하였습니다.

녀성참군에 관한 문제는 원래 항일혁명의 초시기부터 제기되였던 문제였습니다. 그렇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문제를 심중히 대하지 않을수 없으셨습니다.

무장투쟁준비가 성숙되고 여기저기에서 유격대들이 련이어 무어지게 되자 참군을 열망하는 녀자들의 목소리는 더 높아갔습니다. 이러한 때 일부 녀성들은 남들이야 뭐라건말건 막무가내로 유격대에 들어와 승인도 없이 그대로 퍼더버고 앉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되자 녀성들의 참군문제를 정식으로 론의에 올리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때 일부 사람들은 그 가능성마저 부정해버렸고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식이 불속에 들면 그속에 선참으로 뛰여드는것도 녀자라고 하면서 항차 나라가 피눈물에 잠겼는데 녀자라고 왜 가만히 앉아 있겠는가, 녀성참군은 그들자신의 요구일뿐아니라 시대의 부름이라는걸 알아야 한다고 긍정해나섰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시였습니다.

《결국 녀성참군에 대한 론쟁은 견해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매번 공전만 거듭하였다. 우리는 남성청년들로 유격대를 조직한 뒤에 형세를 봐가며 후날 다시 의논하기로 하였다.》

사실상 봉건의 질곡속에 살아오던 녀성들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싸움터에 하루도 아니고 몇년이 되겠는지 몇십년이 되겠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길에 나선다는것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김수복녀성이 자기 짝패와 함께 일본순사를 까눕히고 보총을 빼앗았는데 이 이후로 녀성들의 참군문제가 일정에 오르게 되였으며 그들은 드디여 주체22(1933)년 항일유격대에 입대하였습니다. 그 이후 많은 녀성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게 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성입대의 급격한 장성과 전투부대에서 싸우고 싶어하는 녀대원들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그리고 그들의 혁명적자부심과 열의도 한층 더 높여주고 자각성과 전투력도 최대한으로 발양시키며 생활상불편도 덜어주기 위해 주체25(1936)년 4월 만강부근의 수림속에서 녀성중대의 탄생을 선포하시였습니다.

항일혁명투쟁에서 녀성들은 참으로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피어린 항일혁명의 나날에 위대한 수령님의 신변을 결사옹위한 친위전사로,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로선을 결사옹위, 결사관철한 항일의 녀장군으로 명성떨치시였습니다. 이뿐만아니라 수많은 녀성들이 재봉대원으로, 작식대원으로 활동하면서 항일혁명승리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하기에 항일의 녀투사들의 영웅적투쟁정신, 영웅적희생정신은 오늘 사회주의강국건설에서 우리 녀성들을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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