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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호를 침략선이라고 하는 근거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2017-10-18   김경희

《셔먼》호는 철두철미 미제의 침략선이다. 이미전부터 아시아대륙에서 조선반도가 차지하는 전략적중요성을 간파한 미국은 남북전쟁(1861년~1865년)이 끝나자 조선에 대한 침략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침략자들은 먼저 《셔먼》호를 조선에 침입시켜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강요함으로써 조선침략의 길을 열어보려고 하였다.

당시 미국함선들은 국무성과 해군성에 장악되여있었고 해군성은 국무성의 지시가 없이는 일체 함선들을 해외로 움직일수 없었다.

《셔먼》호는 《조선개방안》을 군사적방법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미국정부가 파견한 침략선이였다.

《셔먼》호는 원래 1861년에 미국남부군에 소속된 군함으로 건조되여 《프린씨스 로이얼》(제일공주)호라는 이름을 달고 남북전쟁에 참가하였다가 북부군에 나포되여 1863년에 개조된후 당시 살인, 방화, 략탈로 악명을 떨친 북부군 서부방면군 사령관 셔먼의 작전수행에 적극 참가하였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미국통치배들은 《프린씨스 로이얼》호의 이름을《제너럴 셔먼》호로 고쳤다.

《셔먼》호는 증기기관과 을 겸용하고 추진기까지 달린 당시로서는 가장 발전된 무장함선이였다. 미국침략자들은 조선침략에 앞서 수많은 저격무기와 탄약 등을 싣고 90여명의 인원을 태운 다음 1865년에 미국을 떠나 다음해 6월(양력 7월)에 중국 천진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순수 상업적목적으로 조선에 가는 평화적인 상선으로 가장하였다. 그후 산동반도의 지부에서 영국목사 토머스를 사환군으로 채용한 다음 조선침략의 최종준비를 끝낸 《셔먼》호는 그곳을 떠나 1866년 7월 7일 (양력 8월 16) 대동강어구에 침입하였다.

이때 룡강현의 한 관리가 침략자들을 규탄하면서 침입목적에 대하여 묻자 놈들은 국적도 밝히지 않고 자기들은 평양으로 간다고 하였으며 7월 8일 황주목의 관리들이 놈들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강력히 추궁하면서 돌아가라고 단호히 경고하자 놈들은 《통상》이요, 《친선》이요 하면서 저들의 침략적정체를 가리워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침략자들은 비법적으로 정탐과 수심측량을 하면서 대동강을 거슬 올라와 며칠후 평양의 한사정앞(쑥섬과 양각도사이)에까지 이르렀다. 놈들은 평양까지 오는동안 주변에 기여올라 부녀자들을 릉욕하는 등 온갖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7월 18일(양력 8월 27일) 놈들은 감시근무수행중인 평양감영의 배를 습격하여 2명의 조선군인을 살해하였으며 중군 리현익을 랍치하였다.
19일 평양감영의 대표와 미국침략자들사이에 벌어진 담판에서 조선측대표는 미국강도배들의 비법행위와 야수적만행을 규탄하고 중군을 돌려보내며 즉시 물러갈것을 강경히 요구하였다.

침략자들은 자기들을 평양성에 들여놓으며 쌀 1 000섬과 많은 량의 금, 은, 인삼 등을 내놓으라고 오만하게 행동하였다.

이 강도적인 요구가 거부당하자 침략자들은 로골적인 략탈과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침략자들의 오만무례한 행위에 격분한 조선인민은 투쟁에 궐기해나섰으며 《셔먼》호를 대동강에 격침시켰다.

이처럼 《셔먼》호는 철두철미 침략선으로서 그의 조선침입은 우리 나라를 군사적으로 침략하기 위한 미국의 강도적인 무력침공이였다.
미국침략선 《셔먼》호의 침입은 미제의 조선침략력사의 서막으로서 이때부터 미제의 침략과 그를 반대하는 우리 인민의 투쟁, 조미대결전은 장장 150여년간 계속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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