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수표
단편소설

리해룡

1

수업이 끝난 뒤였습니다. 선생님이 교탁앞에 나서시여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학생동무들, 어제 나누어준 시험지에 부모님의 수표를 받아왔습니까?》

《예!》

동무들은 일제히 큰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거의 모두가 우수한 성적을 받았거던요. 그런데 나만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머지않아 진행될 수학학과경연을 앞두고 친 마지막예비시험에서 수치스럽게 3점을 맞았던겁니다. 얼마나 창피한 일입니까.

나는 잔뜩 자라목이 되여가지고 동무들의 눈치만 흘끔흘끔 살폈습니다. 혹시 나와 같은 동무가 있지 않나해서요.

그런데 웬걸, 그런 기러기친구는 그림자도 안보입니다. 둘러볼수록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습니다. 이때 선생님의 다음말씀이 들려왔습니다.

《그럼 시험지를 바치세요.》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동무들은 앞을 다투며 시험지를 바칩니다.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함박꽃같은 웃음이 찰랑찰랑 넘치고있었습니다.

《내 시험지를 본 우리 엄만 얼마나 칭찬했는지 몰라. 오늘 나한테 주겠다구 새 학습장이랑 연필이랑 사오겠다고 하셨어.》

《야, 넌 정말 좋겠다야.》

《우리 아버진 수표를 요란하게 해주었다.》

《뭐라고 썼게?》

《안대줄래.》

동무들은 이렇게 참새무리처럼 재잘대며 시험지를 내고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그렇지만 나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늘이 점점 어렸습니다.
나는 책상빼람에서 슬며시 시험지를 꺼내보았습니다. 옆에서 분단위원 류진이가 슬쩍 곁눈질해보는것도 모르고 말이예요.

《어머니 보았습니다.》

시험지에 휘갈겨쓴 필체가 한눈에 안겨왔습니다. 순간 속이 띠끔했습니다. 어머니의 진짜수표가 아니였으니까요. 이런 시험지를 어머니에게 보였다간 큰일납니다. 그래서 가짜수표를 궁리해냈던겁니다. 어른글씨처럼 쓰려고는 했지만 아이가 썼다는것이 대뜸 알렸습니다.
(어떡한다?)

이때 류진이가 내 팔꿈치를 툭 건드렸습니다.

《너 시험지 안 내니?》

그제서야 나는 류진이가 곁에서 지켜보고있었음을 알았습니다.

《쉿, 조용해. 선생님이 듣겠어.》

나는 입가에 둘째손가락을 오똑 세우며 나직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흥.》하며 나를 쏘아봅니다. 그러거나말거나 나는 선생님의 눈치를 보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지금 선생님은 동무들이 바친 시험지를 깐깐히 훑어보고있었습니다.

속이 빠질빠질 타들었습니다.

《어느 학생이 시험지를 안냈군요. 누구예요?》

시험지에서 눈길을 든 선생님이 교실을 빙 둘러봅니다.

(아이쿠!)

나는 일어서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시험지를 책상안에 밀어넣으면서…

《접니다.》

나는 개미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수표를 못 받아왔어요?》

의아해진 선생님의 눈길이 나에게로 날아왔습니다.

《예. 아… 아니, 저 사실은… 시험지를 못가지고 왔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변명했습니다.

《그래요?》

잠시 선생님은 말허리를 끊었습니다.

후― 긴숨이 나갔습니다.

(됐구나.)

부들부들 떨리던 마음이 얼마간 진정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앉으세요.》하실줄 알았던 선생님의 입에서 뜻밖의 물음이 튀여나왔습니다.

《왜 못 가지구 왔어요?》

나는 흠칫 놀라며 답변할 말머리를 골랐습니다.

《오늘 아침 늦어져서 덤벼치다가 그만…》

나는 당황한 나머지 말끝을 채 맺지 못하였습니다. 진땀배인 나의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그때에야 나는 비로소 엉덩방아를 찧으며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뜻밖에 한 거짓말때문에 속이 편안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임이 끝나기 바쁘게 헤덤비며 교실문을 나섰습니다. 교실에 무엇을 떨구고 가는줄도 모르고 말이예요. 내가 서둘러 운동장을 벗어나는데 등뒤에서 류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정철아, 거기 좀 서라!》

하지만 나는 그의 부름을 귀등으로 흘려들으며 그냥 걸었습니다. 뒤따라 달려온 그가 내 어깨를 툭 쳤습니다. 그는 나에게 직방 들이댔습니다.

 

《정철아, 너 선생님앞에서 그게 무슨 말이냐? 뭐 학교 갈 시간이 늦을가봐 못 가지구 왔다구? 너 그런 거짓말 누구한테서 배웠니. 너 어머니수표 못 받아와서 못 냈지?》

《떠들지 말아. 난 어머니수표를 받았어.》

《거짓말! 너 이제 보니 나도 업어넘기려누나. 네 얕은 수를 내가 몰라서, 그게 어디 어머니수표같니? 네 글씨지.》

류진이는 내 마음을 너무도 빤드름히 알고있었습니다. 노기등등해서 내앞을 오락가락하는 류진이의 팔소매에서는 분단위원표식이 내눈을 꼿꼿하게 만들며 흔들거립니다. 그 애는 이번에 조선소년단창립 66돐 경축행사에 참가했던 모범소년단원이였습니다. 무슨 일에서나 빈틈이 없고 학습과 조직생활에서 언제나 모범인 류진이를 나는 늘 부러워하며 옆에서 같이 공부하게 해달라고까지 조직에 제기했었습니다. 그런데 같이 앉아 공부하며 보니 그 애는 동무들의 자그마한 결함이 나타나도 고쳐주려고 애썼습니다.

좋다고 보아야 하겠지만 지금의 내 형편에서는 그닥 달갑지 않았습니다. 류진이는 선생님앞에서 거짓말을 한 나를 가만두지 않을것입니다.

나는 잠자코 서있기만 했습니다. 류진이가 성을 가라앉히기를 기다리던 나는 볼이 부어 한마디 했습니다.

《됐어됐어, 넌 괜히 그러누나. 어쩌다 거짓말한걸 가지구.》

내가 이렇게 말하자 류진이는 놀랍다는듯 한눈길로 마주봅니다.

《뭐라구,  오늘은   어쩌다   그랬지만   래일은  밥먹듯  할지  또  누가  알겠니.  넌  벌써  잊었니?  조선소년단창립 66돐  경축행사에서  하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축하연설을 말이야. 난 지금도 귀에 쟁쟁해. 우렁우렁하신 김정은원수님의 그 음성이 말이야. 그이께서는 그날 연설에서 앞날의 강성조선의 모습은 소년단원동무들의 성적증에 먼저 그려지게 된다고 뜨겁게 말씀하셨지. 그 말씀을 받아안던 날 나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어. 그때 난 결심했어. 부강한 강성조선을 위하여 배우고 또 배우겠다고 말이야.

정철아, 난 동무도 이런 결심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이악하게 공부한다고 생각했어. 넌 그래서 최우등만 했고… 어제 비록 자만해서 락후한 점수는 받았지만… 그런데 넌 잘못했어. 낮은 점수를 받은건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선생님과 어머니, 동무들앞에서 한 거짓말에 대해선 대수롭지 않게 여기니 참, 난 동무가 선생님을 찾아가 솔직하게 자기 잘못을 반성하기 바란다. 그렇게 하지?》

나는 고개를 떨군채 선뜻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류진이의 충고는 백번 옳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찾아가는 문제는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못 가겠어.》

《그게 정말이야? 네가 정 못 가겠다면 나라도 선생님을 만날테야.》

그리고는 저 혼자 교사쪽으로 씽 달려갑니다.

《류진아!》

나는 그 애를 소리쳐불렀습니다. 하지만 류진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2

문손잡이를 잡은 나의 손이 바르르 떨렸습니다.

퇴근해온 어머니가 부엌에서 그릇 정돈하는 소리가 복도로 새여나왔던것입니다. 게다가 흥얼흥얼 어머니의 코노래소리까지 흘러나왔습니다. 정말 어머니의 기분이 퍽 좋은것 같았습니다.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몇해전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평양일용품공장에서 일하고있습니다. 어머니는 함남의 불길따라 강성국가건설의 주공전선을 책임진 높은 영예를 간직하고 매일 계획을 넘쳐수행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난…

저녁에 집에 들리시겠다던 선생님의 말이 그냥 귀전에서 맴돌았습니다.

어머니처럼 김정은원수님께 기쁨드릴 5점꽃을 많이많이 피우지 못했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이런 생각으로 우물쭈물하던 나는 용기를 내여 문을 열었습니다.
《지금 오니?》

《예.》

어머니물음에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인상이 왜 그렇니, 누구와 다투었니?》

어머니는 이상한듯 나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나는 그러한 어머니의 시선을 피하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뒤따라 들려왔습니다.

《이자 류진이한테서 전화가 왔댔다. 네가 왔느냐고 묻더니 좀 있다 걸겠다고 하더구나. 혹시 너 그 애와 다툰게 아니냐?》

《아니예요. 내가 왜 그 애와 다툰단 말이예요.》

《헌데 왜 그 모양이냐. 너 뭔가 이 어머닐 속이는게 아니냐? 류진이 그 앤 아까부터 시험공불 한다던데 넌 그동안 어델 갔댔니?》
나무라는 그 목소리는 나직했으나 내 마음속을 창끝처럼 겨누고 날아들었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솔직히 터놓기도 두려운 일이지만 숨기자고 하니 겁부터 났습니다. 뒤엉킨 실토리처럼 머리는 참으로 복잡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똑똑똑!

문득 나들문 두드리는 소리가 내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습니다.

(아니, 선생님이 벌써?…)

나는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어머니가 내다보니 낯익은 얼굴이 눈앞에 비껴왔습니다.

인민반장어머니였습니다.

《은희네 집에서 인민반모임이 있어요. 빨리 모이세요.》

《네, 알겠어요.》

(후― 혼났네.)

안도의 숨이 절로 나갔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그루를 박았습니다.

《어머니 갔다올 동안 곰곰히 생각해봐라. 넌 뭔가 감추고있어.》

어머니가 나간 뒤에도 마음은 불안했습니다.

(이거 야단났구나. 선생님이 오시면 모든게 다 드러날텐데…)

이러다간 저녁밥대신 욕부터 먹게 될것입니다.

문득 번개치는 생각은…

그렇지, 차라리 이 자리를 피하면 선생님과 어머니한테서 욕을 안 먹을게 아닙니까.

나는 부랴부랴 교복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얼른 집을 나섰습니다.

(가자, 삼촌네 집으로! 거기서 숨을 좀 돌려야지.)

삼촌네 집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뻐스를 타고 두번째만에 내리면 됩니다. 내가 삼촌네 집에 가는것을 어머니는 전혀 모르게 될것입니다.

3

어느덧 삼촌네 집에 다 왔습니다. 문을 두드리니 사촌동생 철훈이가 나왔습니다.

《정철형님이 왔구나, 야 좋다! 아버지, 정철형 왔어요.》

철훈이가 방에다 대고 반갑게 소리쳤습니다.

《누가 왔다구?》

이어 키가 큰 삼촌의 웅글은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삼촌은 나를 보자 너그러운 웃음부터 지었습니다.

《아니, 학과경연준비를 한다면서 우리 집에 얼씬도 안하더니 오늘은 웬일이냐. 마침 왔다. 어서 철훈이랑 같이 저녁부터 먹구보자. 배고프지? 너의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느냐?》

순간 나는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어머니가 걱정하다니요? 그건 무슨 말이나요?》

《오, 방금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댔다. 네가 갈 곳이 여기밖에 있겠느냐구. 자, 딴말말고 어서 들어가자.》

삼촌에게 이끌려 방으로 들어가는 나의 마음은 편안치 않았습니다. 밥상을 마주앉아 모두들 수저를 들 때였습니다. 이때 철훈이가 《잠간만!》하더니 벌떡 일어나는것이였습니다. 그리고는 가방을 뒤지더니 종이 한장을 냉큼 꺼내왔습니다.

《아버지, 여기에 수표 좀 해주세요.》

동가슴을 쑥 내밀며 철훈이가 보인것은 뜻밖에 시험지였습니다.

《허허, 우리 철훈이가 용쿠나. 그런데 왜 4. 8을 맞았냐, 이왕이면 5점을 맞을게지.》

삼촌은 철훈이의 시험지를 대견하게 보아주면서도 아쉬운 마음으로 연필을 찾아들었습니다.

《시험칠 때 좀 덤볐어요. 하지만 이번 학과경연에선 꼭 5점 맞겠어요.》

신심이 넘친 아들의 대답에 삼촌은 믿음을 담아 연필을 달리였습니다.

《아버지 보았습니다.》

삼촌의 글씨는 굵직굵직한게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수표받은 시험지를 받아든 철훈이는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했습니다. 동생의 그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고개를 숙이고야말았습니다.

(아, 소학교 3학년생이라는게 1학년생 철훈이만 못하단 말이야?!)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습니다.

《형, 형님은 이번에 몇점 맞았나?》

문득 자책속에 모대기는 나에게 철훈이가 물음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는 나의 어깨에 삼촌이 다정히 손을 얹으며 말했습니다.

《어머니한테서 전화로 들으니까 이번 예비시험에서 3점을 맞았다면서? 3점맞은 시험지라구해서 어머니한텐 보이지두 않구 선생님한텐 거짓말까지 하구, 사실이냐? 그런데 넌 제 잘못을 고칠 대신 욕먹기 싫다고 여기까지 왔느냐? 넌 네가 저지른 잘못을 두고 걱정하고 가슴아파하는 사람들이 어머니와 선생님 그리고 류진이와 같은 동무들뿐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예?!》

나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습니다. 그리고 삼촌의 눈길을 마주보았습니다. 잠시 말을 끊었던 삼촌은 준절한 어조로 계속했습니다.

《언제인가 난 어느 한 공장의 일군을 만난적이 있었다 . 그때 그는 나에게 위대한 김정일대원수님을 공장에 모셨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공장을 돌아보신 대원수님께서는 CNC화를 할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누나. 그런데 그 말씀을 받아안은 그 일군은 사실 CNC란 말조차 모르고있었단다. 후날 CNC화된 공장에 어버이장군님을 또다시 모시게 된 영광의 자리에서 그는 CNC란 말조차 몰랐던 자신의 그때의 심정을 그대로 보고드렸단다. 그 사연을 아시게 된 장군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정말 솔직한 동무라고 뜨겁게 말씀하셨단다. 바로 이런 깨끗한 량심, 솔직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새 세기 산업혁명의 불길을 지펴올리는데 앞장서지 않았니. 이런 훌륭한 사람들을 제일로 사랑하시는분이 바로 어버이장군님 그대로이신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이시다. 정철아, 넌 그래 자기가 3점을 맞고 거짓말도 대수롭지 않게 망탕 할 때 제일 가슴아파하시고 심려하시는분이 바로 우리의 김정은원수님이시라는걸 모른단 말이냐? 어디 한번 대답해봐라.

난 네가 소년단원답게 언제나 깨끗하고 솔직하게 생활하기를 바란다.》

삼촌의 말은 나의 가슴을 우뢰처럼 흔들어놓았습니다. 문득 류진이가 하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니, 조선소년단창립 66돐경축 조선소년단 전국련합단체대회에서 축하연설을 하시던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우렁우렁하신 그 음성이 귀전에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난… 정말이지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하는 나같은 학생이 어디에 필요있겠습니까.

나는 삼촌네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서 기다리기때문만이 아니였습니다. 어머니앞에 불미스러웠던 오늘일을 진심으로 용서받고싶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아직 집에 계시였으면…)

다가오는 수학학과경연에서 무조건 5점꽃을 피우고야말 맹세로, 그 언제나 소년단원답게 솔직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니고 살 결의로 가슴은 세차게 불타고있었습니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갑니다. 밤하늘의 애기별들이 보석처럼 빛을 뿌립니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겨가는 나의 마음은 더없이 가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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