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들과 속삭인 말

단편소설

 

                                                     황 은 철

1

고소한 콩기름냄새가 코끝을 살살 간지럽히는 윤미네 부엌안은 참 굉장했답니다.
활짝 열려진 찬장문, 여기저기 되는대로 막 꺼내놓은듯 한 그릇가지들…
뽀직― 뽀지직―
깨알만 한 기름방울들이 통통 튀여오르는 지짐판에서는 금방 까넣은 닭알들이 먹음직스럽게 익혀질 대신 자꾸만 늘어붙고있었습니다.
그때 부름종소리가 났습니다.
누나의 곁에서 입술을 나팔주둥이처럼 내밀고 잔뜩 눈살만 찌프리고있던 윤성이가 메뚜기처럼 껑충 부엌에서 뛰쳐나갔습니다.
문을 활 열어제끼며 소리쳤습니다.
《어머니, 누나가…》
《어이쿠, 깜짝이야!》
문앞에 서있던 어떤 어머니가 화닥닥 놀라 뒤걸음치는것이 보였어요.
윤성이는 그만 두눈이 휘둥그래지고말았습니다.
뜻밖에도 웃층에 사는 누나의 딱친구 경희 어머니가 이게 무슨 일이냐는듯 둥그래진 큰 눈을 껌뻑거리고있었던것이였습니다.
일두 참…
어느새 부엌에서 달려나온 윤미가 윤성이대신 두손을 앞에 차분히 모아잡고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경희 어머니, 미안해요. 윤성이가 그만 우리 어머닌줄 알고…》
《정말이예요. 난 사실…》
윤성이까지 뒤더수기를 벅벅 긁으며 중얼대서야 경희 어머니는 알만 하다는듯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걸 난 또 호랑이가 따―웅 뛰쳐나오는줄 알았지.》
윤미와 윤성이는 깔깔깔 웃으며 경희 어머니를 방안으로 이끌었습니다.
《어머닌 아직 안 들어오신게로구나.》
《예.》
《음― 그런데 이거 무슨 맛있는 냄새가 난다?!》
뒤짐을 지고 코살을 찡긋거리는 경희 어머니의 모양이 우습강스러워 윤미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 웃는데 윤성이가 냉큼 나서며 종알댔습니다.
《우리 누나가 뭐 저녁밥 짓는다나요. 내가 좋아하는 볶음밥이랑, 꽈배기랑, 닭알부침이랑…》
《그래. 윤성인 정말 좋겠다, 벌써부터 누나가 해주는 밥을 다 먹어보구.》
《쳇, 언제나 먹어보겠는지. 밥은 설구 닭알부침은 태우구…》
윤성이는 그냥 볼이 부어 씩씩댔습니다.
경희 어머니는 그러는 윤성이의 엉치를 가볍게 두드려주었습니다.
《그래도 누나가 얼마나 용니? 바쁘신 어머니 일손을 도와서 부엌일을 다 하구.》
《피―》
갑자기 윤성이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습니다.
《누나가 그래서 저녁밥 지었나요 뭐? 지금껏 한번도… 아마 어머니가 돌아오시면 해가 서쪽에서 뜬것만큼 놀랄거예요. 누난 사실…》
생뚱같이 내뱉는 동생의 말에 윤미는 가슴이 콩당콩당 뛰였습니다. 얘가 또 무슨 허튼소릴 하자구?…
당황해 어쩔바를 몰라하는 누나를 힐끗 쳐다보고난 윤성이는 이때라는듯 크레용같이 깜찍스런 손가락들을 활짝 펴고 경희 어머니의 턱밑에 더욱 바싹 다가섰습니다.
경희 어머니가 눈치를 채고 허리를 약간 굽혔어요.
《사실은 말이예요, 우리 누나가… 아야.》
윤성이는 갑자기 옆구리가 따끔하는 바람에 몸을 와뜰 떨었습니다.
누나가 두눈을 부릅뜨고 종주먹을 머리우에 쳐들고있는것이 보였습니다.
《넌 빨리 가서 래일 수학예습이나 마저 해.》
《흥!》
윤성이는 누나에게 새빨간 혀바닥을 쏙 내밀어보이고나서 옆방으로 훌 가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셨나요?》
경희 어머니는 그제서야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며 근심스레 물었습니다.
《윤미야, 우리 경희가 어딜 갔는지 모르냐?》
《예? 경희가 없나요?》
《글쎄… 이걸 좀 봐라.》
경희 어머니가 자그마한 쪽지편지를 내보였습니다.
《어머니, 급히 꼭 갔다올데가 있어 가요. 인차 돌아오니 걱정마세요. 경희.》
낮에 학교에서 같이 돌아올 때에도 아무 소리 없었는데…
윤미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경희 어머니는 공연한 걸음을 했다는듯 입을 쩝쩝 다셨습니다.
《그럼 난 가보겠다. 잘있거라.》
《잘 다녀가세요.》
윤미는 경희 어머니와 헤여진 후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오똑 서서 입술만 잘근잘근 씹었습니다.
눈앞에는 크고 둥실한 경희의 얼굴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경희가 어딜 갔을가? 탁아소때부터 중학교 1학년생이 된 이날까지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무슨 일이든 둘이서 꼭 의논을 하고 언제나 쌍둥이처럼 붙어다니던 그들이였습니다.
책상도 한책상, 소년단반도 한소년단반!
그런데…
경희에 대한 고까운 감정이 불쑥 치밀어올랐습니다.
나한테까지 말 한마디없이 어디로 갔을가? 그러구두 뭐 둘도 없는 딱친구라구? 래일 어디 만나기만 해봐라!
윤미는 속으로 단단히 벼르며 저녁준비를 다그쳤습니다.
정말이지 눈엔 익고 손에 선 일이였습니다.
 

2


윤미의 머리속에는 문득 언젠가 《아동문학》잡지에 실렸던 단편소설을 본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길면서도 짧은것이 무엇이냐?》
이 수수께끼물음에 쌍둥이형제인 철명이와 달명이는 시간이라고 대답했어요. 정말 그 말이 옳은것 같았습니다.
재미난 아동영화를 보거나 놀음놀이에 정신이 팔렸을 때에는 그렇게도 살같이 흐르던 시간이 글쎄 한시바삐 어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이 순간에는 신통히도 달팽이처럼 어정어정 기여가니 말입니다.
벌써 저녁 9시가 넘었습니다.
어머니가 오시면 자기가 깨끗이 청소한 방이랑, 어항이랑 자랑하겠노라고 종알대던 윤성이는 벌써 꿈나라에 날아간지 오랬습니다.
(왜 아직 안 오실가?)
불쑥 어제 저녁일이 떠올랐습니다.
5점꽃을 활짝 피운 기쁨을 안고 신바람이 나서 집으로 달려온 윤미는 들어서자바람으로 어머니한테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습니다.
《어머니, 나 오늘 매 과목 다 5점만점을 맞았어요. 그리고 며칠후에 학교적인 콤퓨터소조원선발시험을 치는데 우리 선생님은 내가 거기에 뽑혔다고 했어요.》
《우리 윤미가 정말 용쿠나.》
어머니가 대견히 어깨를 다독여주자 윤미는 기분이 더욱 붕 떠올랐습니다.
윤미를 젖먹이때처럼 품에 꼭 껴안고 흔들흔들 앉은그네를 뛰여주던 어머니가 문득 물었습니다.
《이 엄말 기쁘게 해준 윤미한테 무슨 특식 해줄가? 그렇지, 우리 윤미가 제일 좋아하는 고구마전을 부쳐줄가?》
《야― 좋다!》
윤미는 너무 좋아 손벽까지 짜락 쳤습니다.
어머니도 즐겁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때였습니다.
《어머니!》
윤미는 등뒤에서 어머니의 상큼한 목을 살그머니 그러안았습니다.
《어머니도 좋지요?》
《우리 윤미가 공부 잘해 칭찬만 받는데 아무렴, 좋지 않구.》
《어머니, 그럼 내 부탁 하나 들어주지요?》
《암, 들어주구말구.》
윤미는 해쭉 웃으며 응석부리듯 말했습니다.
《어머니, 나 래일중으로 꼭 콤퓨터참고서 좀 빌려다주세요.》
《콤퓨터참고서?》
《예, 이제 며칠후에 콤퓨터소조원선발시험을 치지 않나요. 집에서 읍도서관까지야 십리길이 잘되는데 그 시간이면 내가 공부를 더 할수 있겠는데요 뭐.》
《그래? 그렇다면야 이 엄마가 꼭 빌려다줘야지, 우리 최우등생님의 부탁인데…》
《정말?》
어머니가 빙그레 웃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이 좋아, 우리 어머니가 제일이야!》
윤미는 방안이 떠나갈듯 환성을 올리며 너무 좋아 깡충깡충 토끼뜀까지 뛰였습니다.
《어머니, 무조건 래일중으로 꼭 빌려다줘야 해요.》
윤미는 이렇게 다짐까지 단단히 받았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또 어떠했다구요.
어머니가 해준 아침밥을 맛있게 냠냠 먹고나서 학교에 가려는데 먼지가 뽀얗게 오른 어머니의 구두가 문득 눈에 띄였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어제 저녁 약속을 잊어버렸을가봐 살며시 어머니의 눈치만 살피던 윤미는 잽싸게 구두솔을 집어들고 먼지들을 살살 털어버렸습니다. 그다음엔 구두약을 살짝 바르고 열심히 쓸고 닦았구요.
티 한점 있을세라 입바람까지 후후 불면서…
누나의 버릇을 잘 아는 윤성이가 등뒤에서 그냥 입술을 삐쭉거리는것도 감감 모르고서 말입니다.…
창문으로 비쳐드는 아침해살에 반짝반짝 윤기도는 구두를 내려다본 어머니가 호호 웃고말았습니다.
《우리 윤미 수고를 생각해서라도 오늘 꼭 빌려다줘야겠구나.》
이렇게 떠나간 어머니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어지는걸가?…
윤미는 자리에서 움쭉 일어섰습니다.
어머니를 마중나가보려고 말입니다.

 3


저 멀리 아득히 올려다보이는 밤하늘에서 수많은 애기별들이 반짝반짝 숨박곡질을 하고있습니다.
누가누가 더 곱나 내기라도 하듯 저저마다 쉴새없이 깜빡거리면서 말이예요.
대흥강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밤바람이 윤미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보기 좋게 뒤로 날렸습니다.
윤미는 숙제는 물론 복습, 예습까지 다 끝내놓고 동구길곁에 있는 아동공원의자에 조용히 앉아있는중이였습니다. 오늘처럼 어머니가 늦어질 때면 윤미랑 윤성이랑 종종 나와 기다리군 하던 곳이였어요.
이제는 공원앞을 지나는 사람들도 뜸해졌습니다.
윤미는 발밑에 박힌 돌부리를 발끝으로 톡톡 차다가 가느다란 한숨을 호― 내쉬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머리우에서 울리는것이였습니다.
《너 윤미 아니가?》
윤미는 고개를 쑥 쳐들었습니다.
《맞구나. 나야 나, 경희야.》
경희? 윤미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러다가 경희의 모양앞에 윤미는 입을 딱 벌렸습니다.
온통 땀에 번들거리는 이마, 마구 흘러내린 머리카락…
《너 어디 갔댔니?》
《에이― 덥다.》
경희는 왕청같은 대답을 하며 윤미대신 의자에 풀썩 주저앉더니 땀흐르는 이마를 팔소매로 쓱 문질렀습니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있던것을 윤미앞에 척 내여미는것이였습니다.
《자 받아, 콤퓨터참고서야.》
《뭐, 콤퓨터참고서?》
그냥 더운듯 손부채질까지 활활 해대며 하는 경희의 말에 윤미는 또 한번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애두 참, 그렇게 놀라기까진… 사실 읍도서관이야 너의 엄마 공장보다 우리 마을쪽에서 더 가깝지 않니. 너와 같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네가 한 말을 듣고 집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뭔가 좀 속에 걸리더구나.
그러지 않아도 바쁜 너의 어머니가 공장일을 일찍 끝내고 읍도서관까지 총총히 걸음을 할 생각을 하니 어디 책상앞에 편히 앉아있겠더라구. 그래서 이렇게 내가 갔다왔지 뭐.》
경희는 그냥 두눈이 덩둘해있는 윤미의 손을 끄당겨 제옆에 앉히며 더욱더 정답게 속살거렸습니다.
《그런데 글쎄 콤퓨터참고서들이 어디 있어야지. 말짱 빌려갔다는거야. 내가 하두 졸라대니까 사서아지미가 누가누가 언제 빌려갔다고 알려주지 않겠니. 그속에 마침 내가 잘 아는 상급생언니도 있더구나. 그래서 이번엔 그 언니네 집으로 막 달려갔지 뭐. 내 딱친구 학습에 꼭 필요해서 그러니 며칠만 먼저 빌려달라구 막 떼를 썼더니 끝내 손을 들더구나, 호호호.》

 

경희는 무엇이 즐거운지 짜랑짜랑 웃음까지 터뜨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좀 늦어졌어. 너의 어머니한텐 내가 도서관에 가는 길에 먼저 들렸댔어. 너의 어머닌 오늘 신입로동자들에게 기술견습을 주는 날이여서 많이 늦어진다더구나. 자 윤미야, 이 참고서를 어서 받아.》
경희는 윤미의 손에 참고서를 꼭 쥐여주며 그냥그냥 밝게밝게 웃고있었습니다.
윤미는 그만 말문이 막혀 얼굴이 꽈리처럼 빨갛게 익어들었습니다.
부끄러움이 못 견디게 온몸을 휘감았던것입니다.
밤인게 마침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습니다.
《윤미야, 이젠 어서 들어가자.》
경희가 윤미의 손을 꼭 감싸쥐였습니다.
윤미는 고개를 더 깊이 수그릴뿐 까딱도 할수 없었습니다.
정말이지 그냥 얼굴이 뜨거워오르고 온몸이 확확 달아올랐습니다.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힘찬 부르심따라 최후의 승리를 향하여 참으로 얼마나 분초를 아껴가며 아글타글 일하시는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겠습니까!…
(그런데 난 내 다리 힘들다는 생각부터 하면서 십리도 안되는 길을 바쁜 어머니에게 걸음시키려고 했지. 그리고 이런 일이 어디 오늘 한두번뿐만이였니? 윤미야, 너 어서 솔직히 대답해봐. 그래 너 아버지, 어머니일손을 몇번이나 도와드려봤니? 또 밥짓는 일은 왜 그리도 한사코 하기 싫어했니?…)
생각할수록 지금까지의 자신이 점점 더 얄밉게만 느껴졌습니다.
그저 응석과 어리광을 부리려 하고 투정질하고… 그러니 누나란게 동생한테서 자꾸 눈총만 받고…
윤미는 입술을 꼭 감쳐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버쩍 쳐들었습니다.
밤하늘에서는 여전히 초롱초롱 별들이 웃고있습니다. 꼭 경희의 정다운 눈빛같기도 합니다.
윤미는 마음속으로 별들과 이렇게 쉬임없이 속삭였습니다.
(별들아! 날 용서해줘. 나도 이젠 진짜 철이 들테야.)
별들도 그 말을 알아들은듯 생글생글 웃으며 유난히도 밝은 빛을 윤미와 경희의 머리우에 아낌없이 뿌려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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