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누가 받는가

 

 

 한 철 범

영남이네 집 전실에는 노란 옷을 곱게 입힌 신발장이 있습니다.
신발장 3층에는 바로 영남이가 사랑하는 운동화들이 나란히 놓여있습니다.
띠와 밑바닥까지 눈처럼 하얀 흰 운동화, 바둑판처럼 쭉쭉 줄이 간 하늘색바탕의 멋진 격자운동화, 영남이의 교복색갈처럼 수수한 파란운동화입니다. 영남이는 이들을 하얀이, 줄직이, 파랑이로 불렀습니다.
영남이가 하루공부와 과외놀이를 마치고 폭신한 이불우에서 꿈나라로 날아갈 때면 운동화들은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신이 나서 서로 나누군 하였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맵시쟁이 흰 운동화가 맨 선참 나서며 챙챙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난 오늘도 영남이와 학교에 갔댔다. 너흰 영남이네 학교가 얼마나 멋있는지 모르지? 또 영남이가 어떻게 공부하는지도 말이야. 그러나 난 다 알거던.
그뿐인줄 아니? 돌아올 땐 영남이가 책을 보러 공원학습터에까지 들렸댔기때문에 난 공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 알고있어.》
흰 운동화는 하얀 얼굴을 휘두르며 장한듯이 열이 나서 자랑했습니다.
흰 운동화에게 뒤질세라 이번에는 격자운동화가 입을 열었습니다.
《넌 안개비가 내리는 거리의 경치를 못 보았지. 난 보았거던. 숲이며 잔디밭은 더욱 푸르싱싱해지고 길들은 더욱 깨끗해지고…
그뿐만이 아니야.
안개비가 멎으면 푸른 하늘엔 신비로운 무지개가 비끼는데 이 무지갠 아마 나밖에 못 보았을거야!》
격자운동화는 신식문양을 뽐내듯이 몸을 둥싯거리며 막 으시댔습니다.
흰 운동화가 성미그대로 발끈해서 또 자랑을 늘어놓으면 격자운동화도 지지 않겠다는듯 자랑을 쏟아놓았습니다.
한동안 둘이서 찧고 까불던 이들은 문득 한쪽 구석에서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는 파란운동화에게 주의가 미쳐졌습니다.
《얘 파랑아, 너도 말 좀 하려마. 넌 무엇을 보았니?》
하얀이는 초라해보이는 파란 운동화를 거만스레 바라보았습니다.
파랑이의 대답대신 줄직이의 목소리가 먼저 울렸습니다.
《쳇, 파랑이가 말할게 뭐가 있겠니? 어제두 길가에 나무를 심으러 간것밖에 더 있니?》
정말 그랬습니다.
어제 파랑이는 나무를 심느라고 온몸에 흙탕칠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고보니 파랑이가 자랑할것이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파랑이는 늘 험하고 구질구질한 일만 도맡아하였으니까요.
자기들의 깨끗하고 말쑥한 몸차림에 비해 파랑이는 늘 몸이 젖어있고 더럽혀져있군 했습니다.
그래도 파랑이는 군말없이 목욕을 하고 깐깐히 몸차림을 살피고 신발장에 돌아오군 하였습니다.
아무 말도 없는 파랑이때문에 할말이 없어진 하얀이와 줄직이는 이젠 그만 지쳐 잠에 들고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이였습니다.
이날은 일요일이였습니다.
영남이는 눈처럼 흰 등산배낭에 산에 오를수 있는 간단한 옷차림을 하고 신발장으로 왔습니다.
《얘들아, 오늘 나는 동무들과 함께 등산을 떠난단다.
산에 올라가 식물채집도 하고 광석채취도 하게 된단다.
그래서 꽃메골까지 칼벼랑을 타야겠는데 누가 갈수 있니?》
영남이는 세 운동화를 굽어보며 다정히 물었습니다.
간밤에 영남이와 함께 일요일을 유희장에서 재미있게 노는 꿈만 꾸던 하얀이는 뒤로 주춤 물러섰습니다.
(에익, 유희장에 갈줄 알았는데 산으로 가다니?! 내가 어떻게 칼벼랑을 오른단 말이야. 난 못 가! 이런덴 내가 나설 곳이 못돼.)
영남이는 하얀이의 속심을 알아차리고 다음 줄직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줄직이도 지금 몹시 기분이 없었습니다.
글쎄 아침산보라면 몰라도 칼벼랑으로 어찌 갈수 있단 말입니까.
촉촉한 이슬방울이 얼굴을 간지럽히는 산보길은 두말없이 나설 자기입니다. 그러나 험한 그 산길엔 제가 나설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가겠어요.》
맨 끝에 있던 파랑이가 선뜻 한발 나섰습니다.  
영남이는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파랑이의 볼을 튕겨주었습니다.
《파랑이가 제일이야. 넌 언제나 변함없거던.》
영남이의 이 소리는 다른 두 운동화의 속을 막 뒤틀리게 하였습니다.
(흥, 저 앤 언제나 저 모양이야! 그저 영남이가 어디 가자고 하면 죽을둥살둥 모르고 덤벼들거던.)
하얀이의 생각이였습니다.
(참 미련두 하지. 저 앤 아마 영남이가 진짜로 자길 귀여워하는줄 아는가부지? 사실은 제가 제일 미워서 험한 판에만 데리고 다니는줄도 모르고.)
줄직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파랑이의 뒤모습을 얄궂게 바래우고난 하얀이와 줄직이는 그만 할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미련하고 우둔한 파랑이를 두고 실컷 뒤소리를 하다가 제풀에 노그라져 낮잠에 들고말았습니다.
그러나 파랑이는 아침부터 영남이와 함께 이슬덮인 풀숲을 헤치느라 온몸이 화락하니 젖어있었습니다.
포근한 집안에 있다가 갑자기 찬이슬을 맞자니 온몸이 막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파랑이는 꾹 참아냈습니다.
그래서 가시가 콕콕 찌르는 풀숲길도, 대골대골 바닥을 때려주는 자갈길도 헤치며 드디여 아찔한 칼벼랑에까지 왔습니다.
드디여 영남이는 칼벼랑꼭대기에 오르기 시작하였습니다.
파랑이는 영남이가 미츠러질세라 안깐힘을 써가며 땀을 흘렸습니다.
푸른 이끼가 돋은 곳에서는 미끄러질가봐 속을 조였고 삐죽삐죽한 돌서덜에 찢어질 때는 정신이 아찔했지만 참고 견디였습니다.
힘이 들고 아프고 안타까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신음소리가 날가봐 입을 꾹 다물고 참았습니다.
거의다 올라갔을 때 그만 헛디디는 영남이의 발을 돌옹이에 꼭 붙여주다나니 파랑이의 얼굴은 험상하게 찢어졌습니다.
영남이는 파랑이를 벗어들고 상처를 가볍게 쓰다듬었습니다.
《네가 정말 나때문에 수고하누나.
어제는 나무를 심느라고 고생하더니 오늘은 또 이렇게…
쉬우지 못해서 정말 안됐다.
그러고보니 내가 늘 너를 고생만 시켰구나.》
영남이의 진심어린 말에 파랑이는 도리질을 했습니다.
《아니예요. 전 고생을 하는게 아니예요.
전 제가 하는 일에 긍지를 느껴요. 그러니 그걸 고생이라고 하지 마세요. 전 언제나 이런 보람속에 살고싶은걸요.》
영남이는 파랑이의 말에 몹시 감동되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사랑스레 파랑이의 볼을 쓰다듬었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하루일에 지친 파랑이는 하얀이와 줄직이의 말소리도 듣지 못한채 곤히 잠들었습니다.
《저 애 꼴 좀 봐. 얼굴에 상처가 나고 멍이 졌어. 얼마나 한심해졌니?》
하얀이가 웃으며 손가락질하자 줄직이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 애 바닥은 어떻구? 온통 째지구 닳아먹었어. 저 앤 바보야, 바보!》
그들은 킬킬대며 웃었습니다.
실컷 낮잠을 자서 밤새 눈이 말똥말똥해진 그들이 래일은 영남이가 자기들에게 무엇을 구경시켜줄가 하고 공상을 하고있을 때였습니다.
우르릉 쾅쾅! 꽈르릉―
번개불이 번쩍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우뢰소리가 잠자던 운동화들을 깨웠습니다.
그제서야 운동화들은 갑자기 큰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달그락― 하고 문고리가 벗겨지며 창문이 쾅 열렸습니다.
비바람까지도 몹시 세게 부는것 같았습니다.
깊은 잠에 들었던 영남이가 전실로 뛰여나와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엊그제 심은 애어린 나무들이 이 비바람에 꺾어져버릴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입니다.
급히 비옷을 입고 신발장으로 뛰여가던 영남이는 그만 우뚝 멈춰섰습니다.
《아차!》
전번 비올 때 나무그루터기에 찔려 찢어진 장화를 수리소에 맡긴 생각이 났던것입니다.
영남이는 할수없이 운동화들에게로 다가갔습니다.
《줄직이야, 나하고 나무를 심은 곳에 가봐야겠다!》
느닷없이 나타난 영남이때문에 몹시 속을 바재이던 하얀이는 자기 이름이 안 불리운것으로 하여 다행스레 숨을 내쉬였습니다.
이 캄캄한 밤에 차거운 비를 맞으며 뛰여다닐 생각을 하니 온몸이 으시시 떨렸습니다.
어느 돌멩이에 얻어맞아 만신창이 될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이름을 불리운 줄직이도 움씰 몸을 떨었습니다.
저런 비엔 길을 메우며 흙물이 철철 흘러넘칠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습니다.
숨이 가빠올랐습니다.
줄직이는 자기에게 손을 내미는 영남이에게 기겁을 하며 웨쳤습니다.
《싫어요, 전 싫어요. 전 지금… 감기때문에… 머리가…》
그리고는 에취 하며 연방 재채기를 하였습니다.
순간 영남이는 줄직이를 쏘아보았습니다.
줄직이의 약은 수를 헤아리고도 나머지이니까요.
《그럼 하얀이는?》
그런데 혹시나 믿었던 하얀이도 도리질을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파렴치하게도 파랑이를 걸고들었습니다.
《그런 일이야 저 파랑이가…》
노려보는 영남이의 눈길에 위압되여 하얀이는 자기의 뒤말을 잇지 못하였습니다.
《너희들두 알고있겠지.
파랑이가 어제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또 그가 얼마나 앓고있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꼬리를 사리다못해 이런 일은 파랑이가 할일이라구?
됐다! 똑똑히 알아둬!
난 이젠 너희들과 상대도 안하겠다.
너희들 곱다구 어루만졌더니 너무나 안돼먹은 생각만 하는구나.
얼굴이 고운게 아니라 일이 곱다구 했어.》
영남이는 이렇게 툭 쏘아붙이고 말없이 자기를 쳐다보는 파랑이를 정겹게 바라보았습니다.
파랑이는 그날 밤도 영남이와 함께 흙탕물을 뒤집어쓰고 비바람을 맞으면서 쓰러질듯 휘청거리는 나무들에 벋침목을 단단히 세워주었습니다.
새벽녘이 되여서야 파랑이는 집으로 돌아와 쑤시는 상처의 아픔을 보람찬 로동의 희열로 가셔내며 꿀처럼 달콤한 잠에 들었습니다.
아침입니다.
동켠하늘에 아름다운 진홍색노을이 곱게 피여나더니 붉은 해가 방긋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운동화들은 기분좋게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오늘은 저 아침노을과 아름다운 거리를 누구에게 구경시킬가?
거야 분명 나지.
학교길엔 언제나 나를 데리고갔으니까.)
하얀이는 자기가 오늘 꼭 희한한 구경을 할것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줄직이의 생각은 하얀이와 달랐습니다.
(영남이는 나를 꼭 찾을거야. 분명 저 아침노을은 나를 위하여 피여나는거야.)
줄직이는 몸을 쓰다듬으며 자기의 생각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책가방을 손에 들고 영남이가 신발장에 다가서며 하는 말은 너무나도 뜻밖이였습니다.
《자, 오늘은 파랑이와 함께 가자. 넌 응당 수고한 대가를 받아야 해. 너처럼 성실한 신발은 없어.
넌 내가 제일로 귀여워하는 운동화야. 너처럼 마른 일, 험한 일 가리지 않으면 언제나 사랑만 받을거야.》
영남이는 가뜩이나 깨끗이 목욕하였던 파랑이의 얼굴을 더욱 깨끗이 닦아주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하얀이와 줄직이는 너무도 부끄러워 막 울고싶었습니다.
영남이의 말은 그들의 가슴을 콕콕 찔렀습니다.
자기들의 생각이 정말 잘못된것임을 새삼스레 깨달았습니다.
얼굴이 고우면 응당 주인의 사랑을 받을수 있다고 생각한 자기들이였습니다.
또 자기들이 고와서 편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데리고다니는것이라고 생각하였던것입니다.
하얀이와 줄직이는 종일 눈물을 흘리며 자기들의 잘못을 깊이깊이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학습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영남이와 파랑이에게 자기들의 잘못을 털어놓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갖추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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