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고가시다

단편소설

한기석

동녘하늘에 아침해가 둥실 떠올랐습니다. 금빛노을이 흰눈덮인 만경봉우에 무지개처럼 고운 수를 놓아갑니다.
혁명학원의 맑은 유리창들이 웃음을 머금은 원아들의 얼굴인양 해빛에 반짝입니다.
《새해를 축하합니다》
본관 채양우에 걸린 경축판의 글자들도 빛이 좋아 도글도글 뛰노는듯 합니다.
야외고성기에서는 강행군에 떨쳐나선 근로자들의 새해 첫 전투소식을 전하는 방송원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나옵니다.
학원은 이른아침부터 류다른 흥분속에 설레이고있습니다. 곳곳에서 기발들이 펄럭입니다.
넓고 탄탄한 구내길 량켠에는 꽃다발을 손에 든 원아들과 교직원들이 겹겹이 늘어서있습니다.
원장선생님을 비롯하여 학원일군들이 주런이 선 대렬앞에 한 꼬마가 서있었습니다.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군화를 신고 칼날처럼 주름을 세운 붉은줄바지에 허리가 잘쑥하게 가죽띠를 두른 애입니다. 그 애는 류달리 크고 붉은 소년단넥타이를 두손에 정히 받쳐들고있었습니다.
《너무 흥분하면 안돼.》
원장선생님이 꼬마에게 타이르듯 하는 말이였습니다. 꼬마는 깜장눈을 깜빡하며 원장선생님을 바라봅니다. 백두산시절부터 팔십이 넘은 오늘까지 군복을 벗지 않고있는 원장선생님의 어깨우에서는 시누런 장령별이 번쩍이고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만세―》
갑자기 하늘땅을 진감할듯 우렁찬 환호성이 터져올랐습니다. 꼬마와 원장선생님은 약속이나 한듯 정문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습니다.
설레이는 꽃물결속에 까만 승용차의 앞머리가 나타났습니다. 서서히 다가오던 승용차는 꼬마에게서 몇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섰습니다.
승용차문이 해빛에 번쩍하더니 수수한 야전용솜옷을 입으신분이 차에서 내리시였습니다.
그분은 원아들이 꿈결에도 그리던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이시였습니다.
이때 학원을 대표하여 1부원장선생님이 영접보고를 올리였습니다.
영접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빛나는 안광으로 대렬을 살펴보시며 오른손을 우로 드시였습니다.
《새해를 맞는 동무들을 축하합니다!》
《만세― 만세―》
환호소리가 학원구내를 들었다놓으며 푸른 하늘가로 퍼져갑니다.
손을 흔들며 답례를 보내시던 장군님의 환하신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작달막한 키에 어깨를 달싹이며 마주나오는 어린 원아의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신것이였습니다.
꼬마는 장군님앞에 이르기 바쁘게 두팔을 우로 쳐들었습니다. 그의 손에서는 붉은넥타이가 해빛을 받아 더욱 선명한 색을 띠고 빛나고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슬며시 어깨를 낮추시자 꼬마의 입귀에 생긋 웃음이 어리였습니다.
아버지장군님의 넓은 앞가슴에는 어느새 소년단넥타이가 정히 드리워졌습니다. 가는 바람이 어리광이라도 부리듯 넥타이의 한끝을 하르르 날려줍니다.
꼬마가 가슴을 들먹이며 거수경례를 올렸습니다.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 우리 유자녀들은 아버지들의 뒤를 이어 장군님의 참된 아들딸이 되겠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꼬마의 손을 꼭 잡아주시였습니다.
《이름이 뭐냐?》
《남룡호입니다.》
《몇학년이지?》
《1학년입니다.》
《그러니까 학원의 막냉이로구나.》
장군님의 웃음어린 말씀에 룡호의 마음속에 자리잡고있던 긴장감은 봄눈처럼 녹아버렸습니다. 그저 오래동안 헤여졌던 친아버지를 다시 만난것만 같은 심정이였습니다.
《아버지장군님, 막… 뵙고싶었습니다.》
응석을 부리듯 룡호의 입에서 새나온 말소리는 물기에 젖어있었습니다.
《음, 나도 너희들이 보고싶었다.》
장군님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룡호의 어깨를 어루만져주시였습니다.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신 장군님께서는 룡호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기시다가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의 동상앞에 멈춰서시였습니다.
대원수님께서는 항일전의 그 나날처럼 한손에는 싸창을 잡으시고 다른 한손에는 쌍안경을 드시고 백포자락을 날리며 거연히 서계시였습니다. 한없이 숭엄한 그 모습은 고난의 행군에 이어 강행군에 들어선 총포성이 없는 오늘의 준엄한 싸움마당을 굽어보고계시는것 같았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 동상을 우러르는 장군님의 눈앞에 금수산기념궁전(당시)이 우렷이 떠올랐습니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뀔수록 대원수님이 더욱 그리워지고 기쁜 일이 생겨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대원수님에게로 마음달리는 장군님이시였습니다.
오늘 새벽에도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으신 장군님께서는 참으로 생각이 많으시였습니다.
한평생을 나라와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치신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
지나온 고난의 행군과 앞으로 헤쳐나가야 할 강행군길…
백으로 천으로 떠오르는 하많은 생각가운데서도 잊을수 없는것은 설날이 오면 원아들이 자신을 기다린다고, 자신께서 가지 않으면 아이들이 아버지 생각을 하며 섭섭해한다고 이른 아침 만경대혁명학원으로 떠나며 하시던 대원수님의 말씀이였습니다.
혁명의 피줄기가 튼튼히 이어지도록 대원수님께서 생전에 그토록 아끼고 위해주신 유자녀들, 그애들이 설을 어떻게 쇠고있는지? 나라형편이 어려운 이때 마음 꿋꿋이 자라고있는지?…
이리하여 금수산기념궁전을 나서는 길로 가셔야 할 곳, 만나셔야 할 사람들이 많고많았지만 학원부터 찾아주신 장군님이시였습니다.
이윽토록 동상을 지켜보시던 장군님께서는 혁명사적교양실을 향해 걸음을 떼시였습니다.
원장선생님이 장군님께 절절히 말씀올리였습니다.
《장군님, 나라일을 돌보시느라 로고가 많으신데 부디 건강에 류의하시기 바랍니다.》
장군님께서는 따뜻한 눈길로 원장선생님을 돌아보시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괜찮은데 원장동무가 몸을 잘 돌봐야 하겠습니다. 만경대혁명학원에 항일의 로투사가 앉아있다는 생각만 해도 나에게는 힘이 됩니다.》
원장선생님은 눈을 슴벅일뿐 다른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에 잠겨 걸음을 옮기시던 장군님께서 룡호에게 시선을 돌리시였습니다.
《너는 학원에서 설을 쇠는게 처음이겠구나.》
《그렇습니다.》
《여기서 설을 맞으니 어떻더냐?》
《좋습니다.》
《좋다?… 그래 설날에 무얼 먹었느냐?》
《찰떡두 먹구 고기볶음두 먹구…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물만두도 먹었습니다.》
룡호는 물만두이야기를 하면서 두볼이 오목하게 보조개를 지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 모양이 귀여워 웃음을 지으며 부러 놀라는 시늉을 하시였습니다.
《물만두도 먹었다?!… 그래 맛있더냐?》
《예, 동무들은 둘이 먹다 하나 죽어두 모르겠다구 했습니다.》
《허허허…》
장군님께서는 활기있고 명랑한 룡호의 모습을 굽어보며 웃으시다가 간부선생님들쪽을 돌아보시였습니다.
《물만두가 터진것은 없었소?》
《더러 터진것이 있었습니다.》
얼굴색이 불깃한 1부원장선생님이 대답을 올리였습니다.
《그건 끓이는걸 잘못해서 그런거요. 물만두는 펄펄 끓는 물에 넣었다가 얼른 꺼내야 터지지도 않고 제맛이 나는 법이거던.
원아들에게 그렇게 터진걸 먹일것 같으면 앞으로는 더 보내주지 않겠소.》
장군님께서 웃음을 담아 하시는 말씀이였습니다.
룡호는 눈언저리가 찡했습니다.
아버지장군님의 사랑과 배려가 얼마나 크고 세심한가를 가슴뜨겁게 느끼게 된것입니다.
원쑤놈들의 고립압살책동과 몇해째 거듭되는 자연재해로 나라살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장군님께서는 지난해 최신형콤퓨터들을 일식으로 학원에 보내주시였습니다.
그러시고도 마음놓이지 않으시여 원아들이 설을 더 기쁘게 쇠라고 갖가지 선물을 안겨주시고 오늘은 친히 학원에까지 찾아오시여 물만두 몇개가 터진것을 두고도 이토록 마음쓰시는것이 아닙니까.
장군님께 기쁨과 웃음을 드려야 할 자기가 오히려 근심을 끼쳐드렸다고 생각하니 룡호의 마음은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야, 이럴줄 알았으면 물만두이야기는 꺼내지 말았을걸. 그것 말구두 장군님께서 보내주신게 얼마나 많다구. 사과랑 귤이랑 사탕이랑…)
룡호가 입술을 꼭 깨무는데 장군님께서 넌지시 물으시였습니다.
《룡호는 집이 어디냐?》
《강원도 고성입니다.》
《집에는 누가 있나?》
《어머니 혼자 있습니다.》
《어머니 혼자…》
장군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셨다가 다시 물으시였습니다.
《설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울지는 않았나?》
《예?!…》
룡호는 눈이 올롱해졌다가 도리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장군님.》
원장선생님이 서둘러 룡호의 말에 뒤를 달았습니다.
《장군님, 저희들은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아동영화〈소년장수〉도 보구 써클이랑 체육경기를 하면서 모두 즐겁게 설을 쇠고있습니다.》
《그렇습니까.
룡호와 같은 애들은 집을 떠난지 1년도 못되는 어린 아이들이니 학원에서 특별히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나는 학원선생님들을 믿겠습니다.》
장군님의 안색은 저으기 밝아졌습니다.
혁명사적교양실에서는 눈부시게 환한 방들이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장군님을 기다리고있었습니다. 벽에 주런이 걸린 사진들과 유리함속에 놓인 사적물들이 유난히 밝은 빛을 뿌립니다.
두손을 가슴에 엇결으시고 사적물들을 눈여겨보기도 하고 시원하고 쾌활한 음성으로 원장선생님과 말씀도 나누며 차례차례 방을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어느 한 진렬장앞에서 걸음을 멈추시였습니다.
수정같이 맑은 유리함속에 류달리 크고 붉은소년단넥타이 두개가 정히 놓여있었습니다. 하나는 위대한 김일성대원수님께서 그 언젠가 학원에 오셨을 때 그이께 매여드렸던 사연깊은 넥타이였습니다. 그날 대원수님께서는 자신께서 매셨던 넥타이를 공부를 제일 잘하는 원아에게 매주라고 하면서 학원에 남기고 가셨던것입니다.
수십년세월이 흘렀으나 대원수님의 체취와 깊은 뜻이 어려있는 넥타이는 단 한점도 색이 바래지 않았습니다.
그옆에 놓인 다른 하나는 지난해 아버지장군님께 매드렸던 넥타이였습니다.
아침노을이 비낀듯 붉고 아름다운 그 넥타이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설날 이른아침 눈보라를 헤치시며 학원에 찾아오시여 원아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아주시던 장군님의 고매한 모습을 소리없이 전해주고있었습니다.
원장선생님이 장군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학원학생들이 여기에 자주 찾아오군 합니다. 이앞에 서면 대원수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들려오는것만 같고 장군님을 다시 뵙는것만 같다면서 낮에도 저녁에도 찾아오군 합니다.》
생각깊은 눈길로 넥타이들을 굽어보시던 장군님께서 룡호에게 나직이 물으시였습니다.
《룡호두 오나?》
《예, 중대직일근무를 잘 섰다구 칭찬받은 날이랑 롱구경기에서 꼴을 네알 넣었을 때두 왔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빨간 입술을 놀리던 룡호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말꼬리를 흐리였습니다.
《좋구만, 그런데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있었나?》
장군님께서는 룡호를 유심히 보며 저으기 근심어린 어조로 물으시였습니다.
룡호는 눈길을 떨구며 가는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장군님, 사실 전 큰 잘못을 저질렀댔습니다.》
뜻밖의 말에 원장선생님이 얼굴에 긴장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룡호가 큰 잘못을 저지르다니?》
장군님께서 고개를 기웃하시였습니다.
《전 학원학생답지 못하게… 소년단원답지 않게 마음이 흔들렸댔습니다.》
《마음이 흔들렸다?…》
장군님께서는 자못 신중한 안색으로 룡호를 바라보시였습니다.
생기가 넘치던 룡호의 얼굴은 구름이 낀듯 흐려있었고 물기어린 눈동자에는 그 무엇인가를 호소하는듯 절절한 빛이 흐르고있었습니다.
장군님께서 조용히 고개를 드시는데 마침 나들문사이로 의자들이 주런이 놓인 휴계실이 보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그곳을 가리키며 나직이 말씀하시였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는것 같은데 모두 저기로 갑시다.》
장군님께서 룡호와 나란히 의자에 앉으시자 선생님들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룡호는 출장길에서 돌아온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는 어린이의 심정으로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사실을 고스란히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초이튿날이였습니다. 침실에 불이 꺼진지도 오래고 곁의 아이들은 쌔근쌔근 단잠에 들었으나 룡호만은 몸을 이리 뒤척, 저리뒤척 하고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해풍에 그슬린 아버지의 검실검실한 얼굴이 생생히 떠오르는것이였습니다.
이날은 바로 해군부대에서 경비정 정장으로 복무하던 아버지가 우리 나라 령해에 기여든 원쑤놈들과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지 두해째 되는 날이였습니다.
룡호의 머리속에 꽉 차오른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걱정으로 번져졌습니다.
(어머니도 나처럼 잠 못들고있을거야. 요즘은 식사를 어떻게 하시는지…)
두달전 학원에 와서 첫 방학을 맞은 룡호는 기쁜 마음을 안고 고향집을 찾아갔었습니다.
어머니는 두팔 벌려 룡호를 끌어안고 등을 어루쓸며 반가와했습니다.

 

 


저녁상에는 흰쌀밥에 룡호가 좋아하는 섭조개국이며 가재미반찬이 올랐습니다.
룡호는 오래간만에 어머니와 마주앉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면서부터 룡호는 숟가락을 제대로 들수 없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가 밥상을 차려주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군 하는것이였습니다.
룡호가 함께 먹자고 어머니의 손목을 잡을 때마다 자기는 먼저 먹었다든가 속이 좀 말째서 후에 먹겠다고 하는것이였습니다.
나흘째 되는 날 어머니가 없는 틈에 쌀뒤주와 항아리를 열어본 룡호는 눈을 꼭 감으며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거기에는 수수쌀 몇줌이 바닥에 깔려있을뿐이였습니다.…
장군님께서는 귀를 기울이신채 조용히 입속으로 외우시였습니다.
《바닥이 드러난 쌀뒤주, 빈 항아리…》
그러자 전선시찰의 길에서 있었던 일이 문득 눈앞에 떠오르시였습니다.
지난 초여름 어느날 인민군부대를 현지지도하고 평양으로 돌아오시던 장군님께서는 높은 령밑에 외따로 떨어져있는 한채의 집에 들리시였습니다. 색날은 쪽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니 어른들은 없고 댓살쯤 나보이는 사내애가 강아지를 데리고 굴뚝모퉁이에 앉아있었습니다.
시장기가 어린 가무잡잡한 얼굴이며 손에 들려있는 싱아대를 여겨보신 장군님께서는 점심에 무엇을 먹었는가고 물으시였습니다.
그 애는 입을 비죽거리기만 할뿐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사내애의 손목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가시였습니다. 애어머니의 여문 손끝을 보여주듯 쌀뒤주에는 파랗고 노란 색종이가 곱게 붙어있었고 항아리들은 먼지 한점없이 알른거렸습니다. 그러나 그안은 모두 텅 비여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데 어린 룡호의 심정이 오죽했겠는가.…)
장군님께서는 묵묵히 룡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시였습니다.
 
… 속이 빈 쌀뒤주와 볼이 푹 꺼진 어머니의 얼굴이 눈앞에 아물거리자 룡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침실에서 빠져나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습니다.
 
… 그리운 어머니, 동무들이 모두 단잠에 든 깊은 밤 이 편지를 써요. 어머니는 잘 아시지요. 오늘이 아버지가 희생된 날이라는걸 말이예요.
커다란 군모를 내 머리에 씌워주며 어서 커서 용감한 인민군대가 되라고 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난 꼭 아버지의 원쑤를 갚고야 말겠어요.
그런데 어머니, 요즘은 어떻게 지내나요? 지금도 식사때생각을 하면 …
아버지가 희생된 다음 외할머닌 자꾸만 평양에 와서 같이 살자구 했지요. 그런걸 어머닌 아버지가 피흘려 싸운 고장을 떠날수 없다면서…
어머니, 이젠 나두 학원에 왔는데 더 고집 부리지 말구 외할머니네 집으루 오세요. 그럼 우린 가까이 있게 되니 얼마나 좋겠어요…
 
편지이야기까지 하고난 룡호는 슬그머니 눈길을 떨구며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뒤늦게야 철없이 이런 이야기를 해서 장군님께서 마음쓰시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들었던것입니다. 그런데 장군님께서는 고뿌에 단물을 부어 룡호의 손에 들려주며 어서 마시라고 하시는것이였습니다.
룡호가 입술을 추기고나자 장군님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으시였습니다.
《네 편지를 받고 어머니가 뭐라고 회답을 보냈느냐?》
룡호는 놀란 토끼처럼 두눈이 동그래지더니 뜻밖에도 해죽이 웃음을 지었습니다.
《장군님, 전 그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편지를 안보내다니?!…》
장군님께서는 저으기 놀라시였습니다.
선생님들도 눈이 둥그래서 룡호를 바라보았습니다.
《이튿날 전 여기로 찾아왔습니다.
붉은넥타이앞에 정중히 서니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입단맹세를 다지던 때가 떠오르고 아동단원 금순이처럼 마음속에 넥타이를 안고 살아야 용감한 인민군대두 되구 영웅도 될수 있다고 하던 아버지의 말도 생각났습니다.
아버지가 살아서 이런 나를 본다면 뭐라고 할가.
대원수님께서는 공부도 잘하고 학원생활도 잘해서 아버지들의 뒤를 이어 훌륭한 혁명가가 되라고 하셨는데 내가 이러구있다는걸 아시면 얼마나 섭섭해 하실가.…
저는 주먹을 꼭 쥐고 맹세했습니다.
만경대의 아들답게 꿋꿋이 살겠다고…》
룡호의 두볼로 맑은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
장군님께서는 그윽한 눈길로 룡호를 바라보시였습니다. 그이의 눈가에도 물기가 어리였습니다.
어린 나이에 약해지는 마음을 스스로 바로잡고 지난날의 허물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룡호가 더없이 기특하고 대견하시였습니다.
《만경대의 아들이 그래야지!…》
장군님께서는 오른팔로 룡호를 꼭 껴안으시였습니다.
《동무들, 보오. 이 애가 얼마나 장한가!》
선생님들의 크고 두툼한 손들이 소리없이 눈굽으로 올라갔습니다.
지금껏 긴장해서 안절부절하고있던 원장선생님이 눈을 슴벅이며 말씀올렸습니다.
《장군님, 둬달전부터 룡호학생이 학습에서나 생활에서나 뛰여나게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알고보니…
년말에 있은 학과경연때는 전과목 5점을 받아 학원기앞에서 영예사진까지 찍었습니다.》
《그랬을테지, 용타!》
장군님께서는 룡호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기쁨어린 음성으로 말씀하시였습니다.
《그 사진을 잘 뽑아서 고향에도 보내줍시다. 그러면 이 애 어머니가 얼마나 기뻐하구 힘이 나 하겠소.
룡호는 편지를 쓰거라. 이번엔 꼭 보내야지, 하하하…》
장군님께서 호탕하게 웃으시자 선생님들도 따라웃고 룡호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여났습니다.
학원일군중의 한 선생님이 조용히 말씀올리였습니다.
《장군님, 학원예술소조원들이 장군님을 기다리고있습니다.》
《그렇소?! 그럼 어서 갑시다.》
장군님께서는 활기있게 자리에서 일어서시였습니다.
룡호가 장군님을 따라 사적교양실을 나섰을 때였습니다. 좀전에 장군님께 말씀드리던 그 선생님이 슬그머니 눈짓을 했습니다. 먼저 가서 공연준비를 하라는 신호였습니다.
룡호의 얼굴은 금시 딸기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장군님을 가까이 모신 행복에 취한 나머지 자기가 예술소조원이라는것을 까맣게 잊고있었던것입니다.
 
×
 
강의실들과 연구실, 실험실들을 돌아보며 따뜻한 가르치심을 주고난 아버지장군님께서는 곧 회관으로 향하시였습니다.
… 장내에는 끝없는 흥분과 감격이 굽이치고있었습니다.
소개자의 인사말에 이어 무대막이 물결치듯 옆으로 퍼져흐르자 원장선생님은 마음이 긴장되였습니다.
새해가 오면 아버지장군님께서 꼭 오실것이라고, 그러면 훌륭한 공연을 보여드리자고 달포전부터 무대를 떠나지 않던 원아들이였습니다. 그러나 룡호또래의 원아들가운데는 잠자리에 괴상한 지도를 그려놓고 부끄러워하는 아이도 없지 않았습니다. 제아무리 번쩍거리는 구두에 제복을 쭉 빼입었다 해도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였습니다. 그러니 누구인가 아차 실수라도 한다면… 그러나 곁에 앉아계시는 장군님의 인자한 모습을 뵙자 원장선생님의 근심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말았습니다.
등받이에 몸을 실으시고 조용히 무대를 주시하고계시던 장군님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습니다.
원아들은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행복하고 자랑넘치는 학원생활의 이모저모를 춤가락과 이야기에 담아 펼치기도 합니다.
장군님의 심정은 기쁨과 흥분에 젖어드시였습니다. 노래도 잘 부르고 연주솜씨도 모두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마음에 드신것은 원아들의 얼굴마다에 넘쳐흐르는 밝고 씩씩한 기상과 그들이 펼쳐보이는 전투적이고도 랑만적인 생활과 정서였습니다.
맑고 힘찬 노래소리, 진군의 포성인양 꽝꽝 울리는 나팔소리, 북소리…
장군님께서는 겹쌓인 피로가 한시에 풀리고 새힘이 불끈 솟는것을 느끼며 무대에서 시선을 뗄줄 모르시였습니다.
기악합주가 끝나자 무대가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국부조명속에 나어린 원아의 담찬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장군님께서 환히 웃으시며 원장선생님의 팔을 슬쩍 건드리시였습니다.
《저게 룡호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저 학생은 시도 잘 짓고 읊는것도 잘합니다.》
새별처럼 빛나는 룡호의 눈빛이 주석단관람석쪽으로 향해지자 장군님께서는 오른손을 가볍게 드시며 고개를 끄덕여보이시였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동단가의 은은한 선률을 타고 룡호의 맑고 챙챙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마다 붉은넥타이
        목에 두를 때면
        가슴뭉클 떠오르는 생각
        입단맹세 다지던 날
        기념사진 찰칵 찍어주며
        나의 아버지 하시던 말씀
        …
        잊지 말라고
        이 넥타이 왜 붉은지
        명심하라고
        아동단원 금순누나도
        소년빨찌산 서강렴형님도
        이 넥타이와 함께 자랐다고
        …
 
깊은 자감상태에 잠긴 룡호는 앞가슴에 붉게 드리운 넥타이에 오른손을 꼭 대기도 하고 떠나간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다정한 목소리를 그리는듯 조용히 눈길을 들어 그 어딘가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는 그의 자그마한 손놀림이며 눈빛, 목소리에 실리는 감정의 미세한 색갈조차도 놓칠세라 가늠하시면서 깊은 사색의 세계를 걷고계시였습니다.
그렇다, 저 붉은넥타이는 이 나라의 장한 아들들을 얼마나 많이 키웠던가.
풀뿌리를 씹으면서도 싸우는 고지에 올라 혁명가요를 소리높이 부르던 항일의 아동단원들…
그들의 넋을 이어 살아온 나이보다 살아야 할 나이가 더 많지만 자기의 한몸을 서슴없이 조국에 바친 유명무명의 나어린 소년빨찌산, 소년근위대 대원들, 조국의 푸른 숲을 목숨바쳐 구원한 소년영웅 리창도…
어디 그뿐인가. 령밑에서 만났던 철부지사내애조차도 말했었지. 배고픔을 참겠다고, 그래야 아빠엄마가 학교에도 가고 형님들처럼 소년단넥타이도 맬수 있다 했다고.…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굳센가, 얼마나 훌륭한가.…
낮고 잔잔하게 흐르던 룡호의 목소리는 점차 여울목을 지나는 내물소리처럼 빠르고 높아지더니 바위에 부딪친 파도소리마냥 쾅쾅 울렸습니다.
 
        백두의 넋으로
        붉고붉은 넥타이
        너는 작고도 큰
        우리의 기발
        노을처럼 붉게 타는
        우리의 맹세
 
        이 땅에 우리 앞길에
        그 어떤 광풍 휘몰아쳐도
        눈서리 내린다 해도
        더 힘차게 휘날리리라
        펄펄펄 펄펄펄
        우리의 붉은넥타이!
 
장내는 물속처럼 고요했습니다. 순간이 지나자 우뢰소리같은 박수소리가 터졌습니다.
조명등아래 차렷자세로 거수경례를 붙이고있는 룡호의 두볼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있었습니다.
무대를 바라보는 선생님들이 손벽을 두드리며 감동의 눈물을 금치 못했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는 룡호를 향해 뜨겁게 손을 흔들어주고나서 주위를 둘러보며 격한 음성으로 말씀하시였습니다.
《우리는 이겼소. 저런 애들과 함께라면 하늘이 무너진대도 두려울것이 없단 말이요. 최후승리는 우리것이요.》
 
×
 
이런 땐 순간이 한시간 아니, 하루가 되여주면 얼마나 좋을가.
룡호는 장군님 제일 가까이에, 바로 장군님의 무릎옆에 앉아있었습니다.
행복의 절정에 올라 무아경에 잠긴 룡호의 눈에는 앞에 있는 촬영기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샘솟듯 흘러 두볼을 적시고있었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는 그의 두볼을 닦아주면서 울지 말라고, 웃어야 사진이 잘된다고 몇번이나 타이르시였습니다.
언제 촬영이 끝났는지 귀가 멍멍하도록 울리는 만세소리에 룡호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는 선생님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며 작별인사를 나누고계시였습니다.
(야, 이젠 장군님과 헤여져야겠구나.)
순간 막혔던 샘구멍이 다시 열린듯 뜨거운 눈물이 줄줄이 흘러나왔습니다. 룡호는 두손을 머리우에 쳐들고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촬영대에 서서 만세의 환호성을 터치고있는 원아들을 바라보시는 장군님의 가슴은 아릿하였습니다. 다문 얼마만이라도 학원에 더 머무르고싶으시였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빨간 사과도 들려주고 그들의 손목을 잡고 옛 학원시절처럼 춤도 추고싶으시였습니다.
그러나 가야 할 길은 많고도 멀었습니다.
그 무엇인가를 찾으시듯 조용히 옮겨지던 장군님의 시선이 룡호의 앞가슴에서 펄럭이는 붉은넥타이에서 멎었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밝은 미소를 지으시였습니다.
《룡호야.》
장군님께서는 따뜻한 음성으로 부르시였습니다.
《장군님!》
룡호는 목메여부르며 한달음에 달려가 넓고 따사로운 그이의 품에 다시 안기였습니다.
뜨거운 손길로 룡호의 어깨를 쓰다듬어주시던 장군님께서는 천천히 자신의 앞가슴에 드리웠던 붉은넥타이를 푸시였습니다.
룡호의 눈은 새별처럼 반짝거렸습니다.
순간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귀전을 울리였습니다.
《룡호는 이 넥타이가 백두의 넋으로, 너희들의 맹세로 붉게 탄다고 했지. 네 말이 옳다.
이 넥타이는 대원수님께서 백두산에서 높이 추켜드신 붉은기의 한폭이지. 여기에는 모든게 다 깃들어있다. 선렬들이 흘린 붉은 피도, 그들이 남긴 부탁도.…
그리구 너희들의 마음과 씩씩하고 장한 모습도…
나는 이 붉은넥타이를 품에 안고 가겠다!》
(아!…)
룡호의 가슴에서, 원아들의 가슴가슴에서 장군님의 말씀은 메아리처럼 울리고있었습니다.
《아버지장군님!》
넥타이의 붉은 색갈이 그대로 옮겨진듯 룡호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습니다.
잠시후 아버지장군님을 모신 승용차는 경쾌하게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해빛이 차체에 부딪쳐 반짝거립니다.
바퀴뒤에서 눈가루가 뽀얗게 입니다.
력사에 길이 아로새겨질 1998년 1월 2일!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렇게 새해 사회주의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길을 떠나고계시는것입니다.
전선길, 공장길, 농촌길… 굽이굽이 련련히 이어지는 길은 멀고 험해도 그 길우에서 승리의 아침, 조국의 새날은 바야흐로 밝아오고있었습니다.
룡호는 두손을 가슴에 얹고 마음속으로 웨치고 또 웨쳤습니다.
(아버지장군님께서 붉은넥타이를 안고가신다! 우리들을 안고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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